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륜산 가련봉 (703m)
천년고찰 대흥사를 품고 있는 두륜산에는 문화재급 보물 외에도 천연기념물인 왕벚나무 자생지, 천연의 구름다리와 산을 이루는 기암봉이 있어 국립공원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도립공원으로 호남의 진산이다. 종주코스 등 다양한 등산로가 있었지만 나는 최 단시간인 3시간 30분 코스를 선택했다. 바람이 심한 날이다.
일지암 오르는 길
일지암을 돌아내려와 다시 두륜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에 합류했다. 부부인 듯싶은 한 팀과 남자 세 명의 또 한 팀이 힘겹게 오르고 있었다. 워낙 쉼 없는 경사길이다 보니 모두들 한걸음씩 또박또박 오르고 있었다. 등산로가 많은데다 초행인 나로서는 메모를 해 가지고 펼쳐 보면서 걸었는데도 막상 산길을 걷다보니 이 길인가, 저 길인가, 하며 망설이곤 했다. 그런 찰나 이 길을 오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니 반가웠다. 나 역시 또박또박 천천히 걸음을 옮겼지만 그들을 앞서고 있었다. 평소 조금씩 걷는 시간이 나에겐 퍽 도움이 되었나 보다.
너덜겅 길
오래 된 큰 나무에 걸린 전설
산죽이 자라는 너덜겅 등산로를 따라 계속 걸었다. 이끼 낀 바위가 미끄럽다. 다행히도 국립공원만큼은 아니어도 간간히 이정표가 있으니 내 계획대로의 길을 찾아 걸을 수 있었다. 두륜산의 명물 천년수를 만났다. 어른 다섯 명 정도가 팔 벌려 에워싸야 하는 굵기의 몸통을 지닌 느티나무는 수령이 1200~ 1500년 정도라니 참으로 신기하다.
만일암터 오층석탑
느티나무 조금 위의 만일암터의 오층석탑이 오롯하다. 다 스러지고 탑만 덩그러니 남았는데 탑 아래의 땅에 쑥부쟁이가 잔잔히 피어있다. 탑은 외롭지 않겠구나~ 하는 마음이 드니 꽃과 함께하는 세월이 얼마나 좋아 이토록 긴 시간을 외롭게 버틸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오히려 부러움마저 든다.
이곳에서 북미륵암쪽으로 가면 미륵암을 만날 수 있는데, 아쉽다 내가 선택한 길이 아니었고 그 길로 들어서면 6시간이 소요 된단다. 아쉬움을 접고 내 길을 따라 들어섰다. 자꾸만 북미륵암으로 한 번 가 볼 걸, 하는 아쉬움이 발걸음을 더디게 한다.
만일재에서 바라본 바다, 섬~~
만일재 억새
만일재에서 바라본 두륜산의 최고봉 가련봉(703m)
천년수와 오층탑을 뒤로하고 조금 더 오르니 만일재가 나타난다. 아!! 확 트인 전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하얗게 센 억새들이 군락을 이루며 자라고 있었고 물결치는 억새 뒤로 펼쳐지는 바다와 섬들! 산을 오른다는 것은 이렇게 새로운 풍경을 만나 마음을 내려놓는 일이 아닌가. 널찍하고 풍경 좋은 곳에서 모두들 사진을 찍느라 부산하다. 약간 흐린 날에 바람이 부니 사진 찍기에 어려움이 있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폼 잡는 모습의 웃음소리가 참 산뜻하다.
만일재에서 바라 본 두륜봉 (나는 이곳을 올라야 한다)
두륜봉을 올라가는 길의 구름다리
두륜봉, 뒤에 가련봉과 노승봉이 함께 보인다.
바위 사이길을 오르기 위한 손잡이
만일재에서 왼쪽의 봉우리가 가련봉으로 두륜산의 최고봉(703m)이였지만 나는 오른쪽 두륜봉을 향해 걷는다. 험한 길이다. 밧줄과, 돌 사이에 걸어놓은 거대한 문고리를 잡으며 오르노라니 돌로 이어진 천연 구름다리 밑에 다다르다. 천연적으로 이루어진 기암다리만으로는 두륜봉에 이를 수 없어 그 밑에 철제계단을 만들어 놓았나보다. 자연과 조화롭지 못하다 여기면서도 나 또한 그 위를 오르고 있으니…
두륜봉에 오르니 바람이 더욱 심하다 내 머리를 마음대로 빗어 넘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이 산에 오르면 제주 한라산과 서로 바라 보인다'고 기록되어 있다는데 오늘은 바람과 비 내린 후, 시야를 뿌옇게 가린 엹은 안개 때문에 선명하게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기분이 상쾌하다. 모두들 앉아 점심을 즐기며 먹는다. 이 팀, 저 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인데도 서로 가지고 온 음식을 엿보며 나누어 먹기를 청하고, 스스럼없이 주고받는 마음은 분명 이 산이 누구에게나 선물하는 참 좋은 마음이 저절로 우러나오기 때문이 아닌가? 나 또한 잠깐 동안 일행이 되어 오른 부부팀과 맛있게 점심과 차 한 잔을 나누어 먹었다. 꿀맛이다.
진불암에서
두륜봉에서 진불암을 거쳐 다시 대흥사로 내려가는 길. 어휴! 굉장한 돌길에 내리막이 심한 길이다. 그래서 최 단시간 코스였나 보다. 뒤에서 걸어오는 한 여자 등산객이 하는 말, '왜 이렇게 빡 센거야?' 정말 그렇다. 길을 골라 걷느라 지루한 줄 모르겠다. 그렇게 한참을 내려오니 진불암이 보인다. 모두들 한 박자씩 쉬느라 앉아 있다. 고즈넉해야 하는 암자가 산객들로 잠시 소란스럽다. 아기자기한 풍경을 눈에 담아보고 다시 걸었다.
내려오는 길에 만난 풍경
대흥사로 돌아왔다. 총 산행시간은 3시간 30분! 예정시간을 지키느라 정말 수고했다. 이른 시간의 산행이었기에 일찍 내려올 수 있었다. 이제 이 모든 충만함을 안고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주차장에 이르니 이제 막 오르는 사람들이 엄청 많다. 아마도 전국에서 가장 늦은 단풍의 묘미를 만나러 오는 사람들이겠지. 마지막까지 아름다움을 품은 두륜산을 이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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