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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맘의 글방

가는 해, 오는 해의 선물

물소리~~^ 2014. 12. 31. 22:07

 

 

 

 

 

 

   오늘은 2014년 마지막 날, 근 15일만의 새벽 뒷산을 올랐다. 현관을 나서면 훅 끼쳐오는 상큼한 기운이 퍽 반갑다. 오늘 비나 눈이 온다는 예보는 있었지만 그들도 늦잠을 자는지 아직 내리지 않고 있다. 덕분에 흐린 하늘은 오솔길을 더욱 뚜렷이 보여준다. 빛의 반사가 없기 때문이다. 착 가라앉은 차분함과 안온한 기운은 오랜만에 만나는 나를 환영해주는 몸짓인가보다. 오솔길에 쌓인 수북한 낙엽들, 부드럽게 내 발길을 받아주는 흙길의 순함에 내 마음도 푹 적셔 진다.

 

참 좋다. 2봉에 이르자 습관처럼 삼각점에 올라 하늘을 바라본다. 구름커튼 뒤로 제 몸을 숨긴 별들이 보이지 않는다. 눈을 내려 주위를 둘러보는데 무언가가 많이 낯설다. 2주 만의 느낌일까? 괜한 미안함을 품고 3봉을 향해 걸었다. 아, 낯설음의 이유를 발견했다. 곳곳의 소나무들이 많이 베어져 있었다. 어쩐 일이지? 평소에도 소나무의 싱싱함이 많이 부족하다 여기며 오가곤 했지만 이렇게 많이 간벌대상이 되었는지는 몰랐다.

 

둘레둘레 살펴가면서 넘어진 나무들에 안타까움을 보내며 천천히 걸었다. 드디어 반환점 5봉에 오르는 순간 내 마음이 쿵! 하고 무너져 내렸다. 우람한 소나무 두 그루가 없어져 버렸다. 세상에 이를 어째! 십년이 넘는 세월동안 늘 이곳에 오르면 두 소나무에 내 손을 얹으며 인사를 하곤 했었는데…

 

마음이 좋을 땐 그 즐거움을 보내준 것처럼 고마워했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땐 속엣 말로 토로하기도 하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인사를 하며 지내왔는데… 이렇게 밑동만 남아있다니! 그 앞에 쪼그려 앉노라니 왈칵 설움이 밀려온다. 그들이 늘 그 자리에 있을 거란 믿음만 있었지 나무들하고도 이렇게 이별의 순간을 겪을 줄 모르고 무심하게 지냈던 것이다. 이런 내 마음을 안다는 듯 갑자기 하늘에서 빗방울이 후두둑후두둑 떨어진다.

 

내 마음을 위로해 주나보다고 비를 피할 마음으로 얼른 일어나는데 신기하게도 빗방울이 그친다. 정말 거짓말처럼 순식간의 일이었다. 우연의 순간일 수 있겠지만 난 그 빗방울들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베어 넘어진 소나무는 어쩌면 나를 기다린 것은 아니었을까. 내가 그들의 베어진 모습에 슬퍼하듯 그들도 나를 만나자 제 설움에 겨웠던 것은 아니었을까.

 

작은 공간이지만 이제 시각적으로도 휑할 뿐 아니라, 그곳에 오르면 꼭 정상에 오른 듯 뿌듯함이 가득했는데 이제 무엇을 바라보고 내 마음의 뿌듯함을 채울 수 있을까. 산을 오르면서 그곳에 살아가는 식물들이 전해주는 기운의 친밀감에 마치 내가 잎을 피우고 꽃을 피우는 기쁨을 느끼곤 했다. 그들을 일별하고 뒤돌아 내려오는 길, 참으로 허전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아무리 동네 뒷산이라지만 나름의 높이를 지니고 있고 그 높이에 오르면 정상이 되는 것이다. 꼭 높은 산의 정상만이 정상은 아니다. 이처럼 우리도 나름대로 제 각각 제 높이를 지니고 살아가고 있다. 그 높이에 도달한 성취감을 만나기 위한 목표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던가. 살아가면서 기쁨을 느끼고 성취감을 느끼며 좋아하는 까닭은 결국은 내 자신을 더 나은 삶으로 이끌기 위한 행보이기 때문이다.

 

내일 이면 새로운 해를 맞이하면서 나무들도 자신들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니 용케도 올해의 마지막 날을 택해 그들과 이별의 시간을 나누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저 두 그루의 소나무들은 비록 손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인간들의 힘을 빌렸지만 이제 자신들이 목표했던 삶의 궁극적인 목표에 도달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좋은 의미로 생각하고 싶다.

 

어쩌면 그들은 새로운 해를 맞이하여 더 나은, 더 높은 목표를 내게 안겨줄지 모르겠다. 그 목표를 향하여 걷는 걸음이 더욱 멋지고 힘차기를 바라면서 이별의 눈물을 보여주었을 것이라고 나는 믿고 싶다. 베어진 나무들은 슬픔으로 나의 마음을 씻어주고, 나에게 상생의 기운을 안겨주었다. 가는 해, 오는 해가 나란히 서서 전해주는 참으로 멋진 선물을 받았다.

 

 

 ▼ 아래의 사진들은 다음날인 15년 1월 1일 아침에 찍은 사진들이다.

▲ 밑동만 덩그마니 남은 두 그루의 소나무

 

 

▲ 잘려나간 소나무의 몸통

 

 

▲ 소나무들만 골라서 간벌했음은

아마도 병충해의 피해때문인 듯싶다.

 

 

▲ 솔방울들은 영문도 모른 채....

 

 

▲ 드러난 뿌리로 나무의 거대함을 말해주고 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