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니
가을은 깊어만 갑니다.
작년에도 올해도 내년에도 찾아오는 가을이건만
가을은 잊지 않고 낙엽편지를 띄우며
단풍구경 가자합니다.
참으로 멋진 가을의 초청이지만 금세 응하지 못하고
예서제서 차츰 무르익어가는 가을기운에
내 소매 깃만을 자꾸만 내려뜨리며
지천에 스며든 가을을 찾아봅니다.
눈 안으로 가득가득 담아 보아도,
입으로 좋다는 말을 아무리 읊조려도.
여기 저기 종횡무진하며 끼를 멈추지 못하는 가을뿐입니다.
출근길,
막 아파트의 굴레에서 벗어나 맞닥뜨린
눈앞에 펼쳐지는 사물의 모습들은
집안에서의 부산함을 어느덧 싹 거두어 가 버립니다.
화단 한 귀퉁이에
아무렇게 서서 피어난 국화꽃의 향기에는
알듯 모를 듯싶은 웃음이 배여 있습니다.
맑은 햇살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며
에움길을 돌아올라 휴~ 한숨 돌리며 내려서는 길은
그 어느 유명한 곳 경치보다도
내게는 더 없는 정감으로 다가옵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아담한 감나무에
내 유년시절의 추억을 가득 안고
소담스럽게 주렁주렁 달려있는 감들이 그러하고
잔잔한 바람결에 제 몸을 맡기고
간밤에 내려앉은 이슬을 떠나보내는
허름한 공터의 억새의 모습에서 가슴 뭉클함을 느끼고
산 능선을 타고 내려온 산자락 끝에
지천으로 피어있는 쑥부쟁이의 청초한 모습은
사무치는 그리움을 자아냅니다.
내 눈 안으로 들어오는 하나하나는
서로가 어울려 커다란 질그릇 수반의 꽃꽂이가 되어
자신만이 품고 있는 의미를 전하고 있습니다.
모든 아름다움은 슬픔의 끝에서 나온다는 말처럼
이 가을, 무언가 모르는 슬픔으로
애잔함을 담아 내 곁으로 달려드니
나는 그저 이 가을 모든 것에
맥없이 적셔질 따름입니다.
오늘처럼 비 내리는 날이면
비에 젖은 낙엽에 고운 사연을 적어 멋진 님에게 보내고 싶은
참 이쁜 가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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