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사 능허교의 엽전 (사진출처 - 인터넷 검색)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작정했던 마음 그대로 실천한 일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실천하지 못하고서도 이러저러한 이유를 대며 이루지 못함을 합리화 시킨 경우가 어디 한두 번 일까. 특히나 물질적인 것에 쓰일 곳을 정해 두고도 상황이 바뀌면 처음 의도와는 다르게 마음잡아 가는 그런 몰염치한 경우는 없었을까를 생각해 보는 요즈음이다.
지난 어머님 생신을 맞이해 친정식구들이 함께 휴가라기보다는 여행을 즐기는 시간을 가졌었다. 한꺼번에 많은 식구들이 여러 날 움직이다보면 많은 비용이 드는 건 당연한 일. 하여 나는 나름대로 얼마간을 준비해 가지고 갔었다. 서로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막상 하루 늦게 참석해 보니 어머니께서 모든 비용을 부담하셨다고 한다. 어머니께서는 아버지의 연금으로 생활하고 계신다. 왜 그러셨냐고 묻는 나에게 어머님이 말씀 하시기를 아버지께서 남겨주신 돈이니 자식들을 위해 쓰겠다고 말씀 하신다.
나는 내가 준비해간 비용에서 내 개인적으로 사용한 조금을 덜하고 고스란히 남겨온 경우가 되었다. 사람의 욕심이란 그런 것이다. 돌아오는 길, 아, 이 돈으로 무얼 하지? 하면서 혼자만의 상상에 빠지기도 하면서 넉넉한 마음을 가지곤 했으니… 하지만 나만의 희망은 이미 틀어져 있었음을 나는 알지 못했다.
하루 저녁을 비우고 집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남편은 토요일에 업무상 일정이 있어 참가하지 못하고 나 혼자만 다녀왔던 것이다. 단 한 끼도 국 없으면 식사를 못하는 남편인지라 국을 끓여 놓고 한 끼 정도만 혼자 해결하라고 당부를 하고 갔었다.
내가 떠난 날, 저녁식사를 하려고 남편은 국 냄비를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놓고서는 걸려온 전화를 받고 그냥 나갔다 왔다고 한다. 세상에~~ 우선 그나마 일찍 들어와서 다행이라고 말을 해 놓았지만, 나로서는 일단 위급한 상황이 아니니, 지금 현재 벌여진 상태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냄비는 새까맣게 타 버렸던 것이다. 그 냄비를 즉각 주방에서 치웠으면 좋았으련만 내가 돌아오는 시간까지 근 10시간 가까이 주방에 그대로 놓아두었으니 주방 가득 냄새가 고여 있었다.
남편이 한 일은 다 타버린 냄비와 비슷한 다른 냄비를 사다 둔 일이었다. 화재가 날 뻔했던 위험보다는 타 버린 냄비를 걱정했던 마음에 웃음이 나왔지만 뒤처리는 고스란히 내 몫이었다. 냄새가 배였을 만한 커튼이며 식탁보, 방석. 소파 덮개까지 모조리 세탁을 하였다. 아무래도 싱크대 주변이 께름칙하니 닦고 하나하나 꺼내 씻느라 일주일을 소비했다. 렌지후드 전체를 교환해 버렸다. 더운 날씨에 퇴근하면 매일 밤 10시 정도까지 주방을 뒤집어 놓느라 기진하기조차 했다.
이렇게 어머니에게서 남겨온 비용을 고스란히 투자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이에 나는 엉뚱한 생각을 해 보았다. 행여 내가 호용죄의 죄 값을 치루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었다. 아니 분명 그러했다. 내가 준비해간 돈이 남았음에 무얼 할까를 궁리하며 좋아했던 것이다. 그 좋아한 마음에 죄가 내려져 있었으니.. 주방을 정리하느라 육체적인 고단함과 이것저것 새로 마련해야 했던 비용들로 모두 나가고 말았던 것이다.
호용죄는 불가에서 통용되는 말이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받은 시주를 그에 해당하는 것에만 사용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지 못하고 다른 곳에 사용하면 호용죄에 해당한다고 한다. 실제 순천 송광사의 300여년의 역사를 지닌 능허교 아래에는 엽전 세 닢이 걸려 있다. 그 까닭은 능허교를 짓기 위해 신도들에게서 시주를 받았는데 다리를 다 짓고 보니 엽전 3개가 남았다고 한다. 그 돈을 다른 데에 사용할 수 없어 철사에 꿰어 그렇게 다리 아래에 매달아 놓았던 것이다. 남은 돈을 목적 외에 사용하면 무서운 죄가 되는 무서운 돈이라는 것을 알고서 욕심 내지 않았음이다. 옛 스님들의 곧은 정신을 담고 있는 엽전 세 닢이다.
나는 불교신자가 아니다. 하지만 호용죄에는 살아가며 한 번씩 음미해 볼 귀한 뜻이 담겨 있다. 모든 것은 마음으로부터이다. 그 모든 마음을 실천하는 일이 참으로 어렵다. 이왕 준비해간 비용이었으니 식구들을 위해 사용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이라는 마음 한 자락이 있었기에 이렇게 스스로 나를 자책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온갖 명분으로 돈을 받고, 감추고, 쓰느라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내리치는 죽비소리라 하면 지나침이 있을까. 덕분에 조금은 깔끔해진 주방에 마음이 개운해지니 호용죄를 치르느라 고생한 마음이 어느새 싹 가셔진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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