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창포가 예쁘게 핀 수변 산책길을 걸으며 한 생각에 골똘히 잠기다.
나는 ‘맛난 만남’이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내가 이 말을 배우게 된 것은
한 대학 국문과 정민 교수님의 저서 ‘삶을 바꾼 만남’이라는’ 책의 서문을 읽으면 서다.
첫 문장에 나오는 말로 읽는 순간
전광석화처럼 내 뇌리를 스쳐 가면서 나를 자석처럼 끌어간 것이다..
이 책은 다산 정약용과 그의 제자 황상에 관한 이야기,
아니 학술적으로 파고든 논문에 이르는 내용이라고 나는 감히 말한다.
그즈음 다산의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에 관한 또 다른 책도, 소설도 읽으며 지내던 차에 접하게 된 책이었다.
내가 감히 이 두 사람의 귀한 관계를 말할 수 있는 자격이나 있을까
내가 지닌 그 무엇에 과연 인용할 수 있을까를 몇 번이나 고심하고 고심했다.
다산이 강진에서 18년 동안 유배생활을 한 사실은
그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다.
그 시절 다산은 그곳에서 단순히 유배생활만 하지는 않았다.
수많은 책을 집필했고 제자들을 양성했다.
그의 제자 중 가장 특별한 사람은 아전의 아들인 황상이었다.
황상은 다산에게 글을 배우러 오는 학생(동)들 보다 나이가 훨씬 많았다.
황상은 다산에게 자신은 둔하고 융통성이 없는데 글을 배울 수 있느냐고 묻자
다산은 그에게 부지런하면 된다고
‘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부지런하라’고 삼근계를 써 주었다고 한다.
하여 황상은 그 삼근계를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지니고 공부하고 공부했다.
다산은 황상에게 ‘치원’이라는 아호도 지어 주었다.
황상은 자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아버지를 이어 아전이 되었다.
다산의 유배가 풀리고 고향으로 돌아가자
황상은 아전도 그만두고
산속에 작은 집을 지어 ‘일속산방’ 현판을 걸고 스승 다산의 가르침으로 詩 공부에 전념했다.
18년이 지난 후, 스승의 회혼 기념일에 스승을 찾아가 뵈었다.
그때 두 분의 만남을 표현한 글(한시 번역글)은
지금 읽어도 그만 뭉클해지는 마음을 안겨준다.
황상은 다산이 돌아가시고 기일이면 산소에 찾아가 인사를 드렸다.
그는 다산의 아들들과 또 추사 김정희와도 각별하게 지냈다.
황상은 자신의 시문을 모아 ‘치원소고’라는 문집을 남겼는데 그 분량이 엄청났지만
남아 있는 것은 극히 소수라고 한다
저자 정민 교수님은 서문 말미에
다산과 황상의 관계에서 볼 때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내 삶에서 그런 만남을 가지려면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한지를 헤아려 보는 작은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 고 했다.
이 이야기를 대할 때마다
나는 우리 아버지와 아버지의 제자 한 분을 생각하곤 한다.
아버지께서는 초임지 근무를 하시면서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한 동네 청년 몇 명을 공부시키셨다.
토요일, 일요일이면 늘 우리 집(관사)으로 와서 아버지께 배우면서 교육과정을 거쳤고
검정고시를 치르게 하였는데 그중 한 명만 모든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공무원 시험에도 도전 합격하여 퇴직 때까지 국가 공무원으로 지내신 분이
지금까지 스승의 날이면 한 번도 잊지 않고 성의를 보여 주시고 계셨다.
올해로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22년째,
아버지 돌아가신 후로는
그분은 스승의 날이면 이제 어머니 통장으로 보내셨다.
어머니 살아생전 정정하실 때
아버지도 안 계시고 하니 이제 그만하셔도 된다고 그분께 강하게 말씀드리기도 했지만
대단하신 정성으로 계속하셨다..
작년에 어머니 돌아가신 장례식에 오셔서
남동생과 우리는 무한한 감사 인사를 드렸고
이제 어머니 통장도 없곤 하니 잊으실 줄 알았다.
이번 스승의 날은 음력으로 지내는 아버지 기일과 하루 차이기에
우리 모두 모여서 아버지, 어머니 두 분을 추모하기로 약속이 되었는데
남동생이 가족 단톡방에 카톡을 올렸다.
그분께서는 이제 다시 남동생 카카오톡으로 송금을 하신 것이다.
그 사실을 접하는 순간
그분께서도 하마 마음이 허전하실까~~
우리 남은 형제는 그저 마음이 헛헛할 뿐임에
나는 그렇게 옛 우리의 훌륭하신 선조님들의 맛난 만남의 생각에 잠기고 있다.
▼ 칠엽수(마로니에)
자꾸 허전해지는 마음~~ 시내를 벗어나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다 칠엽수(마로니에)를 만났다
아, 마로니에! 하면서 키가 큰 나무를 바라보며 천천히 지났다가
한참을 달려 되돌아와서 사진을 찍었다
너무 높은 가지의 꽃도 선명하지 않았지만
바람이 자꾸 일렁이니 잎자루에 달린 일곱 잎이 자세히 잡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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