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수마이봉 아래의 은수사
한 달에 한 번 시간을 만들어 여행이나 등산을 다니자 했던 약속을 새해 들어 한 번도 실천을 못했다. 사무일의 바쁨도 있지만, 나에게 다가오는 예측할 수 없는 일들에 늘 우선순위를 주어야했기 때문이다. 하나의 일이 해결되면 또 다른 하나의 일이 한발자국씩 다가오고 있으니 원래 삶이란 그러한 것이다 라고 단정하기엔 너무 바보 같은 자세다.
오전 중으로 일을 마무리하고 길을 나섰다. 마이산의 은수사를 다녀오자 했다. 마이산에는 벌써 세 번을 다녀왔다. 그곳에는 탑사를 비롯해 금당사, 은수사가 있는데도 늘 유명한 탑사만를 둘러보곤 했다. 암마이봉을 중간정도까지 오르기도 해 보았다. 하지만 정작 내가 꼭 가보고 싶은 곳과 시기를 번번이 놓치고 있었다. 능소화가 장관을 이룬다는 꽃소식이 들려올 때면 내 마음만 능소화처럼 쿵 떨어뜨리며 만날 수 없음을 애달아했다.
또한 탑사를 조금 돌아서 오르는 곳에 있는 은수사를 언젠가부터 꼭 가보고 싶었다. 이름처럼 숨어서 수행하는 곳일까. 뭇 사람들의 발길이 탑사에서 되돌아가곤 하니 역사가 더 깊은 은수사는 조용히 마이봉의 품에 안겨 있는 곳이다. 그곳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청실배나무와 줄사철나무가 있다고 했다. 청실배나무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이런저런 역사이야기들을 은근히 간직하고 있는 은수사까지 1시간 30분이 소요된다고 내비가 알려준다. 토요일의 고속도로는 마음 급한 차들을 받아내느라 숨이 찬다. 오늘은 미세먼지 경보까지 내린 날이어서인지 하늘도 마땅찮았지만 내 마음은 오랜만의 풍경들에 좋기만 하다.
주차장에서 탑사까지 걷는 길의 바람은 봄을 품은 듯 안온하다. 아직 빈 몸인 나무들은 햇살에 긴 그림자를 내리며 묵언수행 중이었다. 길가의 벚나무들의 세세한 자태가 꽃 피울 자세를 준비 중인 듯 멋들어지게 낭창거리며 물 올리기에 여념이 없다.
조금 걸으니 온통 금빛으로 치장한 절이 보인다. 금당사라는 절이다. 이 절의 창건은 650년, 1,400여년의 역사가 저토록 찬란한 까닭은 현대에 와서 재정비를 한 까닭이다. 길 가 가까이에 위치해서인지 긴 역사성답지 않게 조금은 어수선해 보였다. 유명한 괘불이 있다는 안내문이 있었다.
구멍이 숭숭 뚫린 마이산을 배경으로 자리한 탑영제에 이르니 단정한 풍경이 눈 안에 쏙 들어온다. 벚꽃이 피는 때면 호수위의 반영이 넘 예뻐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온다고 했던가. 오늘은 오리배 한두 개 떠 있는 호수가 조금은 쓸쓸해 보인다.
그새 유명세를 타고 있는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휴일을 즐기고 있으니 그 옛날 고즈넉한 분위기는 찾아 볼 수 없었지만 내가 이곳에 왔듯, 누구라도 한 번쯤 와 보고 싶은 곳이 아니겠는가. 각각 지닌 마음의 사연들을 그려 놓는다면 아마도 저 높이 솟아있는 마이봉들도 경탄해 마지않을 일이다.
말없이 신비로움을 가득 안고 있는 탑사를 왼쪽으로 낀 길을 따라 오르니 우람하게 솟은 숫마이봉이 눈앞에 나타난다. 두 마이봉 사이에 자리한 은수사가 푹 안긴 듯싶다. 저렇게 숨어 있어 은수사일까. 한 눈에 다 들어오는 아담한 절이지만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와 관련한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조선을 세우기 전 이성계는 꿈에서 한 선인을 만난다. 선인은 ‘이 나라의 땅을 헤아려 보라’ 며 금척(금으로 된 자)을 건네주었다. 얼 마 후 이성계가 마이산을 지나는데 꿈속에서 금척을 받은 곳이 이 마이산임을 깨닫고 터를 잡아 나라를 세울 계획을 세운다. 그 때 이 절집의 샘물이 은처럼 맑다하여 ‘은수사’ 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전해진다.
