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사랑으로!!

단상(短想)

가을 들판을 바라보며

물소리~~^ 2015. 9. 21. 14:03

 

 

 

 

 

 

자욱했던 아침안개를

햇살은 한낮에도 미처 거두어내지 못했는지 흐릿한 존재감이 느껴진다.

점심시간에 금강하구둑이 바라보이는 오성산에 올랐다.

 

들판 위의 구름은 들구름 일까.

구름들의 한가로움은 이제 제 할 일 없다는 듯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따라 간다.

높디나 높은 곳에서 자라는 왕고들빼기의 자태가 가을을 닮았다.

지금 이 곳을 스치는 가을바람은 얼마만큼의 굵기일까.…

옅은 안개를 풀어 헤친 듯싶은 흐릿함은 가을 들판의 신비함을 품고 있었다.

 

참 아름답다

들판은 바야흐로 초록을 지나 연둣빛이다.

이제 이 연둣빛은 황금으로 변할 것이다.

봄, 가을이 지나며 빚어내는 연둣빛을 나는 참으로 좋아한다.

봄의 새싹들이 빚어내는 연두가 초록을 향해 걸어가는 발랄함이라면

가을날의 연둣빛은 황금으로 향해가는 고상함이다.

 

가을의 정기를 받으며 온 정열을 다해 벼들은 팬 이삭을 익히고 있다.

아, 이 아름다운 계절 한 복판에 서서

‘패다’ 라는 거친 말, 어감이 좋지 않은 말을 거침없이 토하고 있으니

괜히 내가 불량스런 사람인 것처럼 느껴진다.

 

‘패다’ 의 뜻은

거칠게 때린다거나 장작을 쪼개는 행위를 일컬음으로

이는 스스로가 아닌,

누군가로부터 힘을 받아 생기는 결과를 나타내는 말 이다.

그런데 벼들이 열매인 이삭을 내밀기 시작하는 것을 이삭이 패다 라고 표현한다.

이삭을 패는 주체는 누구? 무엇일까?

햇살일 것이다.

 

저 아름다운 황금들판의 주인공인 벼들은 팬 이삭을 열심히 익히고 있는데

그 주체 또한 햇살일 것이니

햇살은 모판의 모부터 지켜보았을 것이다.

모판에서 논으로 나온 모들 중에서 싹아지를 내지 못하는 것은 솎아진다고 한다.

싹아지가 올라왔어도

이삭을 패는 싹수가 병충해를 입어 노랗게 되어 결실을 맺을 수 없으면 뽑아낸다고 한다.

 

지금 저 들판의 벼 이삭들은 온전하게 싹아지를 올렸기에 솎음을 당하지 않았고,

병충해를 입지 않은 싹수가 노랗지 않게 성장을 했기에 뽑히지 않은

선택된 튼실함으로 가을 햇살이 내려주는 혜택을 여한 없이 누리며 야무지게 익어가고 있다.

버릇없는 사람을 싸가지가 없다 하고

어릴 때부터 잘못된 행동을 많이 하면 싹수가 노랗다고들 한다.

기대 심리를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 일 것이다.

 

푸르고 싱싱한 모에 큰 기대를 걸은 농부의 마음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솎아내고, 뽑아내야 했던 아픔을 견디어 냈을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 온

내 마음의 싸가지는 어땠을까. 내 마음자리의 싹수는 무슨 빛깔이었을까.

욕심의 덩어리들을 솎아내지도 않고, 뽑아내지도 않고

끌어안고 살아 온 대가를 지금 혹독하게 치루고 있는 것만 같다.

 

이제 막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저 들녘에는

결코 지나치지 못할 지혜로움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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