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그린 게 / 최북
일 년 전 5월에 ‘벽광나치오’ 란 책을 읽었었다. 300여 년 전 조선후기 여항문학의 주를 이루던 중인 계급층의 사람들이 이룬 문학적 가치를 알려주는 책이었다. 그 책 속의 인물 중 감명 깊은 사람 중 한 명이 화가 최북이었다. 그만큼 특별함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인물이었다. 모든 일은 5월에 이루어지고 있었는가?
우연찮게 신문을 읽다 국립전주박물관에서 5월 8일부터 화가 최북의 그림 전시를 한다는 기사를 읽고 내심 기뻐하였다. 바쁜 시기가 지나면 꼭 가보리라고 다짐했건만 어느새 6월을 맞이하고 말았다. 6월 17일 까지 인데… 한 순간 마음이 급해졌다. 또다시 월초의 바쁜 시기를 지나다 보면 놓칠 것 같은 조바심이 일었기 때문이다. 전화를 하니 좋아라 하며 같이 가자 한 친구와 토요일 늦은 오후에 다녀왔다.
박물관 정문을 들어서는 순간, 알 수 없는 안온함이 밀려온다. 멀리 다소곳하게 앉아 입장객들을 맞이하는 박물관의 모습에서 빚어지는 분위기를 단아함이라고 하기에는 무언가가 부족하다. 그 미묘함에 이끌려 한 발자국씩 들어서는 나의 눈에 잎을 파스텔 톤으로 물들이기 시작한 나무가 보인다. 어쩜 저렇게 예쁠까. 서둘러 나무 앞에 다가가니 아, 배롱나무였다. 미끈한 몸피에서 피어나는 잎들마저 티 하나 없는 여릿함이었다. 아! 이제 알겠다.
나에게 밀려드는 이 분위기는 계절이 안겨주는 분위기였다. 서둘러 제 각각의 모습으로 피웠던 꽃을 지운 나무들의 성숙함과 이제 조심스럽게 새로 꽃을 피워야하는 준비성의 조심스러움이 정숙함으로, 고요함으로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이곳에 머무는 계절만큼은 박물관이라는 장소에서의 배움의 흔적일 것이라고 생각하니 적이 안심이 된다. 나 또한 이 정숙함을 먼저 몸에 익힌 후, 전시실로 들어가니 또 다른 분위기에, 내가 이곳에 왔구나 하는 안도감이 스치며 뿌듯해진다. 최북의 호에 따른 구분으로 연이어진 전시실에 최북의 그림과 글씨, 또 그에 대한 기록 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최북은 호를 많이 가지고 있었다. 호생관, 거기재(居其齋), 삼기재(三奇齋)등 특이한 의미를 지닌 것 외에도 스스로 그의 이름 북(北)을 파자하여 ‘七七’ 이라 호를 정하기도 하였다. 칠칠맞은 사람이란 뜻일까? 문득 스스로 붙인 ‘七七’ 이란 호가 그의 행동과 묘하게 일치함을 느껴본다. 산수화를 잘 그려 '최산수', 메추라기를 잘 그려 '최메추라기' 라는 별명도 가진 최북은 미천한 신분이었지만 그 누구에게도 굴함이 없이 그림을 그렸던 화가였다!
천하 명산에서 죽고 싶다며 금강산 구룡연에 맨몸으로 들어간 일이며, 귀인으로부터 그림 주문을 받았으나 웬일인지 그림 진척이 더디었다. 이에 주문자가 재촉을 하자 최북은 스스로 송곳으로 자기 눈을 찔러 한쪽 눈을 실명한 채 일생을 보낸다. 조선의 고흐였다. 이런 저런 행동들로 최북은 광기어린 화가, 기행을 일삼았던 사람으로 회자되고 있다.
후세인들은 그의 광기어린 행동들은 순수함으로 채색된 강한 자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당시에는 중인계급 출신인데다 미친 짓을 일삼는 기인이라 생각했다. 만약 그에게 그림을 잘 그리고, 글씨를 잘 쓰고, 시를 잘 짓는 재주가 없었더라면 그는 영영 잊힌 사람이었을 것이다. 사람이 스스로의 가치를 창조할 수 있음은 시련을 이겨내는 노력에 의한 결과라는 것을 깊이 느껴본다.
호생관이라는 호가 말해주듯 붓으로 먹고 사는 직업 화가였다. 직업으로 한 사람의 능력을 평가한다는 것은 시대를 초월하여 참으로 어려운 일, 그 어려움을 훌쩍 뛰어 넘게 한 최북의 재주는 인간의 본성에서 나온 순수함을 바탕으로 한 문학과 예술이었다. 그 시대를 말 해주는 문학과 예술이었기에, 모든 어려움을 시공간을 초월하여 쉽게 풀어주며 이해의 벽을 허물어 주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었음이다.
이렇듯 그의 작품들이 재조명되면서 최북의 의식은 높게 승화 되고 있었다. 자신이 지켜내야 했던 삶의 고난을 이겨내며 순수한 열정으로 자신이 지닌 재주에 몰입했기에, 후세에 그의 가치를 재조명 받을 수 있었다. 자유는 생각을 실천하는 것임을 계절의 정숙함이 가득한 박물관에서 나는 은밀하게 배웠다.
우연의 일치일까. 매체를 통해 순수한 영혼을 지닌 사람에 대한 경우를 계속 접하게 된다. 나 역시도 순수한 마음과 열정의 표현을 희구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난 그런 고차원적 현상에 대처할 만한 나만의 재주가 없다. 하여 만약 내가 그런 행동의 소유자라면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미친 짓이다 라는 결론에 막달아 있을 뿐임을 깨닫게 되니 참으로 어리석다.
#.
그가 그린 그림 중 손가락에 먹을 찍어 그린 게 그림이 유독 마음에 들어온다. 뭉툭한 손가락에서 색감과 생물의 모습이 섬세하게 표현되었음에 놀랍기만 하다. 한편 ‘게’는 집게발로 움켜쥐는 습성이 있음을 차용하여 과거급제에 기원하는 의미로 그려 주고받았다고 한다. 내 이 그림을 꼭 품어 지내고 싶다.
'내맘의 글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담은 소통의 공간이었다. (0) | 2012.06.18 |
---|---|
무어든 이치 아님은 없다. (0) | 2012.06.11 |
지리산 천왕봉을 오르다.(2) (3) | 2012.05.19 |
지리산 천왕봉을 오르다.(1) (0) | 2012.05.19 |
두 바퀴를 저어 만나는 세상 풍경 (0) | 2012.05.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