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셔핑 중 무언가를 얻기 위해 어느 특정 사이트에 접속하는 순간, 후다닥 나타나는 팝업창에 간혹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이는 그 사이트에서 새로운 사실을 공지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 사이트와 제휴한 광고를 알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와는 상관없는, 불필요한 창이기에 그 창을 닫으려하면 쉽게 닫혀 지지 않는다. 팝업창이 요구하는 조건을 들어 주고 닫으라는 몸짓으로 제 몸을 깜박이거나 부르르 떨곤 한다. 처음에 그런 창을 대 할 때마다 귀찮은 생각이 들었지만, 어느 순간 그 창에 달려 있는 자그마한 네모 칸에 의미를 부여하며 바라보는 시선이 되었다.
그 작은 네모 칸은 팝업창의 마음을 표시하는 또 다른 창이었다. 내가 싫거든 이 문을 닫으시오. 단 내일 또 와도 되는지 아니면 3일 후, 일주일 후, 길게는 한 달 후에 다시와도 된다는 약속을 해 달라고 한다. 꼭 자기 마음에 싸인을 해 달라고 조르는 귀여운 연인 같다.
그렇게 떼쓰는 연인을 한 달 후에 오라는 약속은 너무 무심한 것 같아 나는 늘 오늘 하루만 오지 말라고 마음을 꾹 눌러준다. 그러면 좋아라하며 얼른 제 모습을 숨겨버리고 신기하게 그 날은 모습을 보이지 않는 깔끔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 이 작은 네모 칸이 디지털시대에 달려있는 마음표시창이라면 아날로그 시대에 느낄 수 있었던 작은 창의 기억을 나는 가지고 있다.
우리 어렸을 적, 겨울나기 준비 중 빼 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는 문에 창호지 바르기였다. 옛 어른들 말씀에 “창호지를 바르면 덥고 이불을 꿰매면 춥다.” 라고 하셨다고 한다. 이 두 가지는 모두 월동준비에 해당하는 일인데 창호지 잘 바르는 것이 이불보다도 훨씬 더 방안의 보온을 유지할 수 있다는 말을 비유해 하는 말이라고 한다. 사실 우리 어렸을 적에는 왜 그리도 추웠는지 모른다. 아랫목은 뜨거운데 위풍이 심해 방안에서도 두꺼운 옷을 입고 지내곤 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런 추위에 방문을 한 번씩 여 닫을 때마다 훅 끼쳐 들어오는 찬 공기는 방안의 따듯한 공기를 빼앗아 버리곤 하였다.
하지만 우리네 인정어린 정서는 밖에서 인기척이 나는데도 문을 닫고 앉아 있지 못한다. 문을 열고 아는 척해야 했고, 행여 우리 집에 무슨 일이 있어 찾아온 손님이지 않을까 하는 염려에 꼭 문을 열어야 한다. 그러한 인심으로 빚어진 우리 조상들의 지혜는 참으로 정감어린 사랑스러움이다. 창을 생각해 낸 것이다.
창이라 하여 오늘날같이 커다란 유리로 된 그런 창이 아니었다. 창호지를 새로 바를 때 문고리 옆쯤의 문살에 투명 비닐이나 작은 유리조각을 대고 창호지를 발랐다. 손바닥만한 창이었지만 바깥의 모든 것을 볼 수 있었으니 얼마나 크고 훌륭한 창이었던가.
침 묻힌 손가락으로 문에 구멍을 내곤 했던 우리들의 방에도 꼭 창을 달아주었다. 겨울나기 준비의 하나였기에 그 창을 통한 나의 기억은 온통 겨울의 풍경이었다. 하염없이 내리는 눈발을 종일 지켜보기도 했고, 고드름이 녹아내리며 떨어지는 물방울의 간격을 박자삼아 어림잡아 보기도 했다. 점심때쯤 신발 끄는 소리와 함께 찾아오시는 옆집 아주머니의 손에는 찐 고구마나 김치 부침개가 들려 있기도 했다. 그 맛은 왜 우리 집에서 매일 먹었던 것보다도 더 맛있었는지 모른다.
그 창을 통하여 바라보는 사물들은 늘 스치며 지나오면서도 보이지 않았던 새로움을 보여주곤 했다. 눈은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하늘로 다시 올라가는 모습을 보았다. 매서운 바람은 아침에 미처 쓸어내지 못한 눈들을 싸리비보다 더 깨끗이 쓸어 내곤 했다. 대야에 담겨있는 물은 왜 가운데 부분을 더 높게 솟으며 얼까 하는 의문을 품게 하기도 하였다. 빨랫줄에 널린 옷가지들은 동태 되어 부동자세로 걸려 있었다. 팔을 굽지 못하고 다리도 접을 수 없는 뻣뻣함으로 버썩거리며 곧추세우고 있었다.
밖의 풍경들은 내가 지켜보고 있는 것을 알기라도 하듯, 또 다른 모습의 아름다움을 선사해 주곤 했다. 신비한 풍경들에 마음의 싸인을 꾹 눌러 주며, 또 다시 돌아오라는 내 마음을 전 할 수 있었음은 손바닥만한 작은 창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세월은 지났지만 작은 창을 통해 나와 교감을 나눈 풍경들은 깊은 향을 지닌 채 내 마음의 영양크림이 되어 윤기 되어 흐른다. 가슴 속에 박제되어 잊히지 않는 은은한 향으로 남아있다.
내 마음에도 그런 작은 창 하나 내달고 싶다. 그 창을 통하여, 내가 나를 바라 볼 수도 있겠지만, 바라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내가 미처 표현하지 못하는 마음을 볼 수 있는 창이라면 좋겠다. 보일 수 없어 혼자 애달아하는 마음을 삭이지 못하면 걱정이 되고 지나침이 될 수 있다. 그 지나침은 때로 오해를 가져오기도 할 것이다. 내 마음의 창이 있어 무엇이든 나눌 수 있는 통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의 지나침은 나의 온전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것을 알릴 수 있으면 좋겠다. 사람이 사람에게 위안이 될 수 있는 나의 작은 창하나 예쁘게 달고 싶다. 나만의 겨울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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