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뒷산을 오를 때면 시간 관계상 왕복 1시간 거리를 정하여 다녀오곤 한다.
내가 되돌아오는 반환점에서 곧바로 나아가 6차선 도로위의 터널 다리를 지나면
공원 산으로 넘어 갈 수 있는데도 한 번도 건너보지 못했다.
언제부터 한 번 꼭 건너보고 싶었던 길이다.
지난 일요일,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 나의 반환점에서 돌지 않고
터널 다리를 지나 공원 산으로 넘어 갔다.
터널 위의 길이 삭막할 것이라 예상 했는데
숲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처럼 착각할 정도로 의외로 잘 꾸며 놓았다.
철쭉도 명자나무도 당매자나무도 많이 식재되어 있으니
이른 봄이면 정원처럼 예쁘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또 하나의 나의 숨은 공간이 있다는 기쁨이 차오른다.
공원산은 사무실 이사하기 전, 사무실에서 가까운 산으로 짬짬이 자주 올랐던 산이다.
거리가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했던가.
공원 산에 진입하여 오랜만에 만난 기쁨으로 또박또박 발걸음을 옮기는데
머리 위에서 까마귀들의 울음소리가 시끄럽다
까마귀를 흉조라 했는데 무슨 불길한 일이? 하는 생각이 스쳤다.
오늘 나의 행보에 무슨 나쁜 일이라도 있을까? 하는 께름칙한 마음으로
그냥 지나치려 했지만 나를 보고도 날아가지 않고
지들끼리 계속 극성스럽게 까아악 까아악 하는 소리에 걸음을 멈추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조금 후에 한 마리가 다시 날아오더니 그들과 합세 한다
아무래도 한 가족인 듯,
그렇게 그들은 나머지 한 식구를 부르고 있었나 보다
어디 야유회라도 가려는지…
까마귀를 흉조라 함은 아마도 깃털이 온통 검정색인데다,
시체를 먹는 불결한 습성을 가진, '죽음'을 표상하는 새라서 그렇다는 설이 있다.
인간 세상만사 일체유심조라 했거늘...
모처럼 나도 공원 산으로 소풍을 나왔으니
애써 좋은 방향으로 까마귀를 생각하면서 기분 좋은 걸음을 옮기고 싶다.
까마귀의 또 다른 이름은 반포조(反哺鳥)이다.
그래! ‘반포지효', '반포보은'이라는 고사성어가 있지 않은가.
까마귀는 새끼가 부화하면 이소하기까지 60일간 어미가 먹이를 물어다 먹여 키운다.
그 까마귀가 자라면 어미 까마귀는 날아다닐 기력조차 떨어져 먹이 사냥을 못하는데
이때 늙은 제 어미에게 자란 새끼 까마귀가 힘이 부친 어미를 부양한다고 한다.
이처럼 어미를 되먹이는 습성을 반포(反哺)라고 하는데
새들 중에 유일하게 늙은 어미를 돌보는 반포조 까마귀인 것이다.
미물치고는 참으로 영물 아닌가!
온통 새까만 모습만 보고, 곱지 않은 울음소리만 듣고
흉조라 여기며 기피했던 내 마음을 돌려 세우고 싶다.
울 어머니를 생각하노라니 그만 억장이 무너진다.
나는 과연 어떠한 마음가짐일까.
까마귀만도 못하면서 감히 까마귀를 흉조라 하며 피하려 했지 않은가
화제: 樹裏窺人半在空 (공중의 나무 위에서 사람을 바라보네.)
부모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까마귀를 ‘팔가조(八哥鳥)’라고 부른다. - 인용 -
이러 저러한 생각에 잠겨 힘없는 걸음으로 계속 걷다 원추리무리를 만났다.
낮은 산에서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노란 원추리를 만난 기쁨에
얼른 사진을 찍고 보니 등산로가 아닌 샛길로 들어선 나를 발견한다.
다시 정상적인 길로 들어서니 원추리 꽃이 보이지 않는다.
문득 내가 이곳에서 원추리 꽃을 만날 수 있었음은 분명
孝鳥(효조)인 까마귀를 만난 행운에서 비롯되었다고 마음을 다 잡고 계속 걸었다.
일체유심조였다.
'단상(短想)' 카테고리의 다른 글
8월이 이렇게... (0) | 2020.08.23 |
---|---|
낯설음 앞에서 (0) | 2020.08.09 |
바람 비를 만난 날 (0) | 2020.06.30 |
명태껍질은... (0) | 2020.06.16 |
계절 음식을 준비하며... (0) | 2020.06.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