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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맘의 글방

졸아듬으로 빚어낸 결정체

물소리~~^ 2010. 11. 21. 18:37

 

 

 

 

 

 

 

 

   내가 그 길로 접어든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서 너 해 전, 무거워진 머리를 식힐 겸 드라이브 나섰다 만난 길이었다. 풍경마저 숨죽인 한적함이 좋았다. 넓은 평야와 맞대고 있는 갯벌이 있었고 논 사이의 갈대밭이 참으로 평화로웠다. 넓게 펼쳐진 갈대밭을 바라보고 마음속으로 환호성을 지르며 내 달았었다. 그렇게 만난 후,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한 번씩 찾아가곤 했던 곳이었다. 하지만 그곳에 염전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며칠 전 다시 찾아 간 날, 우연히 둑 한쪽에 폐허가 된 채 서있는 집 하나를 스치는 순간 나도 모르게 고개를 다시 돌려 쳐다보았다. 소금창고였다. 소금창고는 그렇게 내 마음 안의 무엇을 끄집어 내주면서 나를 부르고 있었다. 차는 그곳까지 들어갈 수 없었다. 소금창고를 가까이 보기 위해 막 저물기 시작하는 해질녘의 둑방을 따라 걷는 마음은 고요하기 그지없다. 

 

갯벌을 옆에 두고 나있는 갈대 사잇길이 참으로 정겹다. 오롯한 길은 조금은 외로웠지만 길 스스로 마음껏 자유로웠다. 폐 염전에는 염생식물인 칠면초가 가득하다. 고즈넉하고 인기척이 없음에도 그들이 자라난 모습을 바라보노라니 삶의 원칙인 아픔을 다 알고 있는 듯 무심해 보인다. 

 

염전의 풍경은 충분히 애상스럽다. 내 눈에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남루해 보이는 것은 염전의 해주다. 집들의 구조가 비슷하듯 해주나 소금창고는 그 어느 곳의 염전이나 비슷하다. 창고는 우선 검은 색깔에서부터 특이하다. 제대로 된 것이 아닌 아무 판자대기를 얼키설키 엮어 놓은 것처럼 보이니 가난해 보인다. 그렇게 가난해 보일망정 해주의 키라도 조금 높았으면 좋겠건만 땅에 코 닿을 듯 납작 웅크린 모습은 내 눈길을 자꾸만 거두어 간다. 

 

아스라한 풍경 속 소금창고는 풍화되고 부서져 폐허가 되어 있었지만 어쩐지 당당함이 스며있는 듯 보인다. 지난 시절 번성과 영화를 거쳤을 소금창고의 낡음은, 가장 영롱하고 맑은 시간의 결정체인 소금을 안고 있었다는 자부심을 잊지 않고 있는 듯 의연한 모습이다. 검은 콜타르가 바래지고 드러나는 판자목의 속 살결을 감추지도 못하는 소금창고가 나긋나긋 들려주는 소금의 이야기에 마음 한쪽이 강한 햇빛이 스며드는 것처럼 자릿해진다. 

 

거칠 것 없는 바다를 마음껏 유영하던 바닷물 한 움큼이 어느 날 염전에 갇히고 만다. 갇힌 바닷물은 더 이상 탈출을 꿈꾸지 않는다. 바람 한 점 없는 뜨거운 여름날의 고통을 참아낸다.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바닷물은 그렇게 햇볕에 졸아들고 제 몸을 말리며 영롱한 하얀 결정체로 태어난다. 얼마나 고통스러운 삶의 과정인가. 그 결정체들을 염부는 끌어 모아 산을 만들어 소금창고에 보관한다. 

 

소금의 속성은 고요함이라고 한다. 바닷물을 가둔 후, 바람이라도 세게 불면 염전이 흔들려 쓴 맛의 소금이 나온다고 한다. 바람이 없는 뜨거운 여름 어느 날부터 20 여 일 동안 바다의 짠맛을 취하고 햇볕에 향기를 품는 조화의 고요함이 영글어 소금으로 된단다. 고요함 속에서 빚어진 소금의 맛은 짜다. 맛의 근원인 짠맛은 다른 모든 것들이 제 맛을 지닐 수 있게 한다. 

 

고요하지 못하고 온갖 바람에 흔들리며 살아온 인생에도 쓴 맛이 담아있을까. 바닷물이 소금을 탄생시키기까지 고통을 감수하듯 인생의 쓴맛을 감내하며 자신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소금 같은 존재로 아름답게 살아온, 꿈과 희망을 살려주는 짠맛을 지닌 인생의 이야기를 만난 것은 우연이었다.

 

큰집이 김장 담그는 날이면 나는 빈 김치통을 들고 가서 도와주는 척하였다. 배추 켜켜이 고춧가루 양념을 발라 통에 넣는 규칙적인 그이의 손길은 익숙함이 배어 있었다. 그이의 김치 담그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라고 칭찬하자 그이는 대뜸 ‘이 노릇을 30여 년을 했어요.’ 하신다. 나는 숨을 훅 들이쉬며 말없이 그이의 말이 듣고 싶어졌다. 무슨 사연일까. 30여 년 전 그이의 남편이 뇌졸중으로 쓰러졌다고 한다. 그 후부터 지금까지 그녀는 남편을 돌보며 네 아이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 되었단다. 

 

딱히 가진 재주라곤 없었단다. 먹고살아야 했기에 제일 많이 했던 일, 음식을 만들어 파는 일을 했다고 한다. 그이의 착한 심성을 도우셨던 것일까. 몸은 힘들었지만 장사가 잘 되어 아이들을 무난히 가르칠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지금은 오늘처럼 자기를 잊지 않고 찾아주는 분들께 찾아가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 일도 자기를 잘 아는 분들이 찾아서 알려주고 하시기에 언제나 감사의 마음을 갖고 살아간다고 하신다. 그이의 목소리 사이로 초겨울 바람 한 줄기가 스친다. 

 

옆에서 가만히 이야기를 듣노라니 소금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마음 한 끝이 자릿해진다. 그 누구도 찾는 이 없는 소금창고의 풍경이 내 마음에 젖어들듯 그이의 이야기가 내 마음을 적신다. 막연한 무언가를 기다리며 자신의 모든 것을 졸이며 지나온 세월동안 그이는 무엇을 남겼을까. 자신의 짠맛으로 가족 모두에게 살아갈 희망의 맛을 뿌려주신 것이다. 자신의 삶을 거부하지 않고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는 것만큼 아름다운 것이 또 있을까. 그이의 익숙한 손놀림이 소금결정체처럼 아름답다. 

 

 

▲ 소금창고를 찾아가는 길

 

 

 

 

 

▲ 폐허가 된 소금창고

 

 

 

 

▲ 폐염전에 자라고 있는 칠면초

 

 

 

#. 이곳의 염전은 옥구염전이었는데 새만금방조제 건설과함께

바닷물 유입이 안 되어 폐염전이 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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