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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맘의 글방

낮은 곳에 임하는 마음으로 빚는 茯笭

물소리~~^ 2015. 1. 5. 14:58

 

 

 

 

 

전기톱으로 잘린 뒷산 소나무

복령조차 만들지 않겠다는 체념이 눈에 덮여 있다.

 

 

  일요일의 여유로운 저녁식사시간이 되면 우리는 한 방송국의 한국기행이란 프로를 시청한다. 일주일 동안 방송했던 것을 한꺼번에 2시간 동안 방송을 해주는데 그 모든 시간을 다 볼 수는 없어도 처음 한두 편은 꼭 보게 마련이다. 어제(4일)도 그 방송을 시청하면서 식사를 했는데 강원도 고성에서 경북 울진까지의 관동팔경을 보여 주었다.

 

눈과 귀가 번뜩 뜨인다. 식사 후, 설거지도 미룬 채 2시간 동안 모든 편을 시청하였다. 관동팔경(별곡)은 조선시대 중기의 문신이자 시인이었던 송강 정철의 가사로 유명하다. 정철의 벼슬살이는 평탄하지 못했다. 여러 사건에 중심으로, 또는 연루되어 파직과 은둔으로 얼룩졌다. 그런 그가 선조 13년(1580)45세 때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한다.

 

그는 그곳에서 선정을 베풀면서 선조의 마음에 들려고 노력한 간접적인 마음표현이 관동별곡에 묘사되었다고 후세인들은 말한다. 실제로 그는 그곳에서 관동별곡과 훈민가 등 많은 글을 남겼으며 그 글들의 문학적 가치는 오늘날까지도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길이 빛나고 있다.

 

정철이 표현한 관동팔경은 지금 북측에 소속된 고성의 삼일포, 총석정 그리고 남측의 최북단인 청간정을 선두로 남쪽으로 내려오며 의상대, 경포대, 죽서루(삼척), 경북 울진의 망양정, 월송정을 일컫는다. 이 중 내가 직접 가보지 못한 곳은 북측의 총석정과 남측의 청간정, 죽서루, 월송정이다. 북측의 삼일포는 금강산 여행 갔을 때 다녀온 바 있다.

 

방송의 처음은 정철의 관동별곡 일번지인 고성부터였다. 아마도 북측의 고성을 답사하지 못하기에 남측의 최북단인 청간정부터 방영하는 것 같았다. 설악산의 끝이자 금강산의 시작이 되는 금강산 제1봉 신선봉 아래 자리 잡은 고성의 한 마을을 소개하는 장면이 나왔다.

 

마을 사람 서너 명이 배낭을 메고 긴 꼬챙이 하나씩 들고 산을 오르고 있다. 한참을 오른 마을 사람들이 나무 밑을 쿡쿡 찌르며 다닌다. 내가 보아도 보통 힘이 들어가는 찌르기가 아니었다. 한 사람이 꼬챙이 끝에 하얀 무엇이 묻어나오니 ‘이것이다’ 하면서 나무뿌리 밑을 파헤치더니 감자 같은 무엇을 캐낸다.

 

복령(茯笭)이란다. 난 처음 듣고 보는 것이었다. 그 사람들 말로는 한약방에서 아주 중요한 재료로 사용 하는 것이란다. 복령은 죽어 넘어진 소나무 밑동의 뿌리에서 자라는 것으로 일종의 버섯이라 하였다. 넘어진 소나무는 그동안 나무를 키우기 위한 영양분을 이제 위로 올릴 수 없으니 뿌리로 내려모으는 중, 송진이 모아졌다 썩으면서 생기는 균 버섯 이라고 한다. 위로 올릴 수 없음에 아래로 내려 보내는 지혜로움이 참으로 빛이 난다.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린다는 의미를 우리는 흔히 물에서 찾는다. 노자는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上善若水)고 했다. 물은 항상 낮은 곳으로 흐르고, 막힌 곳을 만나면 막힘을 돌고 돌아 낮은 곳을 찾아 흐른다. 또한 제갈량은 그런 물(이익, 인재)을 얻으려면 궁신접수(躬身接水) 자세를 지녀야 한다고 했다. 궁신접수란 물을 얻으려면 몸을 낮춰야한다는 뜻이다. 요즈음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제 몸을 굽히지 않아 당하는 불행을 많이 보아와서인지 복령이란 한 덩이의 균 버섯에 그만 필이 확 꽂히는 시간이었다.

 

넘어지거나 베어져 썩은 소나무 뿌리에 기생하여 3 ~10년 동안 자라는 것으로 소나무의 신령스러운 기운이 땅속에서 뭉쳐졌다고 하여 복령으로 불린다고 하였다. 소나무는 죽어 썩어서도 이렇게 이로움을 남겨주고 있었다. 비록 몸은 죽어졌을지라도 자신이 품고 있는 보물을 낮은 곳으로 모으고 뭉쳐서 내어주고 있었다.

 

한데 넘어진 모든 소나무에서 복령이 생기는 것이 아니란다. 벼락 맞아 넘어진 소나무나 도끼로 베어낸 소나무 뿌리에서만 자란다고 한다. 전기톱으로 자른 소나무에는 복령이 자라지 못한다고 한다. 톱의 금속물질이 복령이 자라지 못하는 환경을 만들기 때문이라 하니 자연은 자연에서만 명약을 만들 수 있다는 이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문득 우리 뒷산의 소나무가 생각난다. 최근 베어진 소나무들은 모두 전기톱으로 자른 것이리라! 그러면 이 소나무는 남은 제 몫도 할 수 없으니 얼마나 억울할까. 차라리 우리 뒷산 소나무들은 억지로 베어짐에 그에 신령스러운 기운을 모두 소멸해 버렸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제 저녁을 방송을 보고, 오늘 이른 시간 짙은 안개속의 소나무 밑동을 바라보노라니 만감이 교차한다. 이룰 수 없을 땐 집착을 버리고 차라리 모든 것을 놓아버리라는 체념도 일러주고 있었다.

 

높은 곳에서 많이 가지고 많이 누리는 자, 많이 알고 있는 자들이 주전자의 물을 받는 낮은 위치의 찻잔이 되는 조금은 겸손한 마음이었으면 좋겠다. 궁신접수의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며, 사회에 이로움을 안겨주는 福을 짓는 그런 복인(伏人)들이 되었으면 싶다는 작은 바람이 일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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