쇤부른궁전에서 나온 우리의 다음 일정은 벨베데레 궁전이다.
이동하는 도중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쇤부른궁전에서 사납게 불던 바람에 구름들도 비가 되었나 보다.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로크양식의 벨베데레 궁전 역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곳이다.
이 궁전은 헝가리 부다왕궁 광장에 서 있던 동상의 주인공,
오스만제국을 물리친 유젠왕자의 궁전이라고 한다.
유젠 왕자는 루이 14세의 사생아라는 이야기도 떠도는데
프랑스에서 오스트리아로 망명하여 국가를 위한 업적을 많이 남긴 위인이다.
벨베데레 궁전은 두 개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는데
두 건물은 프랑스식 정원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으면서
상궁과 하궁으로 구분 짓고 있으니
쇤부른 궁전의 형태와 비슷하다고 하겠다.
이 궁전은 유젠 왕자의 사후에
마리아 테레지아가 매입하여 벨베데레 궁전이라 했으며
벨베데레는 전망대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때부터 전시관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의 일정은 미술관으로 운영하는 상궁 내부를 관람하고
하궁은 멀리서 외관만 바라보는 일정이다.
상궁에는 비엔나의 모더니즘을 이끌었던 클림트의 대표작 ‘키스’는 물론
클림트의 작품이 가장 많이 전시되어 있다고 이미 알고 있었기에 기대감이 크다.
수없이 매체를 통해서만 보아왔던 작품을 만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흥분되는 마음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이곳은 비 내리는 날씨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다.
또한 체코 라트란 거리에서 건물 앞의 모습만 보았던 에곤실레 작품도 볼 수 있고
그 외 세계적 근현대 미술가들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하니
내용은 몰라도 유명한 화가들의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컸다.
그림 따라 이동하다 한 그림 앞에서 가이드가 멈춘다.
그림을 보는 순간 눈 내린 땅 위의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림의 제목이 ‘나쁜 어머니들’이었다.
그림의 참뜻을 알지 못하는 나의 무지함이지만 그 내용이 무척이나 궁금했다.
가이드는 그림을 자세히 보라고 말한다.
한 여인이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것을 피하는 모습이란다.
그러고 보니 몇 명의 여자들이 왼쪽 나무에도 걸려 있다.
의상이며 머리가 마구 뒤엉킨 모습에서 무척 고통스러운 느낌이 전해온다.
처음 만나는 작품!
보는 순간 여인의 고통스러움을 느끼면서
저 여인은 왜 이렇게 고통을?? 했는데
요제프 오스트리아 황제도 이 그림에 감동하여
세간티니에게 편지를 보내 그림에 대한 설명을 부탁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 그림이 나온 배경은 뜻밖에도 그의 가정생활과 성장 과정이었다.
세간티니는 그 당시는 오스트리아 영토였던 이탈리아 북부 아르코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날 즈음 그의 형이 불에 타 죽는데
충격을 받은 어머니는 극심한 우울증을 앓고 이후로 아이를 돌보지 않았다.
그래서 어린 세간티니는 굶주림에 허덕였다.
일곱 살 때 어머니가 죽자, 아버지는 아이를 밀라노의 이복 누나에게 맡기고 사라졌다.
하지만 누나도 양육하지 않았다.
호적 신고도 하지 않아 세간티니는 오스트리아인도 아니고
이탈리아인도 아닌 무국적자가 되었다.
초등학교도 가지 못한 그는 집을 나와 밑바닥을 전전했다.
거리의 부랑아로 떠돌다가 재활원으로 보내졌다.
어머니와 아버지와 누나에 의해 세 번 버려진 것이 그의 어린 시절이었던 것이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자신을 돌보지 않았던 여인들에 대한 감정을
이렇게 그림으로 표현했을지.. 그만 먹먹해지는 마음이었다.
음악에서 모차르트가 오스트리아를 대표한다면
미술에서는 단연 클림트라고 말한다.
벨베데레 궁전에는 클림트의 '키스' '유디트' 등 대표작 24점을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그중 클림트의 작품 ‘키스’는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 같은 존재로 그 가치가 어마어마하다.
남녀가 끌어안고 있는 그림이 왜 이토록 유명한 걸까
단순히 그 까닭을 알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는 솔직한 내 마음이었다.
남자의 옷은 사각형 모양이 그려져 있고
여자의 옷에는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었다
노란 것은 그냥 노란색인 줄 알았는데 모두 금이라고 해서 놀랐다.
