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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곡사를 찾아서

물소리~~^ 2013. 1. 21. 15:11

 

 

 

 

일요일 아침 잠시 시간을 내어 연곡사에 다녀오자는 남편의 의견이다. 언제인가 섬진강을 끼고 도는 지리산에 위치한 사찰 중, 연곡사를 가보지 못했기에 한 번 가보고 싶다한 말을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시간을 벗어나는 일탈을 하고 싶었다. 베란다의 화분에 물주는 것만 서둘러 하고서 차림을 하고 따라 나섰다.

 

일요일 아침의 고속도로는 안개가 가득 끼어있었다. 마치 하늘이 안개를 분무기에 담아 뿜어 낸 듯 사방에 가득 고인 안개에 햇살마저 제 빛을 제대로 펴 내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눈이 쌓여있는 산자락은 그만그만한 나무들이 스스로 붓이 되어 라인을 그린 듯 더욱 선명해 보인다. 운치 있는 한 폭의 풍경화다.

 

한 시간 30여분을 달려 구례에 들어서서, 줄곧 함께 달려온 곧은길에 잘 가라고 등을 떠밀어 보내고 우리는 19번국도 하동방향으로 들어섰다. 우리나라에서 드라이브코스로 가장 아름다운 길로 뽑힌 19번 국도이다. 오른쪽으로는 철길이 달리고 왼쪽으로는 섬진강이 흐르는 길이다. 예로부터 길은 강을 따라 발달했다고 한다. 그 중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섬진강은 남북으로 길게 뻗은 우리나라의 지형의 특성과 맞아 일찍이 길을 터준 참 예쁜 강이다.

 

섬진강의 수량이 어느 때 보다도 풍부했다. 안개가 살짝 걷히며 뻗히는 햇살에 반짝이는 물살이 참으로 평화로웠다. 가슴 저미도록 아름답고 고요했다. 이 길은 지금의 겨울보다는 봄과 가을에는 몸살을 앓을 만큼 많은 차량들로 또 하나의 물결을 이루는 곳이다. 나 역시 겨울에 찾아오기는 처음이다. 연곡사에 가기 위해서는 피아골 계곡으로 들어서야 한다. 지리산에서 계곡 따라 내려온 물이 섬진강과 합류한 지점에서 우리는 계곡을 따라 거슬러 달렸다. 피아골로 들어서는 길이다.

 

피아골하면 깊고 깊은 지리산의 계곡이 늘 연상되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자동차로 깊은 안쪽까지 들어갈 수 있으니 편리하다면 편리하다. 다만 스치는 풍경들을 제대로 음미할 수 없는 성급함이 못내 서운하기는 하다. 

 

 

 

 

 

계절이 계절인 만큼 뜸한 인적에 그나마 차창 앞으로 달려드는 풍경들에 마음 적실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양쪽으로 지리산자락들이 궁륭을 이루어 주니 그 안을 계곡이 흐르고, 계곡 따라 펼쳐진 길을 달리는 나는 오늘만큼은 이곳에 찾아온 큰 손님처럼 대접을 받는 기분이다. 좋았다. 양쪽으로 펼쳐진 지리산 자락들은 각각의 다른 모습이다. 남쪽으로 향한 곳은 눈이 전혀 없었는데 북쪽을 향해있는 산자락에는 눈이 가득 고여 있었다. 산에 접한 도로변의 우람한 바위에는 흐르는 물이 얼어 거대한 빙벽을 이루고 있었다.

 

그 화려한 꽃도 없었고 무성한 잎들도 없고, 아름답게 채색된 단풍잎 하나 없는 나무들이 일렬로 서 있다. 하지만 허전함이나 쓸쓸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정갈함이 가득 안겨온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서 다가오는 화려함을 준비하는 자세는 조금도 부끄럼 없는 당당함이었다. 계곡 깊이 들어갈수록 산이 품고 있는 풍경들도 더욱 이채로워진다. 

 

저 높은 산위에 집들이 보인다. 그 집을 오르는 구불구불한 작은 산길이 아련해 보인다. 저곳까지 어떻게 날마다 올라 다니는 것일까. 그 집들 가까이 산등성에서는 층층으로 이어지는 다랑이 논들이 영락없이 한 집안처럼 자리하고 있다.

 

깊은 산 중턱의 높은 집, 그곳에 이르는 구불구불한 길, 그 산등성을 이용하여 만든 논과 밭들에는 공통성이 있었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산등성의 형태에 따라 구불구불한 길은 편안함이 보이니 문득 저 길을 걸어보고 싶다는 충동이 인다.

 

 

 

 

 

 

 

 

그렇다. 그 유명한 피아골의 다랑이 논이었다. 산등성을 따라 오르며, 내려오며 그 넓이에 혹은 구석에 맞게 층층으로 쌓은 반듯함에 가슴이 시리다. 한 뼘이라도 땅을 더 얻기 위한 집념을 무어라 말을 한단 말인가. 문득 이 겨울에 찾아오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무성한 숲을 이룰 적에는 미처 발견하지 못한 풍경들이 가슴 속 깊이 젖어들기 때문이었다. 짙은 녹음 속에서는 저것에 바쳐야 했던 삶의 노고가 가려져 있었다. 하지만 있는 모습 그대로 보이는 지금에는 그들의 삶의 애환이 숨죽이며 한 철을 지내는 듯싶은 모습이 다 보였기 때문이다. 지독한 노력으로 삶과 자연을 일체시킨 조상들의 노력은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큰 힘이었음을 마음 깊이 새겨본다. 

 

어느 정도 포장된 길이 끝나고 더욱 좁아진 길을 들어서니 연곡사 주차장이 나온다. 찾아오는 사람들이 없는 겨울 이어서일까. 매표소에는 안내하는 사람도 없었으니 우리는 연곡사 일주문 아래까지 자동차를 쓰윽 디밀고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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