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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천왕봉을 오르다.(1)

물소리~~^ 2012. 5. 19. 20:53

 

 

 

 

18일, 지리산 천왕봉에 다녀왔다. 언제부터 가려고 계획했던 일이 아닌 갑작스럽게 떠난 산행이었다. 유난히 작년부터 바삐 지내느라 일 년 하고도 몇 달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일을 해 왔다는 중압감은 하루쯤 쉬고 싶다는 열망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 막연한 중압감으로 그냥 5월 하루 어딘가를 다녀오자 작정하고 일이 조금 한가한 중순 이후부터 날짜를 헤아려 보니 이 역시 집안 행사로 만만치 않았다. 하여 남편이 갑자기 정한 지리산 천왕봉까지의 당일 코스였다.

 

나에게 지리산은 언제나 높고 깊은 산이다. 아이들 어렸을 적 노고단까지 올라가 본 것과 지리산 둘레길 코스를 자동차로 몇 번 돌아 본 것이 고작이었다. 지면에 철따라 지리산의 아름다움과 꽃들의 소식이 전해질 때면 늘 가보고 싶다는 그리움이 솟아나곤 하였다. 당일 코스로 다녀오려면 새벽 3시쯤부터 올라야 한다는 사전 지식이 있었기에 17일 오후 백무동으로 향했다. 어딘가로 떠난다는 것만큼이나 좋음이 있을까. 더구나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으로 찍어 두었던 곳이기에 약간의 설렘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2시간 반 여를 달려 도착한 백무동은 그냥 내가 그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하룻밤 숙박을 정한 산장 바로 옆의 계곡의 풍경이 지리산의 풍모를 말해주고 있었다. 인가 가까운 곳의 계곡임에도 집채 만 한 바위가 가득함은 경외심을 안겨주며 감탄을 자아낸다. 큰 바위 결 따라 흐르는 물소리의 우람함은 말없는 바위들의 마음을 대신 하는 듯 덩달아 맑고 세차게 흐른다. 그들은 고요할 뿐인데 죄 많은 나는 내 마음과 귀를 저절로 깨끗이 씻지 않을 수 없었다. 밤새 들리는 물소리와 천왕봉을 오른다는 설렘이 있어서인지 도통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그만 새벽 3시를 맞고 말았다.

 


밖을 내다보니 산이 내려주는 어둠이 매우 짙었다. 우리 뒷산과의 어둠의 농도 차이는 하늘과 땅 만큼이었다. 계획한 3시를 훌쩍 넘기고 4시에 조심조심 밖으로 나왔다. 시간 안에 내려오려면 서둘러야 했다. 간단한 배낭과 랜턴을 챙겨들고 등산 입구에 도착하니 어쩜 여기저기서 랜턴의 불빛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반가웠다. 모두들 당일 일정으로 계획한 사람들이었다. 심지어 서울에서 밤새 차를 타고 도착한 사람들이었다. 어쨌든 이 어둠에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안도감에 괜한 반가움으로 인사를 나누며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캄캄했다. 우리는 제일 뒤에서 천천히 오르기로 했다. 빨리 걷는 사람들을 따라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신체적인 열세도 만만치 않을 거란 최대한의 양보심으로 시작했다. 어두웠지만 다행히 새벽 산행을 계속했던 탓인지 몸은 무리 없이 잘 따라 주니 어느새 즐겁고 경쾌함이 번진다. 나는 산이 안겨주는 소리 있는 고요함이 참 좋다.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는 산의 소리이다. 검은등 뻐꾸기가 울기 시작한다. 아, 저 새는 우리 뒷산에서도 우는 새인데… 반가웠다. 낯익은 새 소리는 친근함과 함께 마음을 시원하게 해준다.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소리는 힘내라며 응원을 해 주는 듯, 여간 힘찬 소리가 아님에도 내 마음은 한없이 고요해 진다. 주위 풍경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내려올 때 까지 변함없이 기다려 줄 그들이기에 소리 있는 고요함으로 내 마음은 환해진다.

 


소리로 안겨주는 안도감이 있어 어둠 속 산길을 걷기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소리만으로 산의 모든 것을 바라볼 수 있는 ‘매직 아이’ 의 요술가가 될 즈음, 첫 번째 표지가 되는 하동바위를 만났다.

 

 

 

안내판을 찍으려 하니 카메라가 먼저 어둠을 인식하고 불을 밝혀버린다. 참 영리하지만 분위기를 모르는 카메라다. 길잡이 될 만큼의 바위모습은 내려올 때를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잠깐 계곡 바위에 걸터앉아 물과 오이 한 쪽을 먹었다. 조금씩 하늘이 밝아오기 시작한다. 어둠과 밝음이 교차하는 순간의 선해지는 마음을 나는 잘 안다. 밝음에 따라 보이는 풍경들에 마음이 압도당한다. 넘어진 큰 나무에 조차 위엄이 서려있으니 자연의 모든 것에 깃들은 선함은 나를 선함으로 이끌어 준다.

 

 

 

골 깊은 계곡을 따라 오르다 보니 지리산에서의 일출은 만나지 못했다. 에구 무슨 소리람 3대가 덕을 쌓아야만 볼 수 있다는 지리산의 일출이 아니던가. 이렇게 서서히 밝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음만으로도 난 덕을 1mm쯤 쌓아 놓았던 것일까. 어서어서 쌓아야지 하는 어린아이 같은 마음도 가져본다. 랜턴을 끄고 마냥 좋은 마음으로 걸어올라 문득 두 번째 표지판 참샘을 만났다. 시원한 물 한 모금을 마시니 힘이 절로 난다.

 

 

 

햇살을 맞 받으며 세 번째 표지판이 있는 소지봉에 오르니 이미 햇살이 번지기 시작했다. 참 감미롭고 부드러운 햇살이다. 조금은 공터가 되어 쉼터를 제공하는 소지봉에 햇살이 나무그림자들을 길게 내려준다. 표지석 옆에 서 있는 내 그림자도 함께 해 주니 그만 마음이 환해진다. 이만큼 오른 나와의 함께한 시간을 그들은 아주 기꺼이 챙겨주며 나를 인정해 주니 내 오늘 끝까지 이들과 소통하겠다는 마음이 앞선다.

 

 

 

소지봉을 지나면 산죽이 죽 늘어서서 모든 사람을 환영하는 듯싶은 좁은 길이 이어진다. 이 산에 어울리지 않은 소박하고 흙으로 된 길이다. 길게 늘어선 산죽들은 아주 작은 바람 한줄기에도 제 몸을 사각사각 비벼대며 정취를 자아내고 있다. 그들은 무심할 뿐이겠지만 난 이들을 바라볼 적마다 이유 없는 이런 분위기를 느끼곤 하니 어쩜 내 마음의 풍경인지도 모르겠다. 참 고즈넉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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