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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비 내리는 숲속에서

물소리~~^ 2013. 5. 30. 10:06

 

 

 

 

 

 

 

 

   중학교 2학년 영어시간이었다. 선생님이 나를 지목하더니 한 문장을 읽으라 하셨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자리에서 일어서기는 했지만 끝내 그 문장을 읽지 않았었다. 선생님께서는 놀라운 눈빛으로 끝까지 읽기를 시키셨고 난 끝내 읽지 않고 손바닥을 맞은 기억이 난다. 단순한 반항이었을까? 내 앞에 읽은 아이가 발음을 틀리게 하여 읽은 까닭으로 다시 읽게 한 경우인데 난 딱히 내세울 이유 없이 읽기를 거부했던 마음이 떠오르는 오늘,

 

심중의 말 한마디를 해 놓고 낯설고 생소함에 문득 읽기를 거부했던 그 옛날의 마음이 떠오른다. 그 날 그 영어문장을 읽었었다면 오늘처럼 이렇게 어색한 마음이었을까. 오늘 내가 했던 낯선 말에 가슴이 멍해지면서 두서없어지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차 한 잔을 들고 베란다에 선다.

 

비에 젖은 산 빛이 참으로 곱다. 토요일 오후라는 시간이 안겨주는 여유로움은 산 빛의 무대 위에 올라 선 온갖 나의 상념들을 춤추게 한다. 손안에 든 찻잔에까지 녹아든 산 빛이 내 속 뜰을 적시며 나를 부른다. 그 유혹을 어쩌지 못하고 기어이 우산을 찾아들고 숲 속을 찾아드니 비마저 초록빛이 되어 내린다. 고요한 숲에서 살짝 이는 바람은 움직임이 없는 안개를 부추긴다. 바람에 일렁이는 안개는 분무기처럼 초록비를 뿜어내며 산자락을 차츰 차츰 지우고 있다.

 

언제나 그 자리에 서서 변하는 날씨 따라, 계절 따라 순응하는 나무들은 말이 없다. 오늘처럼 비 내리는 날의 정취에 맞게 제 몸을 움직이며 바라보는 나로 하여금 저절로 젖어들게 하는 말없음이 참으로 고요하다. 늦은 오후, 조용히 내려앉는 숲 속 이내에 내 옷이 물들고 나도 어느새 숲의 식구가 된다. 산 가득한 짙푸름이 내 안으로 들어온다. 초록 잎 새 위에 후드득 떨어지는 빗방울들이 아주 조심스럽다. 연한 잎을 다칠까 염려하는 몸짓으로 보이는 까닭은 아마도 내 마음안의 조심스러운 생각 때문일 것이다. 

 

차츰 짙어지는 안개에 지워지는 풍경 속을 보금자리 삼아 참새 두 마리가 비에 아랑곳 하지 않고 팥배나무 위를 포르릉 날아다닌다. 둘이 한꺼번에 함께 날아오르는 것이 아니라 한 마리가 짹짹 포르릉 날아가면, 남은 한 마리가 뒤따라 얼른 짹짹하며 포르릉 따라 날아가곤 한다. 멀리도 높이도 아닌 내 눈앞에서의 그들의 유희를 바라보노라니 가만히 미소가 번진다. 저들은 분명 서로 말을 주고받으며 의사를 소통하고 있음이다. 서로가 심중의 말을 정확하게 표현 하고 있으니 저들의 거침없는 행동도 거리낌 없는 자연스러움으로 보인다. 새 울음소리에도 그들만이 지닌 심성이 있음을 문득 깨닫는다. 

 

그 옛날 영어문장 읽기를 거부했던 마음이나, 오늘 한 마디 말에 낯설어하는 나의 마음은 길들여지지 않은 부자연스러움 때문이었을까. 새들의 거리낌 없는 밝은 지저귐이 내 마음을 가득 채운다.

 

잔잔히 내리는 빗물이 어느새 오솔길 한 곳에 모여 작은 물웅덩이를 이루고 있다. 고인 물은 어느새 스스로 정화된 맑음으로 하늘과 숲의 나무들을 비추고 있다. 작은 웅덩이에 고인 물은 금방이라도 넘쳐나겠지만 고만고만한 만큼 그대로이다. 연신 떨어지는 빗방울들을 받아들이는 순간, 작은 파문으로 번지며 제 몫만큼만 남겨 두는 까닭이리라. 비 오는 날에만 만들어지는 작은 웅덩이는 이 숲속에서 오늘 만난 새로움이다. 비가 그치면 사라지는 한 순간의 모습일 뿐이다. 물웅덩이의 작은 파문을 바라보며 안분지족을 떠올려본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오솔길의 작은 웅덩이처럼 참으로 정갈하고 맑은 마음을 뜻밖에 만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뜻밖에 만난 한 순간의 좋음에 방심하고 마음을 넘치게 한다면 어쩌면 후회의 시간으로 남겨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저 작은 웅덩이가 빗방울의 파문을 아름답게 번질 수 있음은 자신이 받아들일 만큼 만 받아들이며 담박함을 즐길 줄 알기 때문이다. 비 그치면 사라지고 마는 자신의 처지이지만 지금의 제 분수를 편안히 여기는 마음에서 비롯한 것일 것이다. 

 

오늘 내 한마디 말에 이토록 마음 쓰이고 어색한 까닭은 분명 내 분수에 넘친 행동에서 비롯된 것일 것이다. 소중함을 잘 간수하고 아껴야 함을 지나쳐 내 스스로에게 좋은 평가를 남기고 싶은 욕심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산속을 혼자 거닐다보면 생각은 투명해진다. 오늘 내 스스로 낯설어 두서없었던 마음으로 찾은 초록빛 비 내리는 숲속에서 욕심을 욕심으로 알게 해 준 선물을 나는 한아름 받았다. 자연은 이토록 늘 넘치도록 고마운 존재이다.  (10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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