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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맘의 글방

동짓날의 고욤나무

물소리~~^ 2018. 12. 24. 14:22







▲ 동짓날, 우리 뒷산의 고욤나무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동짓날이란다.

아니!! 벌써??

알 수 없는 허전함과 쓸쓸함이 물밀 듯 밀려온다.

모두들 활기찬 마음으로 즐거운 시간을 누리면서 한 해를 마무리하는 마음들인데

오직 나만은 그 무엇도 챙기지 못하고 몸을 사리며 이 한 해를 또 보내고 있는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에게 남겨진 것은 무엇인가.

빈 허공만 움켜쥐고 있는 것 같은 박탈감이 나를 감싸고 휘돈다.


집안을 서성이다 밖으로 나왔다. 만만한 게 뒷산이다. 그새 뒷산의 오솔길 낙엽들은 발자국들에 많이 바스라져 있었다. 간간히 남아있던 나뭇잎들도 모두 땅으로 떨어지고 나무들은 빈 가지만 앙상하게 하늘을 향해 벌리고 있으니 무슨 의식을 치루고 있는 듯싶다. 나무들의 바램은 진정 무엇일까


깊은 생각에 잠겨 걷다보니 어느새 막바지, 고욤나무 곁을 지났다. 고욤나무를 의식하지 못했는데 유난히 새소리가 많이 들려 눈을 들어 바라보니 새들이 고욤나무의 열매를 쪼아 먹고 있는 것이다. 고욤나무~~ 나에게는 참 정겨운 나무다. 내 기억 속 고욤나무는 초등학교 입학 전의 시절의 나무다. 아버지께서 근무하셨던 섬진강부근의 학교 근처에 살았던 그 시절 섬진강이 범람할 때면 우리 집 부엌까지 물이 들어오곤 했었다. 솥이 둥둥 떠다니고 물이 빠지면 아궁이에서 잉어가 파닥거렸던 내 유년시절의 집이었다. 그곳 살림공간과 떨어져 있던 얄궂은 화장실?(변소)에 가는 길목에 작은 감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감나무가 아닌 고욤나무라는 것은 훗날에서야 알았다.


그 당시 가장 흔한 먹거리는 감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감나무 곁에는 뱀이 다가오지 않는다는 이유가 있어서인지 집집마다 감나무 없는 집이 없었으니 유난히 감을 많이 접하고 먹었던 것이다. 하니 보잘 것 없이 씨가 가득한 자잘하게 열리는 고욤나무는 쳐다보지도 않았고 고욤은 그렇게 겨울이 다 가도록 나무에 매달려 있었다. 붉은빛이라기보다는 검붉은 빛으로 기억되는 고욤은 지금 이 맘 때쯤에 오가다 심심하면 하나씩 따 먹곤 했는데 그 달콤함이 정말 좋았던 것이다. 여기까지가 내 기억에 저장된 고욤나무이다. 그래서일까 어쩌다 고욤나무를 만나면 정겨움이 앞서 달려 나가 바라보곤 한다.


우리 뒷산의 고욤나무는 그렇게 20여 년을 바라보고 사진을 찍곤 하는 나를 더 이상 자라지 않는 내 유년시절의 기억 속으로 끌어 들이곤 하는 것이다.


고욤은 참으로 부실한 열매다. 우리 속담에 고욤 일흔이 감 하나만 못하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자질구레한 것들이 아무리 많아도 제대로 된 큰 거 하나만 못하다는 의미의 말이다. 하지만 이런 부실한 열매의 고욤나무는 큰 감이 열리는 감나무의 원동력이 되고 있는 나무인 것이다.


고욤나무는 아무리 애를 써도 크고 튼실한 열매를 맺지 못한다. 또한 큰 감을 맺는 감나무는 씨앗을 번식하여 키우면 원래의 감나무 열매에 미치지 못하는 부실한 감을 맺는다고 한다. 그런데 고욤나무 가지를 잘라내고 그 자리에 감나무를 접목시키면 훨씬 튼실한 감이 열리는 감나무로 자란다고 한다.


고욤나무는 제 열매를 맺기 위해 스스로 저장한 영양분으로 곁가지로 들어온 감나무를 키운다. 아무리 노력해도 크고 튼실한 제 것을 만들 수 없음에 좌절하지 않고, 제 것을 버리고 새로운 감가지를 받아들이는 최선의 노력으로 튼실한 열매를 맺는다는 지혜를 오늘 새삼스럽게 고욤나무를 바라보며 내 안에 새겨 보았다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왔지만 나에게 남겨진 것은 튼실하지 못한 육신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에 허무한 감정을 감출 수 없었던 요 며칠 간의 내 의식을 새롭게 바꾸어 주는 순간이었다. 내 능력이 그것밖에 되지 않으면서도 나는 더 높은 그 무엇을 바라고 있지 않았는가. 내가 했던 것들을 버리지 못하고 내 안에 쌓아두면서 다른 그 무엇도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교만함이 나를 쓸쓸하게 했던 것이다. 고욤나무는 자신을 새롭게 탄생시키기 위해 가지를 내 주었을 뿐, 뿌리는 그대로 튼튼하게 지켜오고 있잖은가. 내 본질을 지키되 내 안에 낯선 새로움을 받아들여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이 생긴다면 나의 쓸쓸한 생각들도 거두어 질것이리라


지독한 감기를 앓고, 내 몸을 사리느라 겹겹이 옷을 껴입고 걷는 동안 흐르는 땀이 속옷을 흥건히 적셔 놓았음을 집으로 돌아와서 알게 되었다. 버리면서 자라는 나무에게서 선물 받은 그냥 뜻 모르게 개운한 마음이 나를 편안케 한 동짓날이었다.

    

▲ 2009년 12월 27일 의 사진, 고욤나무와 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