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초파일
날씨가 참으로 화창하다.
에움길을 막 차고 오르는데 아까시꽃이 제 몸의 무게에 낭창거리며 하늘거리고 있다.
그러고 보니 올 봄 꽃들에게 참 무심했다.
찔레도, 또 은밀한 그곳에서는 향기 진한 마삭줄도 피었겠지,
노린재나무는 솜 부풀리듯 꽃을 피웠을 것이고,
때죽나무는 땅을 향해 피어나며 묵상을 즐기고 있을 터…
그들은 행여 나를 기다리기나 했을까.
결코 그들은 나를 기다려 주지 않고 지났을 것이나
하지만 미련은 갖지 않을 것이다.
내년에 더욱 반갑게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니까.
주어진 환경에 변화하지 않고, 그에 더욱 앞서 나가지 않으면 도태되는 법,
하여 꽃들도 앞으로, 앞으로 한 눈 팔지 않고 나야가야 하고
나 역시도 지난 일들에 미련을 떨쳐버리고
지금까지 지녀온 나만의 자의식을 잃지 않으며 새롭게 나아가야 한다.
지난 꽃들을 만나지 못함의 아쉬움을 애써 억누르며 지나는데
밤나무가지 끝에서 무언가가 나풀거린다! 아, 밤꽃이다
이제 막 시작하는 밤꽃은 가느다란 녹색의 꽃줄기였다.
이미 흐드러지게 피었다 진 꽃들을 만나지 못한 서운함을
이제 막 피어나는 밤꽃이 희망으로 새롭게 나를 달래주고 있었다.
언젠가 밤꽃을 레게머리 같다고 했거늘,
곱슬곱슬 피어나는 꽃들에 금세 마음이 환해진다.
밤나무가 내려주는 넉넉한 그늘에 차를 바치고 폰카를 들이밀었다.
밤꽃이 폰 화면 안으로 확 밀치고 들어오며 나를 반긴다.
아, 조금 있으면 하얗게 꽃을 피우고 밤송이를 맺겠구나.
밤송이가 맺기 시작하면 모내기를 시작한다 했는데…
절기가 어느새 소만(小滿)을 지났으니
지금은 작은 (小) 것들이 자라나서 온 세상을 가득 (滿) 하게 메우는 때인 것이다.
일찍이 꽃피웠던 온갖 식물들이 이제 작은 열매들을 맺기 시작하는 소만 무렵에
모내기로 바빠진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우리 조상님들은 모내기를 시작할 때는
이제 막 열리기 시작한 밤송이를 겨드랑이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때라고 하였단다.
애송이 밤송이를 겨드랑이에 끼워보고 모내기철을 가늠하다니…
얼마나 천진하고 순수한 마음인가.
불변하지 않는 자연의 이치를 알고
그에 따르는 삶의 철학은 그대로 한 편의 예술인 것이다.
며칠 동안의 속 울렁임이 진정되는 눈과 마음으로 들어오는 계절이 참 아름답다.
또 다른 새로움이 시작되며 앞을 향해 나아가는 이 모든 것들처럼
나도 매사를 새롭게 다짐하며 나아가야겠다.
내 아픔이, 그 누구의 겨드랑이도 아프지 않게 하기를 바라며
비록 예술적이진 못하지만,
나만의 예술인으로 살아가고픈 마음을 초파일의 소망으로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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