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지붕과 돌담, 그리고 박
눈길을 끌어가긴 했는데 무언가 어색했다.
아, 박이 돌담위에 엉성하게 올라 있음이 어울리지 않는다.
박은 초가지붕위에 있어야 제 멋이지 않는가.
어두워지는 저녁에 어스름 달빛아래 하얗게 꽃을 피우고
둥글게 자란 박이
조금은 무거운 몸을 부린 듯
초가지붕위에 푹신 들어앉은 모습이 제격인 것이다.
초가지붕의 둥금과 박의 둥금
그리고 보름달의 둥금은 얼마나 환상적인 어울림인지…
비록 꽃으로는 그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꽃이 진 후 열리는 박은
우리 정서의 바탕이 되는
농가의 담백한 운치를 논 할 때는 결코 빼 놓을 수 없는 존재이다.
아마도 그런 정서를 그리워하며
누군가가 초가지붕 곁에 박을 심었나보다
박은 착한 사람의 상징이기도 하다
지지리도 못사는 흥부가
이제 형인 놀부보다 훨씬 더 부자가 되게 해주는 복덩어리가 아닌가.
박을 타서 나오는 보물대신
박으로 만든 일상의 바가지에서
무어든 담을 수 있는, 바라만 보아도 풍요로움을 주는
그래서 마음의 부자가 되는 그런 복, 담백한 복을 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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