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5일 오후 (현지시간) - 세비야
우리는 살아가면서 한번쯤 여행에 대한 동경을 지니게 되지만 마음대로 할 수 없음도 사실이다. 비용도 그러하지만 현재의 내 위치에서 남에게 피해주지 않는 시간의 선택을 하기란 용기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행을 하면서 느끼는 일탈의 짜릿함과 알게 모르게 채워지는 충만함이 있기에 스스로를 합리화 시키며 여행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해외여행~~ 내 나이도 나이지만 각국의 언어 소통이 안 되니 내가 선택하는 최선의 방법은 패키지여행인 것이다. 내 마음대로 구경할 수 없는 불편함은 있지만, 일정을 따라 소화하느라 어려움도 있지만, 그래도 볼거리를 볼 수 있음에 하나라도 값진 시간이 되려고 나름 열심히 따라 다니면서 보고 듣는 시간인 것이다.
15일 오전 일정을 마치고 우리는 바로 세비야로 이동했다. 그라나다에서 3시간이 걸린 것이다. 세비야는 붉은 천을 들고 혼을 다해 춤을 추는 집시여인의 춤, 플라멩코의 본고장 이다. 이곳은 콜럼버스가 대항해를 시작한 곳이며, 오페라 카르멘를 비롯해 많은 영화 무대의 지역이다. 정열의 나라 스페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인 것이다. 하니 이 또한 많은 이야기들이 있을 것이란 기대가 차오르니 이동 시간에 잠도 오지 않는다. 그렇다. 오늘 점심은 무엇을 먹었던 것일까? ~~
세비야에 도착하여 알카사르 궁을 찾아 걸어가면서 황금의 탑을 만났다.
▲ 황금의 탑
13세기 초에 세운 12각형 형태의 탑으로
황금의 탑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탑의 상부가 황금색이었다는 설과
신대륙 발견으로 차지한 아메리카 식민지로부터 실어 온
금은보화를 보관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현재는 해양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세비야는 그리 넓지 않은 곳 이어서인지
주요 관광지가 모두 도보로 이동할 만큼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황금의 탑을 지나 알카사르로 걸어가는 중에 만난 마차들이 거리를 달리고 있다
우리도 마차 투어 예정이 있는데 말의 분비물 냄새가 났지만
경쾌한 말발굽 소리에 냄새가 묻혀 버리는지 모두들 태연하다.
알카사르
세비야의 알람브라 궁전이라 불리는 알카사르는 그라나다의 알람브라궁전의 자매라는 명성이 있어 세계 각국에서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단다. 나도 그 중의 한 명 이려니~~ 그런데 우리 가이드는 알카사르의 정문에 엄청난 인파가 몰려 있음에 다른 문으로 입장을 시도하고 있었다.
712년 무어인에 의해 요새로 지었다가 9세기에 궁으로 개조되었으며
레콩키스타 이후 개축되면서 고딕양식도 더해졌다고 한다.
14세기 말 그라나다 알람브라 궁전에 반한 페드로1세의 명령으로 똑같은 형태로 지었으며
알카사르는 지금도 스페인 왕족들의 거처로 사용되고 있단다.
(무어인 : 이슬람계인으로서 이베리아 반도와 북아프리카에 살았던 사람들을 지칭하는 용어)
밖에서는 그냥 투박한 건물처럼 보였으니 순간 실망이 들었다. 이런 건물에 ?? 하지만 안으로 들어선 순간 그 화려함에 그만 입을 다물지 못했다. 건물 디자인의 세세함과 이슬람과 기독교 양식이, 무하데르양식과 고딕양식이 혼합된 화려한 아름다움에 그 옛날의 기술이 얼마나 발달 되었는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된 것이다.
1층의 큰 방에는 기독교풍의 다양한 그림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위 그림은 순전한 내 혼자만의 생각으로
이사벨여왕과 콜럼버스의 항해에 대한 그림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가이드와 헤어져 자유시간 관람이었기에 설명을 들을 수 없었음)
▲ 콜럼버스가 항해하며 탔던 배의 모형
▲ 대사의 방
알카사르의 꽃이라고 불린단다
각국의 대사들이 왕을 만나기 전 대기하는 공간으로 황금빛의 천장이 화려하다
우주를 형상화 했다고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사진기를 천장에 대고 있다,
이사벨여왕이 결혼한 장소라고....
