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을 느끼는 순간의 시간은 언제나 짧기만 하다. 출근 전, 집안을 한 바퀴 휘 둘러보는 습성으로 늘 바쁜 시간을 쪼개는데 오늘 아침 베란다에서 깜짝 반가움을 만났다. 며칠 전부터 히야신스가 잎만 쑥쑥 뻗어 올리기에, 올해는 꽃을 피우지 않으려나보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늘 그만 아주 작게 꽃을 피운 모습을 보인 것이다. 너무 반가운 마음에 이곳저곳 기웃거리면서 또 다른 꽃을 기대하며 베란다화단 주변을 둘러보는데 아, 글쎄 무성하게 자란 산세베리아 틈을 비집고 칼랑코에가 아주 빨갛게 꽃을 피우고 있었다. 아주 작은 몸짓의 꽃으로 봄을 알려주며 내 바쁜 마음을 붙잡고 있는 것이다.
예쁜 모습을 뿌리칠 수 는 없지 하는 마음으로 늦은 시간을 나 몰라라 하며 꽃나무들을 기웃거리며 꽃을 찾고 있는 내 눈에 무언가가 잡힌다. 저쪽 베란다 바닥에 놓여있는, 낯 설은 질감에 예감이 이상해 자세히 바라보니 에구머니나 민달팽이였다. 꽃들을 반기며 신나했던 내 마음이 싹 달아나 버린다.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들어와서 살아가는지 가끔 한 번씩 나를 놀라게 하니 어찌 할 바를 모르겠다. 아무리 깨끗한 미물이라 하지만 나는 매번 그 흐느적거림에 소름 끼치도록 놀라움을 갖는다. 그대로 놓아두면 어느 구석으로 기어갈까 만약에 거실로 들어오면 어쩌지? 하며 걱정하면서도 어떻게 할 줄을 모르다가 작은 사기종지 하나를 가져다 달팽이를 씌워 놓고 출근길을 서둘렀다. 저녁에 남편에게 부탁할 참이다.
퇴근을 하였지만 저녁 준비하랴 뭐하랴 달팽이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설거지까지 마친 후 빨래를 거두어들이려 베란다에 나갔다가 종지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 얼른 거실로 뛰어 들어오니 남편은 왜 그러냐고 한다. 남편에게 베란다에 있는 종지를 한 번 들어보라고 하니 웬일인가 싶어 나가본 남편은 무슨 일인지 사태를 짐작하고 만다. 짐짓 나도 못하겠다하며 으름장을 놓으며 털썩 앉아 버린다. 나는 안절부절 하며 빨래를 거두어야 하니 빨리 해결해 달라고 졸랐다. 드디어 베란다에 나간 남편이 종지를 뒷짐으로 들고 온다. 한참을 나를 놀리며 재미있어 하다가 보여준 종지에는 아무 것 도 없었다. 남편이 말하기를 그 종지를 들어 본 순간부터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고 한다. 세상에 어떻게 그 종지 안을 빠져 나갔을까!! 사기그릇의 무거움을 어떻게 감당했을까!!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멍하니 종지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곳을 빠져 나가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투를 벌였을까.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자존심을 버려야 했을까. 그 몸짓을 하찮게 여겨 무시하려했던 나를 얼마나 원망했을까 하는 많은 생각들이 나를 덮치면서 문득 “눈먼 자들의 도시”라는 책의 내용이 떠오른다.
백색실명 이라 명명된 병은 삽시간에 사람들에게 전염이 된다. 병에 전염되어 눈이 먼 그들은 격리 수용되면서 이름도 잊어진다. 오직 눈이 먼 사람들이라 불리는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사람들이지만 그들 나름대로 한 공동체를 형성하여 살아가기 위해 서로 의지하고 돕는다. 하지만 그 방법들이 인간이 느껴야 하는 비굴함을 자연스럽게 행하면서 어쩌면 인간다운 자존심을 포기하는 것이기에 책을 읽는 내내 나를 짓누르는 불편한 감정을 억제하지 못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살아남기 위한 행동! 은 오직 살기위한 것뿐이었다. 이 책은 우리가 늘 지니고 있어서 몰랐던 것들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이 지녀야 하는 소중함을 잃게 하면서 상대적으로 그렇게 비참해 지지 않도록 삶의 본질을 지켜 나가기를 암시해 주고 있었다.
어쩌면 달팽이 역시 종지 안에서 눈이 보이지 않는 경험을 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 어둡고 막막한 환경을 벗어나 살기위해 달팽이는 자신이 지닌 우리가 알 수 없는 자존심을 버려야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한 순간 그 격리된 사람들을 지켜야 했던 병사들의 입장이 되어 버린다. 눈 먼 사람들을 지키면서 행여 자신에게도 그 병이 옮겨 질까봐, 보이지 않아 자신도 모르게 일정한 구역을 벗어난 사람에게 총을 난사하며 눈 먼 몇 사람을 죽였기 때문이다.
나에게 소름끼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이유만으로 달팽이에게 나는 함부로 총을 발사한 것은 아닌지. 또한 나는 달팽이로부터 느껴야 했던 이질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 삶의 본질까지 잃어버려야 했던 눈먼 사람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찮은 미물에게까지도 생명의 존중함을 부여하고 소중하게 다루어야 한다며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 아름답다 라는 시도 읽었다. 하지만 아무리 박애주의 정신을 가미하여 미화시켜 바라보려 하지만 보는 순간 내가 먼저 놀라는 이 상황을 나도 어쩌지 못한다.
종지를 탈출한 달팽이에게 잘 살기를 부탁하면서도 내 눈이 멀지 않도록 다시는 나타나지 말기를 함께 부탁해 본다. 행여 다시 나타나려거든 더 보기 좋은 모습으로 나타나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삶이란 이렇게 늘 아주 사소한 작은 것으로부터 아주 크게 도전을 받는 것인가 보다. 그 도전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는 눈 먼 사람이 되었다.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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