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들의 연초록이 마음껏 재롱을 피우는 참 예쁜 계절에 난 아들의 선물을 받았다. 아이의 마음이 오물오물 피어나는 연두잎처럼 조금은 서툰 예쁨으로 전해온다. ‘베를린 필하모닉 스트링 콰르텟’ 이라는 다소 낯선 제목의 연주회 티켓이었다. 스트링 콰르텟이란 현악 4중주다. 4명의 현악기 연주자들이 한 팀을 이루어 멋진 호흡으로 연주를 하는 것이라면 이해가 될까. 그에 베를린 필하모닉이라는 유명세에 더해지는 세계 최정상의 현악 사중단을 만난다는 호기심과 궁금함이 더해지는 것이지 솔직히 그리 많이 친숙한 것은 아니다.
넉넉한 시간을 두고 찾은 광주문화예술회관의 겉모습은 오래된 건축임을 보여 주었다 그 세월의 힘을 쌓은 덕일까. 주변의 경관은 아주 훌륭했다. 회관을 아우르고 있는 나무들의 생기가 참으로 싱그러우니 아마도 이곳에서 예술의 향기를 많이 보고 들은 까닭일 것만 같았다.
연주가 시작되며 등장하는 4명의 연주자들은 지긋한 세월을 껴안은 모습이었다. 프로필을 보니 최연소자가 1959년생 이고 최연장자가 1950년생 이었다. 이 콰르텟을 이끄는 바이올리스트 다니엘스타브라바는 현재까지 28년 간 베를린 필하모닉의 수석악장을 지내고 있는 분이라 시니 가히 그 전문성에 깊은 경외감을 느낀다.
프로그램의 선전문에는 ‘이름만으로도 감동을 예감한다!’ 라고 적혀 있다. 그 문구를 대하는 순간, 아! 곡의 친숙함을 만나기보다는 또 다른 감동을 느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얼마만큼의 연습과 노력으로 오늘을 이루었는지... 사뭇 그들의 연주가 기대되는 순간!
과연 서로 눈빛만으로 호흡을 맞추며 연주를 시작한다. 연주곡은 하이든, 멘델스존, 베토벤의 현악 4중주였다. 솔직히 작곡가들의 이름보다도 더 어려운 곡명들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클래식을 대하게되면 자칫 지루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귀로만 듣는 경우와는 달리 눈으로 직접 연주자들의 표정을 바라보며 곡을 듣노라면 저절로 감동이 전해진다. 온 몸으로 연주하는 연주자들은 그들 스스로 곡에 몰입되어 머리에서 발끝까지 리듬이 되어 함께 움직인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오늘의 관객들 수준은 상당히 높은 편일까? 악장간의 박수소리가 한 번도 나오지 않아 참으로 다행스러웠다.
4명의 연주자들은 곡에 대한 아무런 준비 없는 나의 무식함을 익히 알고 있는 듯, 혼신의 힘으로 연주하며 내 마음 길을 찾아 들어온다. 들은 적 없어도 한 자락의 곡조라도 나에게 울림이 되어 전해지면 나는 그 자리에 앉아 있는 보람과 가치를 선물 받는 것이다. 한 곡이 끝났을 때의 뚝 멈추는 동작 끝에 길게 이어지는 여운은 정말 한없는 충만함을 안겨준다.
연주자들은 한 순간의 찰나까지도 잡아내는 힘이 있다. 순간순간 전개되는 길고 짧고 혹은 점찍듯 현을 튕기는 순간에도 소홀함이 없다. 그 순간들이 모여 긴 음이 되고, 한 악장이 되고 음악이 탄생되는 것 아닐까. 내가 지금 이 곡을 알고 모르고가 아닌, 음이 음향이 되어 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의 위대함을 느끼는 시간이기에 참여하고 싶은 것이다.
연주곡들에서 긴장감을 느꼈는데 우레와 같은 박수에 보답하는 마지막 앵콜곡으로 우리의 가곡 ‘그리운 금강산’을 연주해 주었다. 여기저기서 순간의 짧은 탄성이 나왔다. 얼마나 아름답고 편안하고 좋은지… 긴장을 풀어주는 우리 것의 부드러움도 함께 자랑스러웠다. 폭풍처럼 쏟아지는 박수소리가 마냥 흐뭇했다. 깊은 인사로 답하며 떠나는, 세계적인 현악 연주자들을 만나볼 수 있었던 참으로 뿌듯한 시간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 내내 여운에 잠긴 행복함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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