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의 세찬 빗줄기는
늦잠을 즐기는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날이 밝아지면서 빗줄기가 잦아들더니 내내 꾸무럭거리며 시야를 흐리게 한다.
종일 흩날리는 빗줄기에서 차분함을 가져다 내 마음을 다독이니
일들도 얌전히 내 주문을 잘도 따라준다.
주차된 차의 창과 차체에 뿅뿅 올라있는 물방울들이 더 없이 정겹다.
퇴근길,
와이퍼에 쓱쓱 밀려나는 물방울들이 자꾸만 숨바꼭질을 하자하며
유리창에 얼굴을 디밀곤 하지만 후다닥 달려 나온 와이퍼는
어느새 빗방울을 쓸어내리며 마치 리듬을 타는 듯 천연덕스럽다.
이럴 땐 신호대기 시간이 길어짐이 더 좋다.
라디오에서 흐르는 음악에 괜한 기분이 센티해진다.
오늘 따라 잔잔한 가락에
호소력 있는 정감어린 목소리로 들려주는 노래가 정말 좋다
그런데 많이 듣던 곡인데 제목이 도대체 생각이 나지 않는다.
무어지?
한번 쏠리기 시작한 궁금함은 상황의 메커니즘에 휩싸이며 더욱 안달을 한다.
어휴! 답답하다.
금방 입속에서 튀어 나올 것 같은데 뱅뱅 맴만 돈다.
이처럼 혼돈의 도가니 속에서 헤매던 일이 어디 한 두 번인가?
나이 탓으로 돌리며 합리화시키려는 마음이 앞서간다.
어쨌든 곡이 끝나고 진행자의 곡 설명에 제목이 나오기 전에
내가 먼저 알아 맞춰야한다는 내기를 해본다. 하지만 어림없었다.
빗줄기를 자꾸만 쓸어내리는 와이퍼가
나를 보고 메롱~~ 하면서 혀를 내미는 것 같다.
결국 오늘은 내가졌다.
진행자의 멘트가 나온다.
‘ Tiger in the night ’ 란다.
나는 그제야 손바닥으로 핸들을 딱 치면서 아! 맞아! 했지만
이미 내기에 진걸 어쩌랴.
맞아. 지금 진행되는 음악방송의 시그널뮤직이 아니었던가.
늘 듣던, 연주곡으로만 들었던 곡에
가사를 넣고 목소리로 들려주니 전혀 다른 느낌으로 내 안으로 스며들었던 것이다.
차분히 비 내리는, 어스름이 내리는 무렵에 듣는 음악은
음악 이상의 분위기를 빚어내고 있다.
늘 보아온 저녁 무렵의 어스름에
비가 내리면서, 정감 가득한 호소력 있는 목소리까지 들려오니
전혀 다른 그 무엇을 기대하는 마음이었나 보다
가을, 가을을 보내주고 있었는데…
저녁 어스름에
자취 없이 音으로 스며드는 가을은 잡지 못했으나
이른 새벽길
제 몸 떨어트리며 소리로, 몸으로 알려주는 가을은 얼른 주웠다.
▲ 내가 주운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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