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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맘의 글방

화전을 만들며

물소리~~^ 2012. 4. 28. 23:12

 

 

 

 

 

 

   일요일 새벽에 눈을 뜨니 빗소리가 제법 크다. 밤새 내린 듯싶으니 산행은 쉽게 포기했지만 이제 막 피어난 꽃들의 안부가 못내 궁금하였다. 살그머니 까치발을 하고 베란다에 나서 보니 멀리 호수 따라 이어진 길이 하얀 구름에 싸여 있는 듯 뭉글뭉글 벚꽃들이 보인다. 아, 다 저 버리지는 않았구나 하는 안도의 마음으로 들어와 일요일 일과를 시작하였다. 늘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내 움직이는 발끝 따라 정렬되는 가지런함이 좋아 언제나 종종거리는 쉬는 날이다.

 

오늘은 여느 때와 다른 분위기가 자꾸 내 몸을 감싼다. 아마도 비가 가져다주는 차분함이 있어서일 것이다. 토요일이면 다녀가는 아들아이도 이번에는 오지 않고, 편은 잠시 일을 보러 외출하였으니 더 여유로운 마음이다.

 

밝지도 않고 어둡지도 않은 빛 속에는 잡히지 않는 보랏빛이 있음을 느낀다. 정남향이 아닌 우리 집 거실은 오늘 같은 날에는 보랏빛 밝음을 연출해 준다. 참으로 편안함을 안겨주는 빛이다. 청징한 빛을 받아 내는 것들은 아름답다. 무릇 아름다운 것에는 아늑한 평화스러움이 깃들어 있다. 봄 동산에 퍼진 햇살 속에도 이런 평화스러움이 있기에 아름답다 느끼는 것이 아닐까. 나는 아름답고 선하고 평화로운 것들을 만나면 한없이 차분하게 가라앉음을 느낀다.

 

새벽 여명에 보이는 모든 것들에게서 언제나 맑고 깊은 선함을 느낀다. 봄에 피어나는 꽃들을 보면 아름다움을 느낀다. 그 아름다움을 보이기까지의 그들의 노력을 따라가다 보면 깊은 심연에 닿은 듯싶은 느낌이 온다. 유난히 올 봄 꽃을 찾아보고픈 마음은 어디에 연유할까? 나이 듦이라 하기엔 조금 어색하다.

 

올 봄이 되기 전, 난 유난히 잃고 얻음을 한꺼번에 치러낸 듯싶다. 큰 아이가 임용에 실패했고 작은아이는 졸업과 동시에 대기업에 취업을 했다. 무조건 좋아하고 싶은 마음에 앞서 새로이 마음 다지기에 바빴다. 이런저런 생각에 집중을 한 탓일까? 지난 2월 20일에는 산에서 크게 넘어져 정신까지 잃기도 했다. 그 잃음에서 무언가 강하게 내 마음을 버리라는 계시가 있은 듯, 넘어진 그 순간과 장소를 나는 지금까지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그 잃음 들을 채우고 싶었던 것일까, 봄이면 환하게 피어나는 꽃들에 위안을 받고 싶어서일까. 일에 쫓기면서도 틈만 나면 뒷산으로 가까운 들녘으로 내달았다. 일요일 아침 비에 젖고 바람에 흩날리면서도 제 빛을 잃지 않은 벚꽃들을 바라보노라니 꽃을 찾아 나섰던 마음들이 허하게 느껴진다.

 

일을 마치고 우산을 들고 밖으로 나오니 발길은 어느새 산 입구에 다 달았다. 그냥 1봉까지만 다녀오자고 오르니 오솔길에는 벌레 모양의 연둣빛 오리나무 꽃이 주르륵 널려있어 차마 발을 옮기기가 섬뜩하다. 간밤 봄비 지나간 숲에서는 이제 다시 연한 연둣빛 새순들의 옹알거림이 들린 듯 하고, 비를 맞은 진달래꽃들은 힘을 잃고서 떨어트린 꽃잎으로 꽃길을 만들고 있었다.

 

마음이 싸해진다. 한 순간 이 봄이 가기 전, 꽃 찾아 나섰던 마음들의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진달래 몇 송이와 쑥 서 너 개를 뜯어 부리나케 집으로 향했다. 화전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꽃이 진다고 다 지나 내 마음에 이렇게 담을 수 있다면...

 

쑥 화전을 만들면서 큰 아이를 생각했다. 쑥은 우리와 참으로 친숙한 생물이다. 겨울 내 식상했던 입맛에 상큼함을 안겨 준다. 또한 쑥은 강인함을 지니고 있다. 2차 대전 시 히로시마에 이어 두 번째로 원자폭탄이 떨어진 나가사키 역시 폐허가 되었다. 모든 생물이 살아남을 수 없는 강한 독성이 가득한 나가사키 폭심에서 가장 먼저 돋아난 것이 쑥이라 하였다. 우리 아이에게 그런 강인함으로 다시 일어서기를 간절히 기원해 보았다.

 

진달래화전을 만들 때에는 작은 아이를 생각했다. 고운 빛으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안겨주면서도 맛으로까지 고움을 더해주는 진달래. 그에 효심을 담은 이야기까지 품고 있지 않은가. 이 고움을 아이가 살아가며 지녀가기를 소원해 본다. 자신의 고운 빛을 잃지 않으면서 남에게 기쁨을 주는 사람, 또 부모 형제를 귀히 여기는 마음의 소유자가 되기를 바래보았다.

 

꽃이 아닌 커피화전을 만들었다. 적은 분량의 커피가루를 넣었고 꽃 대신 건포도와 잣을 이용해 보았다. 이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 아마도 나를 위한 것임을 차마 말할 수 없었나 보다. 이미 꽃이 아니지만 그래도 독특한 기호 식품으로 아직은 식구들에게 피로감을 풀어줄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함을 말한 것 같기도 하다.

 

오늘 비 내리는 날씨 따라 거실로 찾아들어온 아늑한 빛에 마음이 차분해진다. 안온한 빛에 한없이 온순해지는 내 마음 따라 이제 봄꽃을 찾아 나섰던 마음을 놓고 서서히 연둣빛 새잎으로 변해 지기를 소원해 본다. 꽃비 내리는 날 착해진 마음으로, 꽃 지는 봄 날 한 자락을 마음에 남기며, 또 새로이 맞이하고 싶은 마음으로 화전을 만들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