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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맘의 글방

고고함으로 당참을 채운 꽃

물소리~~^ 2012. 3. 26. 15:14

 

 

 

 

무언가를 알고 있다 함은 때론 자발 맞은 행동을 자아내기도 한다. 올 봄의 내가 그러하다. 유난히 꽃이 고픈 마음이 일면서 지금쯤 무슨 꽃이 필 텐데 하면서 조바심을 가지고 찾아 나서곤 한다. 지난 일요일에도 그러했다. 수목원의 풍년화와 영춘화가 피었을 거라는 믿음만으로 40여분을 달려 수목원을 찾았지만, 아뿔싸 일요일인지라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좀처럼 시간 내기 어려움을 뚫고 나간 길이 어찌나 허전하던지…

   

가까운 화원을 찾아 나섰다. 그곳에는 올망졸망 많은 꽃들이 제각각의 예쁨을 뽐내며 누군가에게 선택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많은 꽃들 중 우리 뒷산에 피어나는 꽃들보다 더 예쁜 꽃은 보이지 않았다. 시들한 마음으로 돌아서려다 작은 화분에 담겨있는 수선화와 튤립을 사 가지고 와서 분갈이 한 후, 사무실 빈 공간에 놓았더니 금세 환해졌다. 봄의 한 자락이 사무실에 찾아 온 듯싶었다. 풍경을 기다리기 보다는 내가 풍경 속으로 들어가면 나 또한 풍경이 되듯, 봄을 그렇게 만들어 보았다.

   

분갈이 해 준 꽃들이 무럭무럭 자라면서 꽃을 피우기 시작하였다. 가까이서 하루하루 다르게 변하는 그들을 바라보노라니 작은 기쁨이 차오른다. 유독 마음 끌리는 것이 수선화였다. 가녀린 줄기를 쑥쑥 올리는 폼이나 고개를 살짝 돌려 피어나는 수선화의 노랑이 참으로 예쁘다. 땅속에서 뿌리로 긴 시간을 보낸 식물은 흰 색이나 노란 색을 띤다고 한다. 그렇다면 수선화도 알뿌리로 겨울을 났을 터이니 저렇게 노랑으로 피어났을까. 참으로 정직한 수선화다.

   

옆으로 살짝 고개를 돌리고도 오롯이 나뿐이요 하듯 피어난 모습이 참으로 예쁘다. 추운 겨울을 지내느라 저리도 소박하면서도 고고한 모습일까. 뚜렷하지 않은 먼 기억 속에 존재하는 사물을 만나면 참으로 애틋한 마음이 든다. 딱히 무엇이라 말 할 수 없는 귀하디귀한 느낌이 있기에 정겨운 것들이 그리워지는 것일까. 바라보기만 해도 먼 기억을 헤집고 나를 끌어들이는 정취가 물씬 풍겨오곤 한다.

  

장독대 한 쪽에서 만난 수선화. 그 옛날 자취집 화단에 피어난 수선화들이 생생하게 떠오르면 괜한 다정함이 정겹게 차오른다. 소박한 곳에서도 수수함으로 눈길을 끄는 수선화는 꽃잎사이로 부관이라 부르는 노란 꽃술을 당당하게 피워 올린다. 고개를 살짝 숙인듯하지만 외려 더 꼿꼿한 부관의 모습은 참으로 고고하다. 그 고고함이 있어서일까. 뭇 사람들은 시로, 가곡으로, 그림으로 수선화를 짝사랑한다. 수선화의 꽃말은 자기사랑 이란다. 이는 흔히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와 연관 지어 회자되기 때문에 우리와는 별 상관이 없었던 꽃이라 여기지만 우리에게도 깊은 인연이 있는 꽃이다.

  

추사 김정희와 수선화는 각별한 사이다. 추사는 아버지를 따라 연경에 가서 처음 수선화를 보고 감동한 후, 진실로 아끼고 사랑한 꽃 이었다고 한다. 추사가 남긴 그림 중 '몽당붓으로 아무렇게나 그렸다'는 평을 받은, 어딘지 쓸쓸한 분위기가 서려있는 수선화 그림 '수선화부(水仙花賦)'가 있다.

 

추사 나이 55세에 유배지 제주도에 와 보니 수선화가 지천으로 피어 있었단다. 하지만 농부들은 이 예쁜 꽃을 마구 파내기도 하고, 소와 말에게 먹이로 주는 것을 보며 안타까워했다. 제자리가 아니면 잡초라 했거늘, 추사는 버림받는 수선화에 유배지에 온 자신의 처지를 빗대며 수선화를 ‘겨울마음’이라 표현하며 깊은 애정을 표한다. 어쩌면 외로움에서 외로움을 만난 탓일 것이다. 더구나 그토록 좋아하던 꽃이 아니던가. 자신의 집안 배경이나 위치로 볼 때 오로지 학문만으로 벼슬길에 오르려 했던 그였다.

  

추사는 스스로 겨울마음이라 표현한 수선화를 마음의 길잡이로 삼았던 것일까. 적막함 속에 홀로 추위를 견디며 그윽한 성품을 잃지 않는 수선화의 인내를 배우며 그는 세한도라는 진품을 완성한다. 수선화처럼 도도하고 당당했던 추사는 유배지에서 수선화의 겸양과 배려의 안목을 배웠다고 후세 사람들은 말한다. 이는 추사의 자신을 아끼는 깊은 마음이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라 생각한다.

   

수선화의 꽃말인 ‘자기사랑’을 깊이 음미해 본다. 흔히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타인도 사랑할 줄 안다고 한다. 하지만 말처럼 쉽게 이룰 수 없음도 사실이다. 우선은 자신이 당당해야하는 조건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수선화처럼 가녀린 꽃대에 핀 꽃이지만 겸손인 듯 고개를 돌리면서도 꼿꼿한 부관은 자신에 찬 모습이다. 그런 당당함이 있기에 제 멋을 자랑할 수 있고 그런 자신을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추사는 그렇게 자신의 당당함을 표현 했을지도 모른다.

  

자신 있는 마음으로 타인을 배려하는 고고함은 저절로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온 생명들이 시작하는 봄이다. 이 봄이 보여주는 그 무엇 하나라도 온전히 바라보며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는 그 어떤 당당함을 세워보고 싶다. 추사의 수선화 사랑을 깨우침에는 어림도 없지만, 작은 화분에서도 마음껏 피어나는 수선화를 바라보며 격물치지를 배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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