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이 조금씩 야위어가는 요즈음 ,
내 할 일들은 자꾸 몸피를 부풀려가는 시기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한 부분에서 매듭을 짓고
새로 시작하는 결미가 없다면 참으로 지루한 삶의 여정일 것이다.
일찍이 이런 사람들의 심리를 파악한 선구자들은
하루를 나누고, 달을 나누고, 한 해를 나누어
뒤돌아보는 마음을 챙기게 해 주었으니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이에 여러 일을 마무리하는 작업이 이제 시작되고 있으니
눈 돌릴 틈 없이 숫자와 씨름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터,
눈을 들어 창밖을 바라보니 무겁게 내려앉은 겨울 날씨가 왠지 싫지만은 않다.
금방이라도 눈이나 비가 내릴 듯싶으니
안에서 바라보는 바깥의 풍경에 마음이 괜히 평온해진다.
창을 통하여 내 눈으로 세상을 바라봄은 세상과 내가 소통하는 일이다.
창은 안과 밖을 이어주는 소통의 창구다.
창은 희망이다.
神은 한쪽 문을 닫으면 어딘가에 다른 창문을 열어 놓는다고 하였다.
어려움이 막바지에 도달했을 때
그곳에는 빠져나갈 창이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막힘을 뚫어주는 창이다.
나의 피곤한 눈을 말끔히 씻어주며 눈길을 뚫어준다.
이 겨울, 창을 통하여 밖을 바라보며
나는 우리 어렸을 적의 창호지문의 창을 생각한다.
외풍이 심해 문을 열지 못하고 눈만 빼꼼히 내다볼 수 있도록
작은 유리조각을 끼워 창호지를 바르곤 했었다.
방문에 달아두던 작은 그런 창이 그립다.
내가 사무실에 앉아
눈이 빠져라 쳐다보고 있는 컴퓨터 역시 보이지 않는
저편의 사람에게 요청한 자료를 보내주고 받는 소통의 창이다.
20 여 년 전, 마이크로 소프트가 새로운 인터넷 운용을 창시하면서
그 이름을 ‘윈도우즈(windows, 창)’라고 지은 것도
아마도 이런 소통의 의미, 창을 염두에 두고 했을까.
책상위에 놓인 창을 통해 나는 앉아서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
지금 바라보는 밖의 날씨는 무겁게 가라앉았지만
겨울 날씨임을 알려주는 그런 따뜻한 위로의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나와 날씨를 소통케 하는 커다란 창에 오늘의 피곤함을 날려 보낸다.
아, 퇴근길의 아늑함이 참 좋을 것이라고
창은 제 몸을 통하여 나에게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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