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사랑으로!!

단상(短想)

모과나무를 바라보며...

물소리~~^ 2024. 5. 17. 12:42

 

 

 

 

5월 15일

아버지, 어머니 계신 곳을 우리 형제 모두 모여 다녀왔다.

아버님 기일이기도 하지만

어머니 가신 후, 처음 맞는 아버님 기일이기에

우리는 모두 한 마음이 되어 그렇게 부모님을 만난 뜻깊은 날이었다.

 

▲ 아버지 기일에 만난 모과나무

 

그곳에서 잘 자라고 있는 모과나무를 만났다.

나는 모과나무의 수피를 나무 중 으뜸이라 생각한다.

모과나무는 꽃이 지면 수피를 절로 벗겨낸다고 하였거늘~

초록색인 듯싶은데도 안쪽으로 갈색이 스며있는 껍질이 벗겨진 후,

상처처럼 남은 얼룩들을 시간이 지나면서 윤이 나는 매끈함으로 치장한다.

참으로 예쁘다.

 

또 한편 매년 이맘때쯤 모과나무를 바라볼 때면

묵은 껍질을 벗겨내고 있는 나무가 무척이나 가려울 것 같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그래도 벗겨내야 한다면 참아야 할 것이라고

미동 없이 묵묵히 제자리 지키고 있음은,

나무 자신을 지키기 위한 수행처럼 여겨지니 괜히 숙연해지는 마음이기도 하다

 

 

가을에 익은 열매의 모양과 크기가 참외와 닮았다 해서

‘나무에 달린 참외’라는 뜻의 목과(木瓜: 한방에서 모과를 뜻함)가 변해서 모과가 되었다고 한다.

모과나무는 장미과에 속하는 나무라 하니 장미의 유전자가 있어서일까.

수줍은 새색시의 두 볼처럼 불그스름한 앙증맞은 작은 꽃은

열매의 모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예쁜 모습이다.

 

 

 

예부터 사람들은 모과를 보고 세 번 놀란다는 말이 있다.

못생긴 열매에 한번 놀라고,

향기로운 은은한 향에 또 놀라고,

열매의 떫은맛에 다시 놀란다는 것이다.

 

모과는 매우 두꺼운 세포막의 단단함으로 맨입으로 먹을 수 없지만

그래도 쓰임새가 많아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열매의 못생겼다는 강한 이미지 때문에 과일전 망신은 모과가 시킨다는 말로

이 나무의 전부를 덮어버리는 일은 너무 억울하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 매력들을 얼마나 많이 숨기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겉모습만으로 한 사람을 평가하지 말라 한다.

각자가 지닌 숨은 매력들을 찾아내는 안목을 지녀야 한다고.…

나무에서 따서 맨입으로 먹을 수는 없지만

두고두고 삭혀 먹을 수 있는 맛과 향을 건네주며 살아야 한다고

모과나무는 은근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말한다.

 

 

▲ 2016년 다녀온 구층암

 

홍매로 유명한 구례 화엄사에서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면

구층암이라는 오래된 작은 암자를 만날 수 있다.

낡을 대로 낡은 이 암자에서 가장 의미 있는 귀한 존재는

스님이 기거하는 승방에 있는 모과나무 기둥이라고 하였다.

 

이 기둥은 인간의 손으로 다듬어진 흔적이 전혀 없다고 한다.

그래서 나뭇가지의 흔적, 나무의 결과 옹이까지도

그대로 기둥으로 삼은 독특함은 자연과 건축의 조화를 한 눈으로 보여 준다고.…

 

전혀 다듬지 않은 못생김이

건물의 기둥으로 오랜 세월을 지켜내고 있음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모과나무는 참나무보다 단단하지만, 나뭇결이 좋지 않은 나무라고 하니

아마도 저 기둥을 세운 사람은 단단함으로 기둥을 만들고 싶었으나

나뭇결이 좋지 않아 곱게 다듬을 수 없었던 것 아닐까?

그 뜻을 알 수는 없지만

사뭇 다른 기둥의 모습에서 자연 그대로 조화를 이룬 마음이라고 읽어내는 후손들이다.

 

▲ 나란히 서있는 구층암의 두 기둥

 

그렇다면 수피의 아름다움은 꽃의 예쁨으로 이어지고,

과일의 못생김은 거친 나뭇결에서 비롯된 것일까?

아름답고, 예쁘고, 못생기고, 거친 모든 것을 품은 암자 기둥에는

모과의 좋은 향이 스며있음은 물론, 거칠고 단단함으로  오늘날까지 굳건히 버티며

우리의 마음을 끌어가고 있으니,

문득, 하나의 사물이 근본으로 지닌 모든 것은

어느 것 하나 허투루 지나침이 없다는 이치를 속으로 되뇌어 보았다.

 

부모님이 남은 자식들에게 은근슬쩍 알려주시는 말씀이라고

애써 오늘에게 뜻을 부여하고픈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