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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맘의 글방

본질보다 아름다운 모습

물소리~~^ 2013. 4. 18. 17:49

 

 

 

 

 

 

 

 

   팔레트의 물감들이 물을 만나면 조금씩 제 몸을 풀어내며 본연의 빛을 잃어가며 새로움을 창조한다. 곡우에 찾아온 봄비에 숲속의 나무들이 제각각 지닌 빛을 풀어내며 아름다움을 뿜어내는 요즈음, 한 눈에 들어오는 산등성에는 질감 좋은 물감들이 감겨 있다. 좋은 질감의 부드러움이 걷는 내 몸에 저절로 스며든다. 아마도 봄 풍경들이 제 흥에 겨워 나를 채색하고 있음이니 새로움에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내 발걸음이 뚝 멈춰 선다. 채 밝지 않은 오솔길 저 만큼에 무언가가 오뚝하니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들 고양이었다. 어쩌지, 비켜줘야 지나갈 수 있을 텐데… 고양이도 봄에 취했나? 가만히 앉아 있는 폼이 내 눈치를 보고 있는 것 같다. 손에 들고 있는 나무스틱으로 땅을 쿡 한번 치니 그 소리에 고양이는 숲속으로 도망친다. 이럴 때 나무스틱은 나에게 일등공신이다. 새벽 산책 시 나무스틱을 들고 다닌 지 어언 일 년이 되었다.

 

책을 읽다 스틱을 짚고 다니면 관절의 부담도 줄어들고 운동효과도 더 크다는 힌트를 얻었던 것이다. 금속스틱의 어울리지 않는 소리 때문에 나무스틱을 생각했고 숲에서 쉽게 구한 것을 만들어 들고 다녔던 것이다. 운동효과를 기대했던 처음 의도와는 달리 언제부터인가 나의 가장 친한 길동무가 되어준 나무스틱. 비 내리는 날, 우산을 들어야 하는 까닭에 어쩔 수 없이 함께 할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늘 함께했다.

 

오늘 아침 문득 들 고양이를 도망가게 해 준 나무스틱을 바라보다 나 혼자 흠칫 놀라는 마음이 되었다. 나무스틱이 약간 뒤틀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구나! 일 년 이라는 세월동안 그나마 지니고 있던 수분이 증발하여 휘어지면서 길이가 짧아져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나의 동반자 노릇을 하느라 정말 수고했다는 말을 건네면서 안쓰러운 마음으로 바라본다.

 

이른 봄, 땅 속을 비집고 솟아오르는 꽃들을 찾아 나서면 나무스틱은 조심스레 앞장을 서 주면서 낙엽들을 헤쳐주기도 하였다. 비가 많이 내린 여름 날, 비에 쓸려 내려온 갈잎들이 오솔길 중간 중간에 걸쳐 있을 때 그들을 제자리로 보내준 것도 나무스틱 이였다. 눈이 많이 내린 날, 나무들이 무거운 눈을 이고서 힘겹게 서 있을 때 나무스틱으로 나무 가지를 한번 탁 쳐주면 나무들은 눈을 털어내며 휴! 한 숨 소리와 함께 몸을 일으켜 세우곤 하였다.

 

오솔길을 걷다 발이 삐끗 했을 때, 얼른 내 몸의 중심을 잡아 준 것도 나무스틱 이였다. 막 잠자리에서 일어나 찌뿌듯한 몸을 나무스틱에 의지해 몸을 돌리기도, 팔을 올리기도 하고나면 한결 가뿐한 산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무스틱은 이렇게 내 몸과 마음을 위해 존재했다. 이렇듯 내가 의도했던 처음의 의미와 다르게 나무스틱은 나의 동반자가 되어주면서 산책길의 나를 허전하지 않게 해 주었던 것이다.

 

아침 식탁에 앉아 문득 나무스틱과 같은 모습의 젓가락에 눈길이 가면서 젓가락을 쥔 손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음식을 잡기위해 엄지와 검지로 젓가락을 잡아주고 중지를 사이에 넣어 젓가락을 벌리고 오므리게 해 주는 것이 젓가락질이다. 양쪽 두개 모두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는 가만히 있고 나머지 한쪽이 움직이면서 음식을 집어주는 것이다.

 

음식을 집어주는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기위해 젓가락에 주어지는 힘의 분배는 분명 머리에서 나누어 주는 것일 것이다. 머리에서 지시하는 힘으로 젓가락이라는 임무에 충실 한다고 할 수 있지만 젓가락이 하는 일은 또 있다. 나무스틱이 내 마음과 교감을 나누며 걷듯, 젓가락도 분명 마음으로 행하는 경우가 있다는 생각이 스친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이나 연인에게 맛있는 음식을 골라주는 젓가락에는 마음이 실려 있음이 분명하다. 이는 음식을 집는 행위라는 기계적인 본연의 임무를 떠나 인간적으로 감정을 주고받을 수 있는 행위도 지니고 있음을 깊은 울림으로 전해준다.

 

내가 즐겨 지니고 다니던 나무스틱이나 늘 식탁에서 대하는 젓가락에는 이렇듯 본질보다도 깊은 따뜻함이 담겨있듯 우리 사람에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보이는 모습에만 국한 되는 것이 아닌, 때론 보이는 정 반대의 부드러움 혹은 강함을 지닐 수 있다고 본다. 그런 면을 뜻하지 않게 보이거나 보았을 때의 느낌은 실망 아니면 놀라움일 것이다.

 

내가 지닌 모습에서 벗어난 그 어떤 모습으로 보여 졌다는 생각에 절망적인 생각이 든 적 있다. 본연의 모습에서 벗어난 생각을 하고 있으면서, 본연의 모습만 강조하는 생각의 틀에 갇혀 있었기에 더 절망적이었을 것이다. 본시의 모습을 떠나 상대와 내가 공통적으로 내면에 지닌 마음의 틀을 찾아 교감할 수 있었다면 훨씬 편안하고 따뜻했을 것이다. 나무스틱이나 젓가락이 땅을 짚거나 음식을 집어주는 본질보다는, 아름다운 정을 나눌 수 있는 매개체가 되고 있다는 점에 더 후한 가치를 부여해 주고 싶다. 그 가치에 나의 지나친 우를 물감 풀듯 풀어 새롭게 태어나 보고자 한다.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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