▲ 대사의 방 천장
▲ 둥근 아치는 말발굽 형상이란다
무늬의 세세한 아름다움에 입이 다물어 지지 않는다. ▼
▲ 또 다른 방의 천장
▲ 창밖의 나무가 창의 무늬와 참으로 조화롭다
▲ 건물 내부에서 나와 눈부신 정원을 바라보며....
▲ 처녀의 정원
알카사르의 중심으로 연못을 두고 양쪽이 대칭을 이루는 형식이
우리가 만나지 못한 알람브라궁전의 나스르궁을 그대로 닮았단다.
정원 가운데 연못에 건물의 반영이 그려진다.
이 모습을 세계의 많은 건축학자들이 무데하르양식의 정수라고 한단다
'처녀의 정원' 이라는 이름은
이슬람 왕이 기독교도에게 매년 100명의 처녀를 바치라고 요구했다는 전설에서 유래 되었다.
시간을 쪼개고 쪼개면서 만나야하는 역사의 흔적 앞에
한 없이 머물고 싶은 내 마음을 아랑곳 하지 않고
다음 장소로 향하자는 가이드의 말이 야속했지만 어쩔 수 없이 따라 나서야 했다
왕이 머무는 장소 이전에, 그 시대의 문화를 총 동원해서 이룩한 건물이기에,
어쩌면 그 시대의 사람들 후손이라는 현재의 인류들에게
희망을 안겨주는 메시지인 것만은 분명한 것이다.
알람브라의 나스르궁을 만나지 못한 대신 알카사르 궁을 봤지만
대신이 아닌 본질을 만나 훨씬 값있는 시간으로 채웠음에 만족한 짧은 시간이었다.
세비야 대성당
알카사르를 나와 우리는 다시 걸어서 그 유명한 세비야 대성당으로 향했다.
멀리 보이는 탑이 대성당의 탑.
우리 일행들은 걸으면서도 풍경을 쫓느라 짝꿍도 잊은 채 무작정 걷고 걸었다.
세비야 대성당은 가까이에서는 한 눈에 들어오지 않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규모란다.
원래 이슬람사원이 있던 자리에 성당을 짓기 시작하여
근 100년 동안의 공사를 통해 1526년에 완공 했단다.
▲ 히랄다 탑
풍향계라는 뜻의 히랄다 탑이란다.
탑 꼭대기에 높이 4m의 여인상은 바람이 불면 회전하는 풍향계이며
손에 깃발과 종려나무를 들고 있다고.
높이 104m의 탑에는 계단이 없고 경사로가 형성되었다는데
이는 이슬람교도들이 당나귀를 타고 올랐기 때문이란다.
훗날 이슬람교도들이
자기들이 해놓은 그대로 사용하는 모습을 보고 비웃었다는 일화를 들려주었는데
아름답게 건설한 그 자체를 부수지 않고 지켜준 마음도 더 없이 아름답지 않은가.
탑 꼭대기 전망대에 오르면 더욱 좋았을 텐데 탑의 보완 공사 중이었다.
성당 내부에 들어서는 순간 감탄이 절로 나왔다
마주친 왕실예배당은 온통 금으로 장식되어 있었던 것이다.
▲ 왕실예배당
고딕양식의 중앙제단으로 약 80년에 걸쳐 빚어낸 걸작으로
예수의 생애 28개의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000명이 조각되어 있단다.
제단 앞은 철망이 쳐 있었다.
금을 자꾸만 떼어가는 바람에 망을 세웠는데
망 사이로 카메라를 넣어 사진 찍는 사람들도 성당의 일부가 된 듯싶었다.
한 번에 다 잡히지 않아 천정과 벽면을 나누어 찍었다.
이 금들은 콜럼버스가 발견한 신대륙에서 들여온 금이라고 하니
콜럼버스는 스페인의 국익에 지대한 공헌을 했던 것이다.
▲ 예배당 앞의 성가대자리
만 개나 된다는 파이프오르간이 장관이다
대성당에 있는 콜럼버스의 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콜럼버스는 신대륙 발견의 꿈을 갖고 후원을 받기 위해 당시 해상왕국인 포르투갈. 프랑스 왕을 찾아가지만 거절당한다. 그러다가 해상무역에 관심이 많은 이사벨여왕 부부로부터 항로 개척을 위한 산타페 협약을 맺고 항해에 나섰다. 처음 발견한 아메리카 대륙을 인도로 잘못알고 그곳이 스페인 땅임을 선포하면서 스페인을 강국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이사벨 여왕이 사망하자 스페인 정부는 투자가치가 없다고 지원을 멈추고 외면한다. 그 후 콜럼버스는 55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면서 죽어서도 스페인 땅을 밟지 않겠다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 성당안의 콜럼버스 묘
죽어서도 스페인 땅을 밟지 않겠다는 유언으로 스페인 왕실에 대한 배신감을 토해 낸 그의 유해는 쿠바의 아바나로 옮겨졌다가 1899년에 영웅으로 추대되어 세비야 대성당에 안치된다. 그의 유언에 따르기 위해 그의 관을 땅에 묻지 않고 들고 있는데 그의 관을 메고 있는 사람들 이야기가 재밌다.
