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사랑으로!!

마음따라 발길따라

희운각 ~ 소청

물소리~~^ 2014. 5. 22. 07:42

 

 

 

 

 

   희운각대피소에 이르니 또 한 고비를 넘겼다는 안도감에 저절로 편안해진다. 몇몇의 등산객들은 취사장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냥 쉼 의자에 앉아 물을 마시고 간식을 먹으며 잠시 쉬노라니 금세 한기가 스며든다. 땀에 젖은 몸이 바람결에 체온을 빼앗기고 있으니 얼른 여벌의 옷을 챙겨 입으며 자연의 변화무쌍함을 실감해 본다.

 

대피소 앞을 흐르는 계곡에는 물은 많지 않았지만 계곡의 크기만큼은 하류 못지않으니 큰 비라도 내리는 날의 장관이 절로 그려진다. 이곳이 가야동계곡의 최상류라 한다. 설악산의 계곡은 많기도 하다. 느닷없이 이곳이 가야동계곡의 상류라 하니 내가 여태 곁에 두고 따라온 천불동계곡은 어디 메쯤 있을까? 이 또한 신비함이다. 아마도 물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부터 천불동은 다른 길로 흘러 나갔나 보다.

 

비밀은 무너미고개에 있었다. 희운각에 도착하기 전 부터 검은색으로 표시한 길이 무너미고개였는데, 그곳이 천불동계곡과 가야동계곡을 구분 짓는 곳이었다고 한다. 즉 한 줄기의 계곡을 급변하는 자리서부터 이름을 달리하는 경우라고 할 수밖에 없다. 무너미란 말의 ‘무’는 물에서, ‘너미’는 넘는다는 뜻이 있다하니 사람들은 물을 넘어 오르면서 계곡이름을 달리 불렀나 보다.

 

희운각 부터 소청에 이르는 길의 난이도 역시 최고도이다. 안내도를 보면 까만색으로 그려져 있다. 휴!! 저 왼쪽 봉우리가 소청일까? 저 능선까지만 오르면 수월하다는데… 잘 헤쳐 나가야겠다고 다짐하며 다시 배낭을 메고 일어섰다. 대피소 앞 다리를 건너자마자 급경사다. 한 구간에는 이곳은 심장마비증세를 자주 일으키는 곳이니 쉬어가라며 의자를 만들어 놓았다.

 

남편의 걸음은 점점 뒤처지고 있었다. 걸음을 멈추고 심호흡을 하는 횟수가 많아지더니 나보고 먼저 올라가라고 한다. 하지만 이 험한 곳에서 행여 무슨 일이 있다면? 하는 염려로 그냥 같이 보조를 맞추고 있었는데 점점 느려지는 걸음이 못내 아쉬운지 자꾸만 먼저 가라한다. 먼저 올라가서 소청에서 다시 내려가 봉정암까지 다녀오라고 한다. 다녀와서 중청에서 만나자고 한다.

 

괜찮겠느냐고 몇 번 다짐을 하고 앞서 오르기 시작했다. 자신에 대한 컨트롤이 강한 사람이기에 조금 안심이 되었다. 나 또한 이곳까지 와서 봉정암을 들릴 수 없는 코스를 택했음에 못내 아쉬웠는데 의외의 기회가 주어지니 좋아라하며 내 페이스대로 빨리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찌 좋음에 이르는 길이 쉽고 편하기만 할까.

 

쉼 없이 이어지는 계단을 타고 오르고, 비탈길을 엉금엉금 오르며 마치 극기 훈련에 임하는 듯싶으니 나도 나이지만 뒤처진 사람이 걱정된다. 나무숲을 벗어나는 곳이면 바람이 어김없이 나를 스친다. 어느 순간 바람이 휙 스치면서 내 모자를 벗기더니 저 아래로 날려 보낸다. 다행히 낭떠러지가 아닌 등산로에 날려 보내니 밑에서 올라오는 사람이 “아, 제가 가지고 갈 테니 내려오지 마세요.” 한다. 참으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어쩔 수없이 그 사람이 올라올 때까지 기다리노라니 저절로 쉬는 시간이 되었다. 아! 바람이 나에게 일러주었구나. 이곳에서 급한 걸음은 절대 위험하니 천천히 오르라고 모자를 벗기며 일러주었나 보구나! 말없는 자연의 교훈이 진정으로 다가온다. 오늘 내가 이 설악산을 오르며 귀함을 저절로 깨닫고 있음에 이 어찌 가슴 부풀지 않겠는가.

 

모자를 가져오신 분께 초콜렛 몇 알을 건네 드리며 고마움 마음을 전해 드렸다. 잠시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보니 끊어졌다 이어졌다를 반복하는 전화기 속 음성이었지만 씩씩하였다. 걱정 말고 계속 가라고 한다.

