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사랑으로!!

내맘의 글방

무어든 이치 아님은 없다.

물소리~~^ 2012. 6. 11. 17:22

 

 

 

 

   늘 똑같은 시간의 숲길이지만 해가 일찍 뜨는 요즈음의 새벽은 이른 아침이라 함이 맞을 듯싶다. 알맞게 밝은 이른 아침의 숲길은 주위의 사물들을 또렷하게 보여주며 마음을 이끌어 주니 때론 걷는 행위조차 잊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사물을 세세히 바라볼 수 있음은 그들과 더욱 가까워 질 수 있는 시간이기에 나를 잊는 시간이 되기 때문이다.

 

사물에 통달한 사람이라면 사물에 대한 궁금함이 없이 바로 이치를 파악할 수 있겠지만, 모든 것이 부족한 나로서는 가끔 엉뚱한 상상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있다. 사물은 본시 그대로이건만 내 마음 따라 그들을 말하는 나를 어찌할 것인가. 나의 생각은 자연을 만나 날개를 달고 있으니 이 또한 나만의 병통일 것이다. 

 

아침 산행 나의 반환점 정점에는 오리나무 두 그루가 있다. 오리나무는 새 잎이 나와 진초록으로 물들어 가는 요즈음에도 해를 넘긴 까만 열매를 달고 있다. 마치 과거 현재 미래의 모습을 보여주듯 태연한 모습이다. 그처럼 세월에 초연한 나무 한 그루는 언제부터 인지는 모르지만 세월을 말해주는 구멍을 몸통에 가지고 있었다. 

 

그리 우람한 체격이 아니기에 기록에 남을 만큼의 오랜 시간을 지닌 나무라고는 말하기 어려울 듯싶은데 몸통의 구멍을 바라보면 꽤나 많은 세월을 지내온 흔적 같아 보이기도 한다. 이른 아침일지라도 밝음이 가득한 요즈음에는 그냥 그러려니 하지만, 어둠이 가시지 않은 겨울철에 그 구멍을 바라보면 괴기스런 느낌에 어느 땐 조금 무섭기도 하다. 하여 그 나무 가까이 가지 않고 그냥 되돌아 내려오곤 하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익숙해짐일까. 오랜 세월을 겪어온 흔적으로 보이면서 어느새 신비하고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아마도 지난 가을 그 구멍에서 새 한 마리가 앉았다가 내 기척에 재빨리 날아감을 본 후 부터일 것이다. 구멍 안을 병풍삼아 잠깐 쉼을 즐기고 있었던 것 아닐까 하는 생각에 나무의 최선을 다하는 베풀음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비바람에 제 살이 조금씩 씻겨 나감이었을까. 자연과 시간의 힘으로 이루어 졌다고 하기엔 수없이 반복된 그들의 노고로움이 먼저 느껴진다. 비바람은 얼마만큼 반복하며 나무를 스쳐 지났을까. 나무는 얼마만큼의 아픔을 참아내며 반복적으로 제 살을 씻겨 내곤 했을까. 이런 반복적인 행위로 빚어진 구멍으로 생각함과 동시에, 또 그 구멍이 땅 가까이에 있음을 의식한 순간 한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과골삼천(踝骨三穿) 이야기다. 

 

다산 정약용 선생과 제자 황상의 사제 간의 깊이 있는 만남의 이야기는 역사에 기리 회자되고 있다. 제자 황상은 나이 70이 넘어서도 늘 메모하며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를 본 사람들이 그 나이에 무슨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하느냐 물었다. 황상은 말하기를 “스승님(정약용)께서는 강진 귀양시절에 500권의 책을 앉아서 저술하시느라 복사뼈에 세 번이나 구멍이 났다. 그 가르침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느냐”고 하며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고 한다. 이에 나온 말이 과골삼천(踝骨三穿) 이었다.  

 

학문적으로나 신체적으로 한창일 때, 유배 온 정약용 선생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20년 동안의 유배생활은 얼마나 지루했을까. 그 절망 속에서도 오로지 학문에 정진하며 앉아서 책을 저술하다보니 복숭아 뼈에 구멍이 나기를 세 번이었다 한다. 어느 땐 너무 아파 앉지도 못하고 서서 하기도 했다고 한다. 스스로의 배움에 뜻을 두지 않고서는 능히 해 낼 수 없는 일이었다. 절망을 절망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 한 결과는 방대한 책으로 남겨진 외에도, 그 과정을 거친 순간까지도 과골삼천이란 말을 빚어내며 인류의 지침서로 남아 있다. 

 

우리 뒷산의 오리나무 역시 반복적인 자연현상으로 만들어진 제 몸의 아픈 구멍이었지만 필요한 동물들에게 잠깐씩 내어주었을 것이다. 반복적인 행동에서 비롯한 정약용선생의 신체적인 아픔은 훌륭한 업적으로 남아 우리를 자랑스럽게 해 주셨다. 이렇듯 형태는 다를지언정 반복되는 삶의 지루함을 스스로 비워내며 받아들인 결과는 크나큰 이로움으로 남겨 질 수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인간의 삶이 텅 빈 삶이라면 향기로울 수 있다고 선인들은 말 했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 반복된 자연현상들 뒤에 남겨진 나무의 구멍은 나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오며 매일 아침 나를 새롭게 해 준다. 그 새로움으로 오늘을 거뜬히 이겨낼 수 있음을 배우곤 한다. 한 달을 마감하는 시점에서 내 마음의 구멍을 만들어 반복적으로 만나는 숫자들의 지루함을 비워내야겠다. 이에 임무 완수라는 후련함으로 나를 충족케 해주는 이로움으로 남겨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내맘의 글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람과 리듬의 소리를 읽다.   (0) 2012.06.27
담은 소통의 공간이었다.  (0) 2012.06.18
기인을 만나다.  (0) 2012.06.07
지리산 천왕봉을 오르다.(2)  (3) 2012.05.19
지리산 천왕봉을 오르다.(1)  (0) 2012.0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