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사랑으로!!

마음따라 발길따라

적상산에서 가을을 배웅하다

물소리~~^ 2014. 11. 29. 23:34

 

 

 

 

▲ 적상산에서의 조망

 

   달력상 가을은 11월에 끝난다. 딱 이틀 남은 가을, 떠난다 해도 기다리면 다시 오는 가을이지만 마음 진한 이별식이라도 해야 될 것 같다. 그들의 화려한 잔치는 이제 끝났지만 잔치 뒤의 쓸쓸함을 위로해주며 배웅을 하고 싶었다. 아니 그 여운을 내가 즐기며 행여 남겨진 보물이라도 있을까 찾아 나서고 싶었다. 단풍으로 유명한 적상산으로 향했다.

 

간밤에 내린 비는 그쳤지만 도로의 촉촉함은 차분함을 안겨준다. 휴일 날, 늦잠자고 싶은 고속도로는 달리는 차들을 받아내느라 뽀루퉁하다. 햇님도 늦잠이다. 어디만큼까지 달려서야 구름사이를 뚫고 해가 난다. 휴~ 다행이다. 2시간 10분을 달려 도착한 지도상의 위치는 산행들머리가 아니었다. 관광안내소에 물으니 이미 지나왔단다. 다시 차를 돌려 서창공원지킴터에 도착하니 9시 15분이다.

 

 

 

 

배낭을 메고 들머리에 들어서니 기분이 새로워진다. 산의 향기가 참 좋다. 계절은 오고가지만 산은 늘 그 자리에서 나를 반긴다.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는 존재는 더욱 빛을 발한다. 산은 그렇게 뭇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어서인지 늘 의젓하다. 단풍잎은 없었다. 나무들은 모두 잎을 떨어트리고 맨몸으로 서 있었다. 그런데도 전혀 쓸쓸함도 없고 추워보이지도 않았다. 나무가 빚어내는 빛으로 더욱 안온하고 따뜻함이 느껴지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길들여진 등산로에는 낙엽들이 수북하다. 산길은 나뭇잎으로 만든 조각이불을 덮고 있었다. 내 발이 푹 빠질 정도의 낙엽 길~ 무언가 멋진 생각이라도 떠오를 법 하건만 무미건조한 내 마음은 헛바퀴만 돌리고 있다. 무엇을 바란단 말인가. 무엇을 얻을까, 받을까를 기대하지 말지어다. 낙엽은 낙엽, 길은 길, 가느다란 물줄기를 형성하며 흘러내리는 물은 물, 제각각 일뿐인데 나는 자꾸만 그들의 본래의 모습을 부정하며 새로움을 만들어 내려한다.

 

 

 

 

가파르게 30분 정도 올라왔을 뿐인데 나무들 사이로 멀리 시야가 트인다. 나뭇잎이 무성한 시절이었다면 어림없는 일이었다. 오늘 나에게 특별히 보여주는 선물이다. 잘 자란 나무들이 예쁘다. 오늘도 어김없이 돌탑을 만나니 내 마음은 각별하다. 작은 돌을 하나 주워 조심스레 올려놓으며 미안함을 말하였다.

   

이렇게 아무런 기계적 장치 없이 무작정 올려놓는데도 무너지지 않음은 서로 간에 일치점이 있기 때문이란다. 돌과 돌 전체를 맞추어 올리려면 안 된다고 하였다. 딱 한 군데 일치점이 있기에 돌들은 그렇게 무너지지 않고 일체감을 이룬단다. 사람과 사람사이도 그러하지 않을까. 어찌 모든 것이 맞아야만 살 수 있을까. 모든 것 중 단 한 가지만 맞는다면 그 힘으로 다른 모든 것을 이겨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장도바위

 

 

오늘은 속살을 보이는 나무들과 여한 없는 눈 맞춤을 하며 걷는다. 점점 우람한 바위들이 시선을 끌기 시작하더니 장도바위가 떡 나타난다. 잠깐 쉬기 위해 커피 한잔을 하며 바위를 바라보노라니 이름 모를 새 한 마리가 낙엽 위를 폴짝이며 나댄다. 저 속에 무슨 먹이가 있을까. 우리가 볼 수 없는 그 무엇들을 나무들은 숨겨두고 있음에 틀림없다. 오늘의 보물찾기는 새들에게 빼앗겼나보다.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었음을…

 

 

 

 

장도바위에서 10여분을 올라 적상산성 서문을 만났다. 산길을 걷다가 역사적 사실을 품은 흔적을 만나는 것처럼 즐거움은 없을 것이다. 이리보고 저리 보며 그 아담하고 정겨운 모습을 사진기에 담다 하마터면 미끄러질 뻔 했다. 배낭이 산성 돌담에 걸리면서 내 몸의 균형이 휘청했기 때문이다. 이만했음에 나도 모르게 감사함을 보낸다. 서문을 지나 빠르게 걸어 주능선 삼거리에 올랐다.

 

 

 

향로봉을 향해 걸었다. 적상산의 최고봉이다. 능선 길은 편안했다. 향로봉에 이르렀지만 조망은 좋지 않았다. 그곳에 국립공원공단 직원이신 아저씨 한 분이 계셨는데 우리보다 더 안타까워하신다. 보이지 않는 곳을 가리키며 자꾸만 설명을 해 주신다. 그 중 재미난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곳 향로봉에서 향을 피우면 저쪽 덕유산 향적봉에 향이 쌓였단다. 그래서 그곳의 봉우리가 향적봉이란다. 억지 같으면서도 그럴듯한 이야기에 웃음이 절로 나온다.

 

 

▲신갈나무 혹

 

 

다시 삼거리로 내려와 안국사 방향으로 길을 걸었다. 부토일까? 비 맞은 길들이 질펀하다. 간혹 나뭇가지에 매달린 물방울들의 영롱함을 바라보다 깜짝 놀라 걸음을 멈췄다. 신갈나무 한그루가 여러 개의 혹을 달고 서 있었다. 두려움은 순간, 애처롭기만 하다. 무엇이 저토록 나무를 힘들게 했을까.

 

 

 

우뚝 솟은 송신탑의 위용에 눈이 놀란다. 원래 이곳이 향로봉보다 10m 높은 곳인데 송신탑으로 제 몫을 못하는 곳이란다.

 

 

송신탑을 돌아 한참을 걸어 내려가니 안렴대다. 너럭바위만 있을 뿐인데 유명한 까닭은 조망도 좋았지만 바위 아래에 임진왜란 때 이조실록을 보관했던 동굴이 있어서라고 한다. 바위 아래가 깊고 깊어 동굴은 찾지 못했다. 위험한 곳인지 출입금지 푯말이 서 있었다. 이제 안국사로 내려가면 오늘의 적상산행은 끝이다.

 

 

 

낙엽 쌓인 양지쪽을 찾아 앉았다. 간식을 함께 나누며 이별식을 가졌다. 조금은 단조롭게 3시간여를 걸었지만 마음만은 충만하다. 단풍 대신 낙엽을 실컷 밟았으니 오늘 내가 만난 산은 적상산(赤裳山)이 아닌 적엽산(積葉山)이었다. 가을, 내년에 다시 만나자!!

 

#. 안국사, 적상산사고, 장도바위 이야기는 별도로 정리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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