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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맘의 글방

정결한 여신을 만나다.

물소리~~^ 2014. 12. 22. 14:32

 

 

 

 

▲  뒷산 풍경

 

 

   아침에 일어나니 또 눈이 쌓였다. 어제 일요일 낮에 모처럼 산에 오를 때만 해도 눈이 많이 녹아 이젠 웬만하면 아침 산에 올라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내려왔었다. 몸이 좋지 않아 일주일을 아침 산에 오르지 못하고 지내왔다. 산을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이렇게 오랫동안 결석?을 한 것은 처음이다.

 

처음으로 경험한 것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약을 거르지 않고 5일 동안이나 먹었으며, 하루 평균 5~6시간의 수면시간이었는데 8시간씩 너끈히 자고 일어나곤 했던 것이다. 몸 어느 부분이나 다 소중함이겠지만 심장의 판막에 이상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 나니 괜히 주춤거려지는 것이 사실이다.

 

지난 토요일 재검진 받을 때, 의사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말해 주었다. 내가 걱정을 하니 의사는 자신이 괜한 말을 해서 걱정하게 만들었나보다고 하면서 여유분의 약 처방을 해 줄 테니 혹시나 같은 증상이 일어나면 복용하라고 하였다. 그랬는데도 눈이 쌓이고 바람이 부니 나가기가 꺼려진다. 큰일이다. 뒷산이 삐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으로 뒤 베란다에 나와 산을 바라보았다.

 

아직 어둠을 거두진 못했지만 하얀 눈으로 산이 지닌 곡선을 그대로 보여주며 말없이 그 자리에 서있다. 지금이면 어디쯤 걷고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을 모으며 귀 기울이노라니 숲속 친구들의 두런거림이 들리기 시작한다. 이상하다. 숲 속을 거닐 때면 내 발자국 소리가 먼저 들렸는데 지금 이렇게 베란다에서 멀리 바라보고 서 있노라니 오히려 더 크게 숲의 친구들 이야기 소리가 들리는 듯싶다.

 

귓전에 울리는 소리는 정결한 여신의 소리다. 아! 그렇다! 청아한 목소리로 부르는 애잔한 선율의 정결한 여신(Casta Diva)의 노래가 잔잔히 흐르고 있었다. 이 곡은 벨리니가 작곡한 오페라 노르마에 삽입된 곡이다. 노르마의 줄거리는 이렇다.

 

B.C. 50세기경 갈리아 지방. 로마의 압제에 시달리며 봉기를 꿈꾸는 드루이드교 교도가 있었다. 그 교도들을 대표하는 신의 딸인 노르마는 하필 적의 총독인 로마 장군 폴리오네를 사랑했다. 신의 딸로서 순결의 맹세를 저버리면서까지 두 아들을 낳아 몰래 키우고 있지만 그녀의 부족과 로마는 언제 전쟁으로 맞붙을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태였다. 양측 사이에서 누구의 편도 들 수 없는 노르마는 달의 여신 앞에서 평화를 기원하며 간절히 노래한다. 이 곡이 바로 ‘정결한 여신(Casta Diva)이여’다. 하지만 폴리오네는 젊은 여사제 아달지자와 사랑에 빠져 그녀와 떠날 것을 통보하고, 결국 노르마는 종족을 배신한 책임을 지고 화형대의 불길 속으로 몸을 던진다.  -   인용 -

 

내가 정결한 여신 노래를 처음 접한 것은 20대 초반 직장생활 하던 시기였다. 클래식에 심취했던 시절이었다. 우연히 음악 감상실에서 노래를 들으며 뜻도 모른 채 애절한 선율과 목소리에 푹 빠져들었던 시간이 지금도 생생하다. 후에 알았던 사실은 결코 곱지만은 않았던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마리아칼라스였으며, 그녀 역시 파란만장한 생의 주인공이었음에 어쩌면 그 노래를 부르면서 그녀의 운명이 좌우되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며 혼자만의 상상을 했던 것이다.

 

새벽녘의 찬 기온은 베란다에서조차 오래 서 있지 못하게 한다. 방으로 들어와 책꽂이 앞에서 책 한 권을 집어 든다. 나의 보물이다. 클래식에 심취했던 시절에 구입한 책이다. 누렇게 변한 것이며 세로로 쓰인 글이 아주 오래된 책임을 증명해준다. 하지만 그 안에 수록된 음악들의 설명은 불변의 진리처럼 변하지 않고 전해오고 있다. 줄을 그어가며 읽고 내용을 익히고자 진정 노력한 시절이었으니 그 때 그 시절 내 마음만큼은 순수한 마음의 소유자였을 것이다.

 

이런 습성이 이어지니 결혼 후에도 지금도 클래식음악을 즐겨듣고 각종 CD며 테이프며 음반 등을 구입하기를 망설이지 않았었다. 나는 나 혼자 조용히 그런 행동들을 했다고 여겼는데 우리 아이들은 눈여겨보았던 것 같았다. 울 작은 아이가 첫 월급을 타고 내게 처음 건넨 선물이 클래식음악에 관한 책이었다. 그 후에도 공연티켓을 사서 보내주기도 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이 클래식을 좋아하거나 즐겨 듣지는 않는다. 나 역시 절대 전문가는 아니다. 그저 들으면 편하고 쉬운 곡은 따라 흥얼거리기도 하는 수준이다. 책을 통하여 이론적으로 조금 더 알고 있는 것뿐이다.

 

요즈음은 스토리텔링이라 하며 이야기가 있는 주제를 가지고 더욱 쉽게 내용을 전달해주는 관광이 발달하고 있다. 음악도 마찬가지로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이야기를 알고 듣거나 감상을 할 때 더욱 감명 깊게 스며드는 것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추위 때문에 몸을 사리는 시간을 가진 오늘 아침, 나는 먼 옛날을 회상하며 무어든 알고 싶어 했던 열정의 순간들과 함께 할 수 있었다. 이것도 눈 쌓인 정결한 산이 내게 전해준 선물이다. 정결한 여신을 종일 흥얼거려본다. 눈도 바람에 날렸다 그쳤다 종일 반복한다. 음악 듣기에 딱 좋은 날이다.

 

 

 

 

 

▲  그 옛날 900원에 구입했던 책

 

 

▲  아들이 사 준 책 (CD는 책 속에 끼워준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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