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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곡사가 품은 이야기

물소리~~^ 2013. 1. 21. 15:20

 

 

 

 

 맞닥뜨린 연곡사의 첫 인상은 오랜 연륜이 전혀 느껴지지 않은 생소함이었다. 절 마당은 공사로 인하여 어수선했다. 한 순간 이런 사찰에 국보 문화재가 두 점이나 있다니…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그 연혁을 살펴보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예스러울 것 하나 없는 예스러움을 찾아 나선 마음은 나의 얇은 선입견을 책망하고 있었다.  

 

 

 

연곡사는 6.25 때 폐사가 된 이래 그저 부도만으로 절의 명맥만 이어오다 1983년에 현 모습으로 낙성되었다고 한다. 연곡사의 연혁에 대해서는 알려지는 것이 없으나 9세기 후번에 세워진, 국보로 지정된 동부도를 추정하여 8세기경에 건립되었다고 추정할 뿐이란다. 화엄사와 함께 지리산에 가장 먼저 세워진 절이라는 설이니 얼추 따져보면 1,300년의 연륜을 가진 사찰인 것이다.

 

부처님이 계신 법당을 돌아서니 저 만큼에 소담한 정취를 안고 있는 길이 보인다. 언뜻 보이는 부도탑의 지붕에 어서 가 보고픈 마음이 성급하다. 아, 멀리서 그 자태가 보이는 순간 내 행동이 경망스럽게 느껴짐은 부도가 전해주는 경건함 때문이었으리라. 하지만 말이 없는 부도. 말 할 수 없음에 나는 침묵해야 했다.  

 

 

 법당처럼 가꾸거나 보살핌은 적은 곳, 하지만 세월의 체취가 더할 나위 없는 곳이 바로 부도전이 아니던가. 더구나 이곳 탑의 섬세함의 솜씨는 신에 가까운 특별함으로 국보로 지정된 탑이라는 선지식이 더욱 호기심을 부추긴다.

 

 

 

 

정갈스럽게 이어진 길을 따라 조금 더 높이 오르니 북부도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부도 곁에 서 있는 나무 한 그루. 어쩜 그 긴 세월은 함께 했을 것이다. 나란히 서 있는 모습 사이에 켜켜이 쌓인 시간들은 무엇으로 남아 있을까. 시간들은 부도에 새겨진 문양들에 흔적을 조금씩 지워 나갔던 것 같다. 그 긴 시간들은 또한 나무들에게 고단함을 부여한 듯 줄기의 문양에서 문득 노련함을 느낀다. 그들의 고단함을 함께 나눈 듯 나란히 서있는 키 큰 나무의 몸짓에 괜한 정감이 앞선다. 호젓한 산중에서 마음 나누는 벗이 있어 서로 의지하며 지냈던 세월이라 조심스레 가늠해 본다. 

 

참혹했던 세월을 지나며 황폐한 절의 천년 역사를 지키고 있었던 부도탑들! 부도탑 이라는 의미보다는 우리 조상들의 솜씨와 지혜에 더욱 자랑스러움을 느끼며 탑을 돌아 내려온다.

 

여러 번의 폐사와 중창을 거듭한 연곡사는 박경리의 토지에 등장한다. 토지는 5대째 대지주로 군림해오던 최참판댁의 며느리인 별당아씨가 하인 구천(일명 김환)과 눈이 맞아 도망친 데서 시작한다. 하인인 김환은 별당아씨의 시어머니인 최참판댁 안주인(윤씨)의 소생이다. 

 

연곡사의 주지 우관스님의 동생 김개주는 동학군 장수였다. 그가 연곡사에 잠시 와 있는 동안, 그곳에 죽은 남편의 불공을 드리러 온 윤씨 부인을 겁탈해 낳은 아들이 김환 이었다. 어디까지나 소설 속 이야기다. 하지만 김개주는 실제 김개남 장군을 모델로 했다는 데에 지극한 관심이 쏠리는 것은 독자인 나의 몫이다. 

 

지금 최참판댁이 있는 곳과 연곡사까지의 거리도 만만치 않은데 그 시절 어떻게 연곡사까지 불공을 드리러 왔는지…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드는 소설의 전개에 새삼 감탄을 아끼지 못하겠다.

 

오늘 내가 연곡사를 찾은 마음에 사찰이라는 종교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는 않다. 그곳에 국보로 지정된 부도탑이 2점이 있다는 역사적인 관심과, 소설의 배경이 되었다는 문학적 배경이 있어 더욱 와보고 싶었던 것이 사실이다. 역사가 있고 문학적 배경이 서린 연곡사는 역사적인 현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또한 나는 현실 속에서 소설 속 배경을 실제인 냥 찾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문학은 사물을 동반하면서 역사를 인식 시키는 커다란 존재이다.

 

나의 현실도 나만의 역사를 이루고 있음이 분명하다. 내가 걸어온 길들의 소중함을 진정으로 아껴보고 싶은 마음을 가득 담아본 하루였다. 마음 따라 이어진 역사와 문학을 찾아 나선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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