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의 키 큰 산철쭉들이 예쁘게 서서 제 모습을 자랑한다. 철쭉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산철쭉이다. 붉은 빛도 아니고 흔한 꽃분홍도 아닌 연하디 연한 분홍이 햇살에 제 몸을 헹구며 서있다. 아마도 깊은 산 중에 아무도 없음에 마음껏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듯 천연한 모습이다. 내 발길을 부여잡는 그들을 연신 카메라네 담느라 내 걸음은 자꾸만 더뎌 진다. 그래도 할 수 없다. 내 언제 또 다시 이들을 만날 수 있을까.
산죽 길을 벗어나면서부터 길이 가팔라지기 시작하였다. 가파름도 그렇거니와 점점 바위덩어리라 부를 만큼의 큰 돌들이 깔린 길들이 나타남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아직은 괜찮다. 내 발걸음의 횟수가 많아지면서 점점 목적지가 가까워지고 있다. 지리산의 정기를 머금고 가꾼 멋들어진 소나무에 기대어 숨을 고르다 보니 저기 멀리 보이는 장터목대피소가 보인다. 저기까지 오른다면 오르는 길의 5분의 4는 완수한다. 멀리 보이는 모습에 반가움이 이는 까닭은 서서히 힘들어 지기 때문이리라. 무언가가 휙 하며 내 앞을 가로질러 달아난다. 빨리 눈으로 따라가 보니 세상에나! 너무나 귀여운 다람쥐다. 우리 뒷산에서는 청설모밖에 볼 수 없는데 여기에서는 참 다람쥐를 볼 수 있구나~~ 내 앞을 지날 때는 빠르게 지나더니 나무 등걸위에서는 말똥한 눈망울을 굴리며 가만히 있었다. 얼른 카메라를 들이 대었지만 역시나 도망가지 않았다. 제 몸의 인기를 알고 있기라도 하듯 으스대는 폼이지만 귀엽기만 하다. 고맙다 다람쥐야~~ 드디어 장터목에 이르렀다. 휴! 하는 안도의 마음과 함께 탁 트인 정경에 마음 모아본다. 첩첩 쌓인 지리산 능선들에 침묵의 탄성을 보낸다. 아직은 천왕봉이 보이지 않지만 첩첩히 거닐고 있는 봉우리들의 애환도 각각 다른 사연일 것이다. 울창한 숲으로 이루어진 산자락들이 어머니 치마폭 같다하여 지리산을 어머니 산이라고 한다. 겹겹이 싸인 산 속의 산들은 어쩌면 사람과 더불어 지내는 인간의 산 일 것이다. 아픈 역사를 품었고 그 역사는 문학을 도출해 내며 우리 민족의 영산으로 자리하기에 누구라도 한 번 쯤 오르고 싶어 하는 산이라 말할 수 있다. 이제 장터목에서 제석봉으로 오르는 길이다. 초입을 지나 조금 걸으니 시야가 확 트이는 밝음이 확 안겨온다. 세상에~~ 광활한 구릉 지대에 고사목들이 서 있고 그 아래로는 초원이 펼쳐진 곳! 아름다웠다. 죽어서도 제 몫을 하고 있는 구상나무! 그래서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 하였던가. 울창했던 숲이었는데 반세기 전, 도벌꾼들에 의해 일어난 산불로 죽은 나무들의 잔해가 남아 한 폭의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쓰러질듯, 혹은 앙상하게 서 있는 고사목은 엄연한 피살목이 되었지만 원한을 풀지 못한 채 썩고 쓰러지면서 그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 아프다. 제석봉에서 바라본 천왕봉! 거의 수직에 가까웠다. 하늘을 나는 저 새들처럼 눈가늠으로 금방이라도 도착할 듯싶어 급히 발걸음을 옮겼지만 영봉은 그리 호락호락 허락해 주지 않았다. 제석봉을 지나 보이는 영봉의 산 능선은 마치 봄 단풍으로 물들듯 곱게 펼쳐지니 우리를 온화함으로 맞이해 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부드러움을 지나 가파른 돌길을 만나야 했다. 가파름을 연결해 주기 위한 철재다리 역시 가파르다. 죽을힘을 다해 수직의 가파름을 어느 정도 통과하니 통천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성지를 만나기가 이렇게 어려운 일임을… 우리는 마지막 관문인 통천문을 통과해야 했다. 문을 지나니 이제야 우리를 맞이하기라도 하는 듯 서있는 바위 모습들이 수굿하다. 옛 사람들이 새긴 글씨의 흔적까지 있으니 이 산이 얼마나 위대한 산인가를 느끼겠다. 쉽게 열어주지 않는 천왕봉! 이제 마지막으로 정상을 둘러싸고 있는 듯싶은 거대한 바위를 기어오르다시피 오르니 정상, 바로 천왕봉이었다. 탁 트인 시야에 우리의 민족의 기상이 이곳에서부터라는 표지석이 서 있다. 사방을 둘러보니 지리산의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모두 이곳 영봉을 향해 예를 갖추고 있는 듯싶다. 참으로 통쾌하다. 내 의식 속의 지리산은 한없이 높고 깊은 산으로 각인 되어 있었다. 우리의 역사 속에 깊은 숨결로 남아 있기 때문 일 것이다. 좋은 것에 영험함을 불어넣고 사람들 스스로 그 영험함을 숭배하는 마음은 이 산의 전설들이 말해주고 있다. 우리 역사속의 붉은 색을 한 때나마 품어 주었고 그로 인해 또 다른 붉음의 희생을 겪어야만 했던 지리산은 말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내 오늘 우리의 기상이 시작된 이곳을 찾아 내 마음의 영욕에 휘둘리지 않으리라는 다짐을 해 보니 한결 산이 가까워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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