그를 지지했던 왕들은 앞에서 당당하게 들고 있지만 그를 배척했던 왕들은 뒤에서 고개를 떨구고 관을 메고 있다고... 쿠바의 그의 묘가 확실하지 않은데 그의 아들과 유전자 검사를 하고 확인했다는 소문도 있다고 한다. 나는 문득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사람이 왜 스페인까지 와서 신대륙 발견 위업을 세웠는지 참 궁금하였다
▲ 콜럼버스 관을 뒤에서 메고 있는 왕들의 고개 숙인 모습과 축 처진 어깨 ▼
▲ 관 밑의 문양에서 내 눈으로는 이집트 풍이 느껴졌다.
▲ 은의 제단
성당 곳곳에는 엄청난 가치를 지닌 보물들이 가득하였다.
▲ 또 다른 성가대의 파이프 오르간
이 오르간들이 울리는 시간의 음향은 얼마나 장엄할지
오렌지정원
눈은 호강 했지만 엄청 많은 걸음을 걸은 탓인지 어딘가에 앉고 싶었다
가이드와 오렌지 정원에서 만나기로 하였기에
정원으로 나오니 분수대도 있고 정말 오렌지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귤나무는 보았지만 오렌지 나무는 처음인지라 신기했다. 노랗게 익은 열매도 있고 아직 새파랗게 달린 열매도 있었다. 이 정원 또한 대성당의 명소로 이슬람 신도들이 손과 발, 얼굴을 씻는 의식을 치른 장소란다. 히랄다 탑이 오렌지나무와 함께 더욱 고풍스런 멋으로 서 있었다.
▲ 우리는 면죄의 문을 통해 성당을 나왔다.
우리는 대성당을 나와 마차를 타고 시내 투어를 하기 위해 걸어가면서 곳곳에서 크고 작은 광장들을 지나쳤다. 마차를 타고 루이사 공원을 지나고 반환점에서 잠시 쉰 다음 스페인 광장까지 마차를 타고 갔다. 스페인은 성당과 광장문화라고 한 말이 생각난다.
마차의 반환점에서 우리를 내려준 마치들이 일렬로 서 있다
따각따각 마차를 타는동안 눈으로만 풍경을 구경하였다.
피곤 했던 몸이 잠시 풀리는 듯싶다.
스페인광장
▲ 스페인광장
우리에게 낯익은 광장이다.
김태희와 한가인 배우가 광고촬영을 했던 광장이기 때문이다.
1929년에 열린 라틴아메리카 박람회장의 대회장으로 조성되었는데
반원형의 건물과 광장을 따라 운하가 흐르고 있었다.
탑은 세비야대성당의 히랄다 탑을 본 떠 만든 탑이란다.
건물 아래의 타일 벤치는
스페인 58개의 도시의 휘장, 지도, 역사적 사건들이 장식되어 이채로웠다.
우리는 이곳에서 팬플룻 연주자를 봤고
그 자리에서 엘 콘도 파사 라는 곡이 들어있는 CD 한 장을 구매했다.
▲ 광장을 따라 흐르는 운하
▲ 박람회 때, 하나의 부스에 한 도시의 특징을 담은 타일 장식
지금은 벤치로 이용되고 있었다.
플라멩코
오랜 세월 고통과 핍박속에서 살던 집시들이
자신의 삶을 대변하듯 토해낸 노래와 춤은 강렬한 개성을 가진 예술로 인정을 받고 있으며
스페인 공연문화로 정착했다.
김태희가 빨간 드레스를 입고 춤을 추는 광고이미지 때문에 예쁜 춤이라고 인식되어 있지만
사실은 집시들의 애환이 서려있는 춤이라고 한다.
신발에 특수 장치를 했는지 발로 맞추는 리듬이 경쾌하고 밝았다.
어떻게 저리도 빠른 동작으로 박자를 맞추는지...
플라멩코 공연관람을 끝으로 하루 일정을 마치고 호텔로 갔다.
늦은 시간까지의 일정으로 많이 힘들었지만
뿌듯한 하루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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