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이상을 함께한 우리 집 군자란이 9월에 꽃을 피웠다.
군자란은
1 ~ 3월에 꽃을 피우며 봄이 옴을 일찍이 알려주는 식물이다
지난봄에 핀 꽃은 어느새 열매를 맺고 있는데
뜬금없이 주홍빛의 꽃을 피웠다.
이른 봄,
꽃이 지고 나니 구석진 자리에서 누구의 시선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오늘 문득 호들갑스러운 내 목소리에 깜짝 놀랐는지
빵끗 꽃 속을 보여주면서 의연히 피어있다.
줄기가 없이 뿌리에서 바로 잎을 올리는 습성이 있어서인지
잎 사이의 꽃이 화분의 흙에 거의 닿을 듯싶으니 애처롭기조차 하다
구석에 있던 화분을 우리의 눈에 잘 띄는 곳으로 옮겨놓고
지그시 바라보노라니 만감이 스쳐간다.
지금 군자란은
자기에 대한 무관심을 끌어내기 위한 목적으로 꽃을 피웠을까?
아닐 것이다.
꽃들은 누구의 관심을 받기위해 피어나는 존재가 아닌 것이다.
자기에게 주어진 몫을 해 내기위한 노력의 결과이기에
그렇게 예뻐 보이는 것이다.
우리 집 군자란이 제 철이 아닌 지금 피어난 까닭을 곰곰 생각해보니
올 봄의 꽃이 많이 부실하다고 느꼈던 생각이 난다.
그 부족함을 이제라도 채워보고 싶은 것일까.
일 년의 기간 동안 해야 할 몫이 있었는데
그 몫에 다함을 못했다면
어느 때든 주어진 여건에 맞는 노력을 하면
충분이 그 나머지를 채울 수 있다는 교훈을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한 사람의 부족함이나 실수를 대하고
우리 사람들은 그 당시 그 모습만을 보고
잘하네, 부족하네 하며 온갖 말들을 쏟아내고 있다.
차라리 무관심으로 놓아둔다면
노력하여 스스로 제 나머지 몫을 해 낼 수 있을 텐데
우리는 기다리며 지켜보지도 않고 지독한 말로 다그치고 상처를 주며
그 능력의 싹을 일찍이 꺾어 버리곤 하는 것이다.
지금 군자란은 봄에 충분히 다하지 못함을
이제야 해 내서 미안하다는 수줍음으로 아직 꽃대를 쑥 올리지 못하고 있다.
군자란의 꽃말은 고귀와 우아함이다.
오늘처럼 때 아닌 9월에 꽃을 피워도
의연함을 잃지 않는 우아함으로 고귀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아, 어쩌면 이 예쁜 모습은
나에게 보내온 소중한 추석선물인지도 모른다.
기다리며 말없이 지켜보는 노력을 과연 얼마만큼이나 했을까
얼마나 많은 조급증의 잘못을 저지르며 살아왔는지를 살펴보라는…
나에게 보내온 최고의 추석선물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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