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님의 대하장편소설 아리랑의 배경으로 나오는
'징게맹갱외에밋들' 은 '김제 만경 너른들'을 일컫는 말이다.
소설에서는
'그 끝이 하늘과 맞닿아 있는 넓디나 넓은 들녘은 어느 누구나 기를 쓰고 걸어도
언제나 제자리에서 헛걸음질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만들었다' 고
표현 되고 있다. 얼마나 넓은지 지명이 '광활면'이다.
토요일이라는 가벼움은 삽상한 가을바람을 핑계 삼아 나를 부추긴다.
넓디나 넓은 들녘, '징게맹갱외에밋들‘을 찾아가는 길은 가을로 가득했다.
아! 가을을 품은 풍경들은
씽씽 스치는 내 눈 안에 서로 먼저 들어오려고 앞 다투며 밀치고 달려들지만
내 작은 눈은 그저 욕심만 낼 뿐 그 무엇도 잡지를 못한다.
막 익어가기 시작한 벼들의 옆에 불쑥 서있는
농익은 노란 꽃의 뚱딴지 꽃이 너무 멋져 보인다.
가을은 이렇게 어울리지 않는 뚱딴지들도, 불청객인 나도
살그머니 끌어주며 가을의 한 식구로 만들어 버린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나도 가을이다.
여리디 연한 가을바람에 온 몸을 맡기며 하늘거리는 코스모스는
마치 익어가는 벼들을 지키는 파수꾼이라도 된다는 듯 의기양양하다.
지나는 길손에게 방긋방긋 웃으며 애간장을 녹이는 코스모스의 몸짓은…
또 다른 무엇도 바라볼 수 없도록 내 눈을 빼앗아 버린다.
약한 듯 강한 햇볕에 하얗게 온 몸을 반짝이며 낭만적인 춤사위를 보여주는 억새,
들판 한 가운데 그림처럼 앉아있는 허름한 농가 귀퉁이에 서있는 감나무들은
가지가 휘어질 정도로 많은 감을 주렁주렁 달고서 나를 유혹한다.
밭 자락 끝이나 논두렁 옆 둔덕이든 어느 곳이든 제 몸 뉘일 자리만 보이면
아무렇게 푸짐하게 누워 해바라기 하며 누렇게 익어가는 호박이 탐스럽기만 하니
이보다 풍요로움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으리라.
길게, 넓게 펼쳐지는 들녘의 단순하고 소박한 아름다움을
그대로 하나의 작품으로 남기신 조정래님의 그 표현에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지만
지금 이내 마음속에 차오르는 느낌을 나타 낼 길 없으니
그냥 이 길에 퍼질러 앉아 코스모스의 작은 꽃잎이고 싶다.
길 끝나는 곳에 새로움이 있다고 하지만
이 끝이 없는 들녘 한 가운데의 코스모스의 길은
한없이 길기만하여 끝이 없음에도, 하여 새로움이 없을지라도
더 길게 이어지기를, 끝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끝이 보이면 그저 힘없이 주저앉아 버릴지도 모르겠다.
가을햇살에 눈이 부신다.
코스모스의 자태에 마음이 시리다.
아, 정말 가을인가~~
가을인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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