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치마(赤裳)를 두른 산이란 이름이 무색하리만치 단풍잎 하나 남아있지 않은 나무들이 산을 채우고 있었다. 가을은 자신들만의 추억들을 보자기에 싸 놓고 겨울이 오기를 기다리는 모습이다. 겨울이 오면 아무 미련 없이 툭! 자리 털고 일어날 기세이니 묵언 수행자의 모습처럼 든든하기 짝이 없다. 적상산은 게으른 등산객을 위한 산이라고 누군가는 말했다. 나 역시 1,034m에 높이에 오르면서도 힘 하나들이지 않고 온갖 해찰을 다하며 걸었다.
가을과 겨울의 경계선의 모습이 이러한 것인지… 낙엽 밭에 푹푹 빠지는 발걸음이 우리 뒷산을 걷는 듯 편안하니 마냥 신났다. 그렇게 한 시간여를 걸은 후 장도바위를 만났다. 적산산성 아래에 하늘을 찌를 듯 서있는 바위다.
▲ 장도바위
고려 말 최영장군이 민란(民亂)을 평정하고 개선(凱旋) 하던 중 산의 아름다움에 이끌려 산 정상에 오르게 되었다. 정상이 얼마 남지 않은 곳에 절벽 같은 바위가 길을 막고 있어 더 이상 산을 오르지 못하게 되자 최영 장군은 허리에 차고 있던 장도(長刀)를 뽑아 바위를 힘껏 내리쳤다. 그 순간 바위가 양쪽으로 쪼개지면서 길이 열렸다 하여 장도바위라 불리게 되었다 한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는 어떠한 역사적 증거가 남아 있지 않다. 기묘한 바위를 보고 그에 서린 위엄을, 귀한 사람에 비유하고픈 사람들의 마음이 구전되면서 전설로 전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장도바위에서 10여분을 오르면 적상산성을 만난다. 사적 제146호로 지정된 적상산성은 고려 말에 최영장군이 산성축조를 건의했다고 한다. 그 후 조선시대에 중지와 수축의 과정을 거듭하며 축조되었다고 한다. 당시 이 성안에는 실록전(實錄殿), 사각(史閣), 선원각(璿源閣), 군기고(軍器庫),· 대별관(大別館), 호국사(護國寺) 등이 건립되었고 별장·참봉·승려들에 의해 보호·관리되었다고 한다. 이 산성은 지금 흔적으로 남아 있고, 이 산성을 축조한 연대와 관련된 사람이름까지 기록되어 있음으로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니 이는 역사인 것이다.
▲ 안국사 극락전
▲ 단청이 안된 극락전
향로봉을 내려와 안렴대를 거쳐 안국사에 닿았다. 이름에서 말해주듯 나라를 편안하게 한다는 호국 사찰로 산중 깊이 자리하고 있으며 사고의 수호책임을 맡은 사찰이다. 누각을 지나 만난 극락전은 여느 절의 날아갈 듯싶은 지붕의 대웅전이 아니었다. 맞배지붕과 맞물린 풍판으로 인하여 전체적으로 둥글게 보이면서 조금은 귀엽게 느껴진 건물 형태였다. 대웅전이 아니라, 극락전이라는 현판도 이색적이다. 그런데 극락전 지붕을 따라 한 바퀴 돌다보면 좌측 뒤편의 지붕 아래는 단청이 없는 원목 그대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에는 ‘학 단청’의 전설이 전해온다.
100일 동안 단청 작업을 하기로 했으나 99일째 되는 날, 절의 주지가 단청작업 상황을 들여다보고 말았다. 그 때, 단청작업을 하던 학이 날아가 버리면서 마지막 단청을 하지 못했다는 전설의 흔적이다. 이 또한 확인할 수 없는 전설이다. 학이 단청을 했다는, 조금은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닌가. 그럼에도 할 수 없는 존재들이 무엇을 해 냈다는 신비로움을 부여하며 높은 의미의 가치를 창출하고 있는 전설이다.
▲ 무심한 척, 떠나는 가을은 봄을 품고 있다.
역사와 설화의 차이는 무엇일까. 소설가 이병주님은 그의 소설 ‘산하’에서 '태양에 바래지면 역사가 되고 월광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 고 하였다. 어떠한 유적지에서 사실적으로 고증이 되면 역사가 되고 검증이 되지 않는 이야기로 전해 옴은 전설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 아침 신문의 한 칼럼에서 明자를 인용한 재미난 글을 읽었다. 明은 해(日)와 달(月)의 합성어로 양과 음이 함께해야만 밝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했다. 적상산을 다녀온 후, 그곳에 공존하는 역사와 전설 등에 묘한 감정이 머물고 있었음에 나도 모르게 무릎을 탁! 치면서 맞아! 해와 달은 역사와 신화가 아닌가! 라는 생각에 머무르고 말았다.
어느 한 곳을 찾아 갈 때 그냥 아무런 목적 없이 찾아가는 것보다 한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를 확인해 볼 수 있는 즐거움은 그 무엇에도 비교할 수 없다. 비록 허무맹랑한 이야기일지라도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만큼은 정말 그럴까하며 일체감이 되고 만다. 상상도 감성의 하나라고 하였다.
새 천년이 도래했다며 각종 의미를 부여하며 요란을 떨었던 2000년 초, 21C는 3F 시대라는 말을 주장하곤 했었다. 3F는 Fiction(가상, 상상), Feeling(감정, 감성), Female(여성)의 이니셜이다.
요즈음은 편리한 생활만을 추구하다보니 상대적으로 메말라가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에 삶의 질을 높이려는 데는 섬세함과 감성적인 여성들의 역할이 증대되는 시기가 21C라 했다. 비록 내 스스로의 감성어린 상상력은 부족할지언정 이처럼 전해오는 이야기와 함께 이어지는 역사를 만나는 일은 참 재미있다. 내가 여성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21C를 살아가는 나에게 주어진 미미한 역할은 무엇일까. 역사일까. 전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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