멀리서부터 절집을 찬찬히 훑어보며 가만가만 들어서서 처음 만난 것은 청실배나무였다. 천연기념물 제386호로 지정된 나무다. 이 나무의 나이는 600년이란다. 조선태조 이성계가 기도를 마친 후 돌배를 먹고 씨앗을 버렸는데 그 씨앗이 자라 지금의 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또 하나의 천연기념물 380호 줄사철나무다. 이곳 어느 곳에 군락지가 있다고 하는데 찾을 수 없었지만 은수사 법고 아래에서 몇 그루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일반 사철나무보다 가지가 길다고 할까? 잎도 열매도 흔한 사철나무보다 약간 작았으며 열매의 가지가 길게 늘어지며 열매의 수도 많이 달려 있었다.
법고와 목어가 한 지붕 아래에 있다. 이 법고의 크기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크다고 하였다. 이 북을 세 번 치면 소원성취가 된다는 이야기에 북채를 들고 세 번을 크게 울려 보았다. 진정한 소원 성취가 될까? 무어든 마음먹기인 것을... 자신을 스스로 깨달으며 선한 마음을 지니라는 가르침일거라는 교훈을 건네받은 초라한 나만의 느낌이었다.
아, 대적광전을 바라보며 지붕을 올려다보니 거대한 수마이봉이 절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멀리서 바라본 모습을 사람들은 코끼리를 닮았다며 코끼리바위라 부른다 했는데 정말 그렇게 보였다. 두 마이봉은 보는 각도에 따라 달리 보인다고 한다. 아마도 마이봉을 가장 가까이, 또 멋진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장소가 이곳 은수사가 아닐까 여겨진다.
그 멋진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렌즈 안으로 눈을 디밀고 바라보는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어쩜 사람의 얼굴이 아닌가. 한쪽 눈은 실눈을 하고 한 쪽 눈은 뜬 듯, 감은 듯 하고 있으니 우는 모습인 것 같기도 하고 웃는 모습 같기도 하였다. 얼른 카메라를 내리고 다시 바라보니 정말 그렇게 보였다. 코끼리 코의 모습이 어쩜 우리 사람 코의 모습인 듯…
아, 불법이었다. 울고 싶어도 웃고, 웃으면서도 내색 말라는 무언의 불법을 가르치고 있음이다. 저 마이봉 아래에 자리한 이 절의 뜻을 알겠다. 살아가며 만나는 아픔들에 울고 싶을 때 울지 말고 웃으라며 한쪽 눈을 찡긋! 하며 응원을 보내주고 있었다. 아 나는 오늘 진정 이곳을 찾아 온 보람이 있었다.
그 감동을 억누르지 못하고 대적광전 앞을 서성이는데 주련이 눈에 들어온다. 읽을 수 있는 쉬운 글자들만 띄엄띄엄 읽었지만 감히 뜻을 헤아릴 수 없지 않은가. 엉터리 해석이지만 그냥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면 좋겠다. 맞다! 지금 이 순간 내게 주어진 시간이 가장 좋은 시간임을...
알듯 모를 듯 지닌 마음을 안고 대적광전을 내려서니 태극전이 있다. 벽은 4면인데 지붕은 팔각으로 사찰에서 만나는 조금은 특이한 건물이었다. 어딘가 모르게 조금은 민간신앙의 상징처럼 느껴졌는데, 이곳에는 단군성조를 모셨고, 태조 이성계가 꿈속에서 금척을 받는 장면을 그린 그림(몽금척도) 이 있다고 한다. 또한 일월곤륜도 벽화가 있다고 했는데 아쉽게도 문이 잠겨있어 태극전의 바깥 벽화의 일월오봉도에 만족해야 했다.
마이산은 계절 따라 불리는 이름이 다르다. 그만큼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산이다. 1억 년 전까지 호수였던 곳이 융기된 산으로 산에 구멍이 숭숭 뚫린 까닭은 바람으로 바위를 생성한 역암이 빠져 나가면서 형성된 것으로 타포니라 한다.
기묘한 만큼 신비함을 감춘 듯싶은 산에 영험을 걸어보고 싶은 우리 사람들~~ 그렇게 그곳에는 나라를 세운 사람들의 신화가 있었고, 신비의 탑을 세운 사람도 있었다. 주련의 글처럼 계절 따라 보여 지는 풍경들이 순리이듯, 지금 내가 서있는 위치와 순간이 내게는 최고의 자리일 것이다. 울고 웃는 경계도 모두 내 마음안의 헛된 생각에서 빚어지는 것이다. 오늘 그곳에 다녀온 나도 꿈을 잘 꾸어야 할 텐데 잠을 잘 잘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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