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 후유증으로 한 달 이상을 고생하여서인지 내 몸 사리느라 설날을 맞이하는 긴 연휴가 조금은 부담스럽게 느껴졌는데 어느새 연휴 마지막 날이 되었다. 명절 전날은 음식 장만하고, 설날에는 시댁에서 차례를 지내고 점심 무렵에는 친정어머니께 다니러 가서는 반갑고 정겨운 혈육들과 노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연휴 마지막인 오늘은 냉장고 정리를 하고 주고받은 선물 상자들을 정리하였다. 선물의 내용물만을 종류별로 나누어 보관하면서 포장박스들을 과감히 분리해 놓고 보니 세상에~~ 빈 박스가 탑을 이루는 것이 아닌가. 내용물을 고급스럽게 보이기 위한 치장이 버려지기 위한 것이라니 정성 들인 마음을 버리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앞선다.
이렇게 모든 포장박스를 버리면서도 진정 버리기 아까워 남겨두는 것이 있으니 한과박스다. 다른 포장박스보다도 유난히 단정한 화려함으로 장식된 한과 박스를 바라보면 괜히 정이 앞서면서 우리 고유 옛것의 귀한 것을 챙겨 두고 싶은 것이다.
나는 옛것을 참 좋아한다.
살아가면서 " 옛날이 좋았다 " 또는 " 옛것이 참 좋았는데… " 라는 표현을 한 경험이 누구나 한번쯤 있을 것이다. '옛것' 이란 어느 것을 말 하는 것일까? 한과처럼 전통을 가진 것을 일컬음인가?
나 어렸을 적에 설 명절을 한참 앞둔 어느 날 쯤에는 가끔 어머니 심부름으로 조부모님이 계신 큰집에 가곤 했는데 그 때 쯤 이면 할머니 계신 방 아랫목에는 한과(유과)를 만들기 위하여 찹쌀로 만든 종이처럼 얇고 반듯반듯한 네모판(정식명칭은 바탕)을 가득 깔아 놓고 말리고 있었다. 방안 돌아다니기가 퍽 조심스러웠지만 유과를 만든다는 그 풍성함에 괜히 기분이 좋아져서 방을 들락날락 하면서 그 모든 것이 내 것인 양 좋아했다.
내 기억으로는 그 바탕이 잘 마르면 마당에 큰 화덕을 놓고 그 위에 가마솥 뚜껑을 거꾸로 올려놓고서는 기름을 붓고 뜨겁게 달구어 그 찹쌀바탕을 하나씩 넣고 튀기는데 그때가 정말 재미있었다. 그 찹쌀 바탕은 제 몸을 마구 부풀리면서 제멋대로 커지는데 이때 기술 좋은 아주머니들은 기다란 나무젓가락과 주걱 등으로 네 귀퉁이를 꾹꾹 눌러 주면서 모양을 잡아주곤 하다가 미처 잡아주지 못한 찹쌀바탕이 엉뚱한 모습으로 변하기라도 하면 모두들 큰 소리로 웃으면서 즐겁게 일을 하던 모습이 생생하다. 요즈음 한과는 자동화된 기계로 쉽게, 쉽게 만들어 내고 있으니 옛날 그 시골집 마당 풍경과 같은 정겨움은 찾아 볼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내가 옛것을 좋아한다 함은 그 옛것에 대한 식탐이라든지 물건에 대한 욕심은 아닌 것 같다. 그걸 만들기 위한 분주함, 번잡함 속에서도 풍요로움을 느끼고, 그 당시에는 알지 못했던 가슴 가득 안겨오는 그 어느 안도감과, 뿌듯함, 그 달콤함을 지닌 것을 두고두고 조금씩 꺼내 주시던 할머니의 정겨움… 그런 느낌들의 정서적인 면에서의 추억이지 결코 물건에 대한 애착은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으니 내 마음 속에는 그 옛날의 정서를 느껴 보고자 하는 욕망이 가득 들어 있는지도 모른다.
같은 맥락으로 꽃들에 대한 나의 애착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 옛날 화단에 무성히 자라 피고 지던 채송화, 맨드라미, 분꽃, 과꽃, 다알리아 등등 이런 꽃들을 요즈음엔 좀처럼 보기 어렵다.
그 옛날 장독대 축대를 따라 장독대를 쭉~~ 둘러싸고 피어있던 채송화!
소나기 지난 후 쨍쨍 빛나는 햇빛아래 오색으로 꽃피운 채 꽃잎에 물방울 가득 안고 영롱하게 반짝거리던 그 모습을 뒤 툇마루에 앉아 한참을 바라보노라면 꽃송이마다 형형한 색을 발하며 올망졸망 피어있는 그 모양이 얼마나 애잔한지 정말이지 잊을 수 없다.
저녁밥 지을 무렵의 석양에 활짝 피워내는 분꽃은 엄마들의 시계였다.
골목길에서 신나게 뛰어 놀다가 저녁 먹으라고 부르는 엄마 목소리에 우르르 헤어져 돌아오는 골목 입구에는 노랗고, 분홍의 분꽃들이 활짝 웃으며 어서 집에 가라고 다독여 주었고,
화단을 무성한 잎으로 가득 채워 주면서도 꽃 모양을 탐스럽게 올려주던 다알리아!!
비 오는 날이면 행여 그 꽃의 무게가 무거워 꺾이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에 마루 끝에 걸터앉아 노래를 흥얼거리던 기억도 새롭다. ♫방긋 웃는 햇님이 부끄럽다고 우리 집 앞집의 다알리아 고개 숙였네'♫
이렇듯 옛것들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것은 옛 물건이 아닌, 옛것들이 만들어 지거나 어떤 상징적인 자연물에 대한, 즉 거기에 수반되어지는 정겨운 정서가 있었기에 '그리움'이란 예쁜 이름이 붙여졌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정서가 가득 고인 마음은 언제나 맑은 마음일 테고… 그래서 커가는 어린이들에게는 좋은 정서의 분위기가 필요 하다는 말에 나는 전적으로 동감 하면서 옛것을 그리워하고 좋아하는 내 마음을 꼬옥 껴안아 본다.
명절을 맞이하여 조금이나마 옛것에 어린 정서를 음미해 보며 집안 정리를 하고나니 내일 부터는 다시 홀가분한 마음으로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이 개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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