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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따라 문화 따라 6 (스페인 그라나다)

물소리~~^ 2019. 11. 7. 13:18



10월  15일 오전(현지시간) -그라나다에서


▲ 이른 아침 알람브라 궁전을 찾아 가는 길



▲ 궁전 가는 길에 만난 하몽

스페인 거리를 걷다보면 흔하게 만날 수 있는 모습

이는 돼지 뒷다리를 소금에 절여 최소 6개월 이상 건조와 숙성을 반복해 만든 생 햄으로

냉장시설이 없던 시절에 장기간 보관하고 먹기 위해 탄생한 요리


▲ 집들이 예쁘다.



<알람브라 (알함브라) 궁전>  

여러민족이 침입해 흥망성쇠를 거듭해온 스페인은 문화도 역시 다양하다.

특히 800년 동안 지배한 이슬람교의 영향으로 이슬람문화가 짙게 남아 있다.

그 중에서 이슬람문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알함브라 궁전의 관람은 스페인 여행의 필수이다.


알람브라 궁전은 아랍어로 붉은 성을 뜻한다.

이베리아반도의 마지막 이슬람 왕조인 나스르 왕조는

그라나다를 거점으로 삼고 1238년부터 궁전을 짓기 시작했다.

번영을 누리던 이슬람왕조는 1492년 레콩키스타(국토회복운동) 완성으로 막을 내리게 된다.

이후 궁전은 카톨릭 세력이 주인이 되면서 이슬람과 카톨릭 양식이 결합된 형태를 보이게 된다


알람브라 궁전은

헤네랄리페(별궁), 알카시바, 카를르스 5세 궁전, 나르스 궁전 등으로 구분 된다고 한다.

이중 가장 핵심인 곳은 나스르 궁전으로 우리에게 알함브라 궁전으로 잘 알려진 곳인데

문화유산 보호정책으로 관광객 수를 10분의 1로 줄여, 하루 200명만 예매하고 입장하는데

우리는 아쉽게도 탈락되어 입장하지 못하고 카를로스 5세 궁전으로 입장했다.

우리식으로 이야기하면

경복궁에 입장하여 근정전을 관람하지 못하고 강녕전을 관람한 경우인 것이다.

우리들의 아쉬움을 아는 듯,

가이드는 세비야의 알카사르궁이 알람브라궁전의 나스르 궁 그대로 지어 놓은 곳이니

오후에 그곳을 방문할 것이라며 우리를 달래 준다.



<카를로스 5세 궁전>

1526년 그라나다에서 신혼여행 중이던 카를르스 5세는

황제 위상에 부합하는 궁전을 짓기 위해 나스르 궁전 일부를 헐고

그 자리에 르네상식 양식으로 궁전을 세운다.

하지만 자금 부족으로 미완성 되었던 것을 20세기에 와서 완성한다.

알람브라 궁전의 화려함과 달리 튼튼한 모양으로 지었기에

알람브라 궁전에서 가장 조화롭지 못한 건축물로 평가 받는다고 한다.





▲ 우리 가이드가 열심히 건축 조각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가이드는 얼마나 많은 역사 지식을 가지고 있는지

설명 들을 때마다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 돌기둥의 섬세함




겉은 육중한 사각형의 모양인데 안으로 들어서니 2층 원형구조로 되어 있으니

마치 원형극장처럼 느껴졌다

덕분에 음향효과가 좋아 지금도 여름 음악제가 열리고 있단다.

1층은 알람브라 박물관, 2층은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 알카사바

알람브라 궁전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군사 요새였다.

사진은 알카사바 입구에 있는 탑으로

알함브라 궁전에서 제일 높은 누각으로 카를르스 5세 궁전 바로 앞에 있었다.



▲ 카를르스 5세 궁전의 건물 벽의 조각



▲ 알카사바 입구



▲ 카르르스 5세 궁전 주변 건물 ▼



▲ 카르르스 5세 궁전을 나외 왕실예배당을 향해 가는길

왕실예배당 가는 길은 어제 밤에 걸었던 길인데 분위기가 다르다



▲ 개인의 집들이 고풍스럽고 아름답다.▼



▲ 스페인의 도로는 대부분 이처럼 돌로 닦여 있었다.




<왕실예배당 : 이사벨 여왕이 잠들어 있는 곳>

8세기부터 약 800년간 풀지 못한 오랜 유럽의 숙원인 레콩키스타를 완성하고

분열된 이베리아반도의 왕국을 통일한 영웅이 스페인의 여왕 이사벨1세다.

통일 스페인의 어머니라 불리며 존경받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카스티야의 공주로 태어나 이복오빠 엔리케4세의 견제를 받아 숱한 어려움을 겪었지만

영민했던 어린 소녀는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와 결혼하고 탁월한 치세로 왕위에 오르게 된다.

이후 더 많은 힘을 모아 그라나다 정벌이라는 과업을 이룩하고

더 나아가 종교통일(카톨릭)까지 이루고자 했다.


이사벨1세는 영토 확장과 카톨릭 전파를 목적으로 콜럼버스를 후원했는데 그 결과로 얻은 

많은 식민지를 통해 막대한 부를 축척하면서 유럽의 강자가 되었다.

이사벨1세는 오직 국가와 국민을 위한 왕으로서 찬란한 스페인의 전성시대를 열었으며

스페인 역사상 가장 빛나는 리더로 손꼽힌다.



▲ 왕실예배당 입구 (왼쪽, 아침햇살의 그림자로 입구가 어둡게 나왔다)



▲ 왕실예배당의 건물 내부는 촬영금지였지만 입구의 이곳만큼은 촬영이 가능했다.



▲ 이슬람왕조의 항복을 받고있는 이사벨여왕 (위 액자내의 그림)



의자에 앉아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차례에 따라 여왕의 묘 옆으로 걸어들어 갔다.


▲ 이사벨여왕의 묘

사진 촬영이 엄격히 금지되고 있는데도

인터넷에는 사진들이 올라와 있어 인용했다.


스페인의 황금시대를 이루었던 이사벨 여왕은

그라나다에 묻힐 것을 원해 1504년부터 예배당을 짓기 시작했으나

완공을 보지 못하고 1516년 사망했으며,

1521년 예배당이 완공된 뒤 남편인 페르난도 2세와 함께 안치되었다.

마지막으로 그라나다를 정복하여 스페인 왕국을 이룩한 이사벨 여왕은

죽어서도 그라나다에 묻히기를 원했을 만큼 나라 사랑의 마음이 컸던 것 같았다.



▲ 건물의 내부 촬영은 금지되어 있어 나는 열심히 건물 밖의 사진만 찍었다.



우리는 오후 일정을 위해 세비야로 이동

역시 3시간이 소요되는 거리 이동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