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산을 걷는 일은 묘한 기분을 안겨준다. 걸을 수 있도록 길을 내 주면서도 우리들의 발자국흔적을 용납하지 않는 바위 산, 우리 사람들이 얼마나 길을 내 달라고 졸랐을까. 바위는 제 몸에 철제 봉 심는 것을 하락했고, 그 봉들을 이어주는 긴 줄이 길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바위가 허락하고 인간이 만들어 놓은 밧줄 외길을 따라 걷는 일은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통행료로 내 놓아야하는 일이다. 동석산 능선의 마루금은 그렇게 바위 길을 이어주는 긴 줄로 이어져 있었다.
앞서가던 선두 그룹이 한참을 숨 가쁘게 오르더니 또 다시 한없이 높은 봉우리를 차고 오른다. 뒤따르던 우리는 곧바로 따라 오를 기세였는데 앞서 높이 오른 사람들이 우리가 진행할 방향이 아니라며 되돌아 내려온다. 그 틈에 바짝 뒤 따르던 우리가 선두가 되어버렸다. 어쩌나 처음 길이고, 바위산인데…
줄 하나에 의지하며 걷는 외길이었기에 그냥 진행을 해야 했다. 그나마 긴 줄로 이어진 마루금이 등산로임을 알려주니 다행이었다. 조심조심 살금살금 행여 줄 놓치면 어찌될까 꼭 잡은 손을 놓지 못하고 낭떠러지 바위 길을 통과했다.
안전한 장소에 올라 뒤돌아보니 아! 사람들이 줄 하나에 의지하며 일렬로 서서 걸어오고 있었다. 순간 알 수 없는 뭉클함이 전해온다. 어쩜~~ 참으로 아름답다는 순간의 생각이 스친다.
바위 능선위에 알록달록한 선을 그으며 걷는 사람들이 마치 깃발 같았다. 사람들이 이어주는 긴 줄을 바라보노라니 마치 마음에 쏙 드는 보물을 만난 듯 뜻 모를 벅참이 차오른다. 나 어릴 적 학교 운동회 때면 운동장 하늘에 걸린 만국기를 바라보며 그냥 좋아했던 마음이 떠오른다.
줄 하나에 몸을 의지하고 바람이 불면 혼신을 다 해 몸을 흔들어 대는 깃발! 문득 먼 나라 티베트의 파르쵸가 연상된다. 해발 4천 미터가 넘는 곳에 위치한 나라, 내세의 행복을 위해 현세를 기꺼이 희생하는 사람들의 나라, 오체투지로 삼보일배 하며 성전을 향하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 긴 줄에 불교경문을 적은 오색 깃발, 파르쵸가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은 티베트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풍경이라고 영상이나 책을 통해 많이 보았다.
파르쵸의 파랑은 하늘, 노랑은 땅, 빨강은 불, 흰색은 구름, 초록은 대양을 상징한다고 했다. 그렇게 깃발을 매달아 놓으면 바람이 그 경전을 읽고 경전의 진리를 온 세상에 퍼지게 해 준다는 믿음으로 바람에 닳아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펄럭이게 한다고 하였다.
지금 저렇게 줄 하나에 의지하며 걸어오는 사람들의 알록달록한 차림들은 그대로 깃발, 파르쵸가 되어 있는 듯싶다. 불교경전은 아닐지라도, 저 사람들 각각의 삶의 여정들이 그대로 경전이요 진리가 아니겠는가. 사람들 내면에 새겨진 지혜를 오늘은 햇살이 속속들이 읽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내면에 쌓인 갖은 상념들의 공통적인 분자를 꺼내어 우리에게 다시 보여주고 있는 아련한 햇살에 사람풍경이 일렁인다.
줄 하나에 매달려 있는 단순하기 짝이 없는 삶의 진리들을 우리는 과연 깨닫기나 하는지… 그저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 우리는 언제나 어렵게 먼 곳에서만 찾으려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나조차 알 수 없는 내 마음 속 진리를 가까이 있는 저 줄에 매달아 본다. 나부끼는 내 마음의 깃발을 햇살이 읽고 모두의 삶의 여정과 소망은 같은 것임을 일러주었으면 좋겠다.
올라오는 사람들을 바라보면 역광으로,
진행방향에서 찍으면 제 빛으로 찍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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