 

높이 오를수록 시야가 확 트이면서 또 다른 설악의 풍경을 보여준다. 말없는 기암과 아낌없이 쏟아지는 햇살과, 바위의 정기와 햇살의 양기를 골고루 섞어주는 바람, 그에 한량처럼 떠돌면서도 가끔 나무들에게 그늘을 만들어주는 하늘의 흰 구름, 어느 것 하나 아름답지 않음이 없었다.

 

그들 속에서 자꾸만 높이 오를수록 조심해야겠다는 겸손의 마음에 절로 이르니 이는 우리가 살아가며 절대 필요한 삶의 자세가 아닌지… 속세에 묻혀 지내면서 옳고 그름을 분간하는 능력마저 상실한 채 살아가노라면 결국 화에 이르고 마는 것, 오늘 나는 설악의 아름다움을 만나기 위해 고행의 길을 걸으며 절실히 깨닫고 있었다.

 

드디어 소청에 도착!

어머나!! 상상의 소청보다 의외의 소박함이었다. 1,550m의 높이를 지닌 소청에 내 무엇을 기대 했던가. 큰 나무들이 우거지고 우람한 바위절벽 등을 기대했던가! 그곳에는 소청임을 알리는 표지판만이 덜렁 서 있었을 뿐, 그냥 평범한 동산 이었다.

 

작은 둥근 분지를 형성한 그곳에서 나를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은 노란 민들레꽃이었다. 어찌나 선명한 노랑이던지… 한 순간 이곳이 설악임을 잊은 듯싶다. 거센 바람만이 이곳이 높은 곳임을 알려준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한참을 서 있노라니 알 수 없는 편안함이 스르르 밀려든다. 참으로 기분 좋은 아늑함이다. 내 유년의 아릿함이 이곳에 녹아있는 듯 느껴지며 아기자기함이 서려 있으니 그냥 앉아서 놀고 싶다.

 

이곳은 높은 곳인 만큼 바람이 많고, 낮은 기온지역이어서인지 나무가 왕성하게 자라지 못하고 모두 낮은 키로 살아가고 있었다. 키 작은 주목나무들이 그러하고 이제야 꽃을 피우는 진달래(털진달래)의 낮은 키와 작은 꽃송이가 애잔함을 더욱 배가 시킨다. 원래 지녔던, 크게 자라고 싶고, 큰 송이로 피어나고픈 역량을 모두 꽃에게 정성을 쏟은 듯 유난히 짙은 꽃분홍의 꽃송이가 참으로 앙증맞다. 바람은 여전히 내 모자를 희롱한다. 또다시 바람에 모자를 빼앗길까 벗었다 썼다 반복하는 내 모습을 바람을 즐거워하며 바라보고 있을까.

 

눈을 들어 바라보니 정상 대청봉이 한 눈에 들어온다. 원래의 계획이라면 이제 능선을 타는 편안함으로 50여 분만 걸으면 대청봉인데 나는 봉정암으로 가기위해 다시 306m 를 내려가야 한다. 이곳 소청이 1,550m, 봉정암이 1,244m에 위치하고 있으니 다시 내려갔다 또다시 올라와야 하는 기회가 나에게 주어진 것이다. 배낭을 다시 불끈 여며 메고 봉정암으로 향했다.

 

 

 

 

 

 

 

 

▲ 하늘과 구름 그리고 나무, 잡히지 않는 바람이 노니는 곳, 설악산

 

 

▲ 불쌍한 구슬봉이

 

  

▲ 저 멀리 대청봉이 다소곳한 모습으로 나를 기다린다.

 

 

▲ 자신을 다 내 주고도 살아가는 나무

 

 

▲ 1275봉, 범봉, 신선대

등산로 전 코스가 최고의 난이도인 공룡능선

 

 

 

 

 

 

 

▲ 바위가 뿜어내는 정기는 물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는 신비약인가 보다.

 

 

▲ 오를수록 시야가 터지면서 아낌없이 풍경을 잡아준다.

 

 

▲ 멀리 보이는 울산바위

 

 

▲ 털진달래의 소담스러움

 

 

 

 

▲ 죽어서도 풍경을 빚어내는 고목들

 

 

 

▲ 소청(1,550m) - 소박함이다.

 

 

▲ 소청에서 바라본 대청봉(뒤편)

가운데 희미하게 중청대피소가 보인다.

 

 

▲ 이곳에서 나는 대청봉이 아닌 봉정암을 가기위해

이곳에 이르는 또 다른 길을 따라 다시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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