그런데! 다른 그림들의 액자는 짙은 밤색 테두리였는데
클림트의 키스는 검은 테두리의 액자였다.
그 순간 나 혼자만의 생각으로
조명에 반사돼 반짝이는 황금(진짜 금) 점이 더 뚜렷하게 보이기 위한 것! 아닐까? 했다.
클림트의 아버지는 금세공업자였다고 한다.
하니 클림트는 아버지에게서 배운
금을 아주 얇게 펴서 바르는 금박(Gold leaf) 기법을 쉽게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벨베데레 궁전에서는 '키스'를 최상급 보물로 특별히 관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 그림은 외국으로의 반출이 절대 금지되어 있으며
그림 가격이 얼마인지도 알 수 없다고 한다. '키스'를 절대로 팔지 않으려고...
대신 클림트의 그림을 활용한 기념품들은 엄청 많았다.
유디트는 한 여인의 이름이다.
성경을 아는 사람이라면 구약성서에 나오는 이 이야기를 모르는 분은 없을 것이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미망인 유디트는
홀로페르네스가 이스라엘을 침공하자
그를 유혹한 후 목을 베어 나라를 위기에서 구해낸 인물이다.
유디트를 다룬 작품들에서 그녀는 참혹한 장면과 함께 영웅으로 묘사되는데
클림트는 치명적 매력을 지닌 요부로 표현했다.
이 그림에서는 장군의 자른 목을 들고 있는 모습은 없다.
이 그림을 계기로 클림트의 전성시대가 열리며
미술사에서도 중요한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고 한다.
나는 일찍이 한 책을 통해 유디트를
우리나라의 논개에 비유한 내용을 읽었었다.
이에 관한 감상문을 오래전에 썼었는데 이참에 인용해 보았다.
나의 유디트 이야기 ☞ https://panflut0312.tistory.com/3481648
▲ 클림트의 또 다른 작품들 ▼
▲ 클림트의 또 다른 작품들 ▼
옆의 설명표에 이렇게 쓰여 있었고 설명을 듣지 못했다.
직역하면 "양과 히야신스가 있는 정물화" 쯤 될까?
에곤 실레의 그림은 화법이 특이해 그냥 지나쳐도 알아볼 수 있다.
실레는 단 28년을 살다 간 젊은 화가이다.
실레는 클림트가 발탁해 후원한 인물이라고 알려졌는데
둘이 처음 만났을 때의 클림트와 실레의 나이 차는 28년,
둘은 같은 해인 1918년에 사망한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둘의 공통점은 이렇게 생의 한 주기의 숫자에서 뿐만 아니라
닮은 듯 다른 애욕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점에서도 나타난다고 후세들은 이야기한다..
다만 클림트는 자화상을 한 점도 남기지 않았지만
실레는 요즈음 말로 셀카 찍듯 많은 자화상을 남겼다고 한다.
일찍 사망할 운명적인 자화상은 아니었을까~~
짧은 시간 동안의 미술품 관람을 마치고
북적거리는 기념품가게에서 몇 가지 선물을 골랐다
아닌 게 아니라 단연 으뜸 제품은 클림트의 키스 그림이 복제된 물건들이었다
나는 접이 우산, 작은 손가방, 머플러 두 개 등을 사 가지고 벨베데레 궁을 나섰다.
모두 클림트 그림이 들어 있었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온종일 이 미술관에서 지내고 싶다는 내색 못할 마음이 자꾸 뒤돌아 보게 한다..
기념품 판매하는 곳에서 구매한 키스 그림이 삽입된 아주 작은 가방을 들었다
우리는 벨베데레 상궁을 나와 비엔나거리를 걸어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으로 향했다.
식사 후 이번 여행 중 단 하나 선택관광으로 비엔나 음악회 감상이 있었으나
신청인원의 최소인원 10명이 안 돼 취소되었다.
비엔나에 왔으니 음악회 한 번쯤 감상하면 좋겠으나
관광상품으로 하는 음악회에 별 흥미가 없었던 것은 여행객 대부분의 생각이었나 보다
우리는 거리 구경을 한 후 호텔로 이동했다
다음 날 아침 식사 후 호텔 주변을 걷다가
위 호텔사진 오른쪽 정원에서 영춘화를 보았고
왼쪽 정원에서 자주광대나물 군락을 보았다
우리는 이제 오전에 오스트리아 마지막 일정으로
성슈테판 성당을 방문한 후 점심 식사를 하고 체코로 넘어간다.
이곳 여행지 날짜는 204년 3월 24일에 이르고 있으니
이제 여행의 끝을 향해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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