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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맘의 글방

내 마음인 것을…

물소리~~^ 2013. 5. 14. 10:24

 

 

 

 

 

 

   중학교 미술시간, 선생님께서 준비해간 8절지 도화지를 반으로 접으라 하셨다. 접힌 한 쪽에 본인이 좋아하는 색 여러 개의 물감을 짜 넣으라 하셨다. 다시 접힌 부분을 접고서 마음대로 손으로 문지르라고 하시더니 그만! 하시며 우리들은 동작을 멈추게 하셨다. 접힌 부분을 다시 펴 보라 하셨다. 그 순간 나는 놀라움을 느꼈다. 그 안에는 호랑나비 한 마리가 날개를 펴고 있었던 것이다. 데칼코마니를 나는 그렇게 배웠다. 조물주는 5월의 모든 산을 그렇게 데칼코마니 기법으로 빚어내고 계신다. 펼쳐진 산야는 내 상상의 나비처럼 화려하다.

 

지난 밤 황사 가득한 비는 먼지잼으로 그치니 내 차는 노랑 점박이가 되어 버렸다. 께름칙하다. 그래도 산을 바라보는 마음은 상쾌하기 그지없다. 조금의 비였지만 초목들은 열심히 제 몸을 닦고 있다. 일체의 미혹을 벗어나 여유로우니 제 빛들이 저절로 스미어 나오고 있다. 요즈음은 산 색깔이 가장 아름다운 때이다. 산등성을 바라보노라면 참으로 단정하고 단아함을 느낀다. 내 마음에도 연둣빛이 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색깔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그 자체에서 발하는 빛만으로도 충분한 특색을 지니고 있지만, 여럿이 어울려 있을 때 서로를 견제하며, 혹은 동반하는 마음 빛으로 조화를 이룰 때 더없이 아름답다. 지금 산의 모든 것들은 제 빛들을 조화롭게 빚어내고 있다.

 

숲길을 걸으며 내 눈높이의 초목들을 바라보노라면 그 어느 것 하나 예쁘지 않은 것이 없다. 땅을 바라보며 피우는 꽃 대신 때죽나무 순은 씩씩하게 하늘을 향해 피워낸다. 팥배나무 잎은 세세한 줄기를 선명히 보이며 윤기를 자랑한다. 꽃 떨어진 진달래는 부지런히, 조심스럽게 꽃 진 자리에 잎을 피운다. 이렇듯 가까이 바라보는 곳에서는 그들이 지닌 색깔과 모습만 보일 뿐, 옆 친구들과의 조화로움은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직 그들 개체의 아름다움만 바라 볼 뿐이다.

 

무언가를 바라볼 적에, 가까이 보다는 멀리서 바라볼 때에 그 전체를 볼 수 있어 더욱 아름다움을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오늘처럼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산 전체의 풍경은 그야말로 한 폭의 수채화 같다. 새롭게 피어난 잎들은 시간 차이에 따라 초록의 농도를 다르게 머금고 있다. 여린 새순들이 솟아날 때의 연둣빛도 제각각이다. 산등성 중간 중간 산벚나무의 활짝 핀 꽃은 엷은 분홍빛이다. 초록과 어울리니 더욱 참한 빛을 발한다. 초록은 분홍빛이 있어 더욱 싱그럽고 분홍은 초록이 있어 더욱 화사하다.

 

그들 모습을 하나하나 새기며 바라보노라니 저들 나무들은 각각의 제 빛으로 산을 단청 하고 있다는 느낌이 온다. 그 단청은 이제 막 칠한 화려함이 아닌 어느 정도의 연륜의 결이 드러난 빛바랜 단청으로, 중후하면서도 단아한 모습으로 서있는 고즈넉한 산사의 모습인 듯싶다. 산사에 단청을 하는 까닭은 첫째는 건물을 아름답게 하기 위함이고, 둘째는 건물자재를 보호함이라 한다. 또 하나는 주술적인 의미로 나쁜 기운을 물리치기 위함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지금 저 산의 초목들도 스스로의 색으로 온 산을 아름답게 꾸미고 있다. 자신들 몸으로 생식작용을 하며 숲을 지키며 보호하고 있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에게 해를 주는 것들에 방어하는 향을 내뿜으며 나쁜 기운을 물리치고 있다. 그 향은 우리 인간들에게도 아주 좋은 치료효과로써 우리 몸의 나쁜 기운을 물리쳐 주고 있음이다. 이렇듯 산의 살아있는 것들은 제 빛으로 산을 단청하고 있다.

 

나는 어떠한가. 내 몸은 통째로 헛것이지 않던가. 살아가며 만나는 번뇌들이 수시로 찾아들어 나를 뒤 흔든 적이 한 두 번 이 아니다. 그때그때 찾아든 희로애락의 감정들을 색으로 비유한다면 분홍, 노랑, 빨강, 청색은 물론 이리저리 엉클어진 갖가지 색도 있을 것이다. 그런 감정들을 겪었기에 더욱 나를 지킬 수 있었고 그 감정들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참아도 왔던 것일 것이다. 행여 그 어느 하나의 감정에 빠졌다 할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최선을 다하는 마음으로 노력하는 나이기를 소망해 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 색들이 나를 단청 시키고 있다고 믿고 싶다. 단청된 나는 아름답기도 하고, 나를 지킬 수도 있고, 최소한 나의 아이들에게만큼은 나쁜 기운을 막아주는 사람이고 싶다. 나를 멀리서 바라볼 적에 그 마음들이 모여 있는 내 마음 빛이 무지개빛깔 이기를 소망해본다. 이 마음조차 미혹에 빠진 마음일까? 꽃피운 적 없고, 연둣빛을 올린일 하나 없이 마음에 욕심을 부리노라니 아주 많이 미안하다. 하지만 난 이미 산등성의 나무 사이에 나를 끼워 놓고 있다. 어찌하랴 내 마음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