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사랑으로!!

단상(短想)

겨울 숲은 나무들의 학교

물소리~~^ 2014. 12. 5. 13:16

 

 

 

▲  잘 생긴 도토리나무

 

 

 

    깊은 잠을 자는데 폰 벨소리가 다급하게 울린다. 얼떨결에 일어나 폰을 열어보니 국민안전처에서 보낸 재난문자였다. 우리지역에 대설경보가 내렸으니 눈길, 빙판길, 비닐하우스 등에 주의하라는 내용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내렸기에? 하는 궁금증이 일었지만 자던 잠을 깨면 다시 잠들기 쉽지 않을 것 같아 그냥 내처 잠을 잤고 매일 일어나는 시간에 눈을 떴다.

 

창밖을 내다보니 정말 장난이 아니다. 오늘 많은 눈 내린 특별함을 나는 만나야 한다. 단단히 복장을 여며 입고 조용히 나왔다. 아파트광장에 주차된 차들은 눈을 고봉으로 쌓아놓고 있었다. 생각보다 춥지 않았다. 아이젠을 착용하고 걷기 시작하니 발이 눈에 푹푹 빠진다. 누구하나 발자국 내지 않은 길을 나 혼자 밟고 있었다. 아, 이 기분이란~~

 

눈을 제 몸에 얹혀놓고 있는 나무들이 정말 아름다웠다. 하늘에서 요술을 부린 듯, 제각각의 모습대로, 제 가지에 맞는 알맞은 부피만큼의 눈을 쌓아놓고 있었다. 산 초입의 우람한 대나무 몇 그루가 눈의 무게에 U자 형으로 굽어있다. 얼마나 힘들까. 내 손에 든 나무막대로 눈을 털어주니 대나무는 휴!! 한숨을 쉬며 제 몸을 일으킨다.

 

언뜻 만나는 겨울 산의 나무모습은 황량하기만 하다. 하지만 겨울 숲의 진미는 나무들이 보여주는 간결함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잎을 주르륵 훑어 내리기라도 하듯, 잎 하나 없이 서있는 나무는 단정함이다. 그 맨 몸으로 추위를 이겨내는 모습은 강인함이다. 겨울 숲에서는 무성한 잎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나무의 속살까지 세세히 볼 수 있다. 줄기의 굵기도 제각각이지만 뻗어내는 가지모습도 가지가지다. 또한 각각 지닌 표피의 무늬로 세월의 풍상을 또렷이 보여준다.

 

그런데 오늘 새벽 숲의 나무들은 모두 한 마음으로 한글공부를 하고 있다. 나무들도 눈이 오니 즐거운가 보다. 하얀 눈의 힘을 받아 그들은 그렇게 가 갸 거 겨.. 등을 숲 가득히 쓰며 연습하고 있었다. 굵은 몸은 굵게 가느다란 가지는 가늘게 ㄱ ㄴ ㄷ 을 그어내고 있었다. 천하제일의 명필이었다. 아, 저쪽의 나무는 글씨가 마음에 안 들었나 보다. 제 몸 위의 눈들을 와르르 쏟아낸다. 사르르륵 쏟아지는 소리가 참으로 그윽하다. 그 소리를 어느 시인은 나무가 눈똥 누는 소리라 했는데… 나는 나무들이 잘못 쓴 글씨를 지워낸 지우개 똥을 쓸어내리는 소리 같았다.

 

나무들은 지금 새 봄이 되면 내 몸을 어느 방향으로 더 키워나가야 하는지 재고 있는 것 같았다. ㄱ자로 뻗을까. ㄴ자로 뻗을까. 줄기에서 제 멋대로 뻗어낸 듯싶은 가지들이지만 그들은 절대 다른 이웃한 나무들을 헤치지 않는다. 제 가지를 키우기 위해 상대를 상처 내는 욕심이 있었다면 그들은 나무로서의 아름다움을 지닐 수 없었을 것이다. 같이 어울리기 위해 나눔의 지혜를 터득하는 시기는 아마도 겨울이 아닐까. 모든 나무들이 옷을 벗고 있는 겨울이 있어 이웃나무들과 부딪치지 않는 거리를 가늠할 수 있기에 이 겨울은 그들에게 소중한 시기이다.

 

이 소중한 시기에 나무들은 봄이 되면 서로 부딪히지 않으려 지금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그들의 몰입이 빚어내는 침묵으로 겨울 숲속은 더욱 적막하다. 그렇게 나무들은 적막으로 살찌우고 허공에서 자라고 있었다. 그랬다. 한정된 공간에서 서로 살아가야 하는 법을 나무들은 추운 숲속에서 연습을 하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배우고 알아야 할 삶의 이치가 아닐까 싶다.

 

 

 

 

▲ 가로등 불빛아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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