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사랑으로!!

감상문

한 사건을 접하고…

물소리~~^ 2016. 8. 12. 15:18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 여름 한 낮, 충격적인 뉴스를 접했다.

자택에서 남편 B(74)이 화장실 전등을 교체하려다가 넘어져 다치자,

아내(75)는 넘어진 남편의 머리를 둔기로 수차례 때려 살해했다고 한다.

살인도 무서운데 아내가 말한 살인 이유에 더 놀란 마음이었다.

결혼 후, 평생 자신을 폭행하고 무시했으며

넘어져 다친 몸으로 병원비가 많이 나올 것 같아서였다고 한다.

 

순간 놀란 마음이 휩쓸고 지나는 마음자리에 언뜻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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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딧!

내가 유딧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김형경의 사람풍경이란 책을 읽으면서다.

유딧에 관한 성서 이야기도, 그림도 전혀 알지 못했던 나는 그 책을 읽으면서 퍽 깊은 관심으로 읽었었고,

그 참혹한 이야기는 그저 성서이야기의 일화라고 단정 지으면서 관심이 흐려져 잊고 있었는데

오늘 기사와 함께 느닷없이 오버랩 되며 다시 마음이 기울기 시작했다.

 

그 책에서 작가는 친구의 말을 빌려 유딧을 이스라엘판 논개라고 표현했다.

 

유딧 이야기는 앗시리아의 왕이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땅을 정복하기 위해 홀로페르네스 장군을 파견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한다. 수많은 군사를 거느리고 유다의 베툴리아를 포위한 홀로페르네스는 물길을 차단한 채, 유대인들이 항복해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 미모의 유대인 과부 유딧이 도주한 것처럼 가장하고 적장 홀로페르네스에 가서 그가 승리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기분이 좋아진 홀로페르네스는 유딧을 자신의 막사로 초청하다. 유딧은 홀로페르네스가 술에 취해 잠들었을 때 그의 목을 베어 자루에 넣어가지고 돌아왔고 유대인 군사들은 간단하게 승리했다. 이 이야기는 역사적인 오류가 많기 때문에 사실성이 의심된다는 학자들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어, 시리아어, 히브리어, 라틴어 등의 판본으로 각각 보존되어 왔다고 한다. - 인용 -

 

그런데 이 이야기는 화가들에게도 강한 인식을 심어주었는지

유럽 곳곳의 미술관에는 유딧을 그린 그림들이 보존되고 있다 한다.

그림이 아닌 책에 인쇄된 사진으로 처음 만난 나도 적잖이 놀란 마음이었는데

실제 그림을 만나면 얼마나 전율이 흐를지가히 짐작키 어렵지 않은 그림들이었다.

 

 

▲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는 유딧 / 사진출처 : 인터넷

  발랭탱 드 블로냐 (1591~1632)/ 프랑스

 

 

 

Malta 1975, July 15 sc#496

Judith and Holofernes, by Valentin de Boulogne.

 

이 그림은 프랑스 작가의 그림임에도

몰타 우표에 삽입되었었는데

이유는 몰타의 발레타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기 때문이란다.

 

 

▲  유딧과 홀로페르네스 / 사진출처 : 인터넷

미켈란젤로 다 카라바조(15731610) / 이탈리아

 

 

머뭇거림도, 두려움도 없이 나라를 위해 적장의 목을 벤 여인의 모습에서

숨겨진 분노의 감정을 읽었다면 거짓이었을까?

모든 것을 체념한 듯싶은 차분함이 있어 왠지 모르게 슬픔을 느껴졌던 기분이

오늘 이 기사를 보면서 갑자기 되살아났다.

남편을 살해한 아내의 응답은 어쩌면 우리 모두 내면에 알게 모르게 잠재된 의식일 수 있기에

우리 모두는 유딧이 될 수도 있다고 무서운 결론을 내려 보았다.

 

얼마나 속으로 삼켜둔 분노였을까.

그 어떤 해결 방법을 찾아보지도 않고 오로지 자신이 당해야만했던 그 무슨 이유가 있었을까.

그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이유들에

자신의 내면에 쌓인 마음들로 달아 놓은 댓글들을 읽으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혹자들은 대화로 풀어나갔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대화가 통하지 않을 때는?

자존심과 자신만이 지켜오고 있던 이미지에 대한 침해의 공격이라면

걷잡을 수 없는 분노의 감정에 휩싸여야 했고 또 참아야했을 것이다.

 

결국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분노였을 것이다.

하여 그때그때 그 분노를 표출했어야 했고 화를 냈어야 했다.

화는 우리의 적이 아니라 끌어안아 주어야 할 아기라고 틱낫한 스님은 말했다. 

아이에 대한 그런 사랑스런 마음으로 자신의 화를 다스렸다면

오늘 같은 이런 충격적인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안타까운 한 숨을 토해본다. 

 

명화나 작품들에 감상은 온전한 개인의 것이라고 믿는다.

화가나 작가의 마음이 절대 아닌 오로지 내 마음으로

사건과 그림과 그에 딸린 역사를 엮어보는 단순한 나의 취미이기에

한 기사와 한 그림을 떠올려 보면서

그에 더 나은 의미를 찾아보고자 함은 온전한 내 개인의 감정임을 밝혀두고 싶다.

 

여러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서

우리나라의 논개를 떠올렸고

어느 해 논개를 주제로 공연한 무용을 관람하면서

일부를 촬영한 동영상을 올려본다.

 

https://panflut0312.tistory.com/348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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