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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맘의 글방

유년은 아름답다

물소리~~^ 2012. 8. 19. 21:38

 

 

 

 

 

 

 

 

 

   우리가 그 길로 들어선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어디를 가든 길을 잘 아는 남편이기에 네비의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돌아오는 길, 이정표를 보는 순간, 그쪽 길로 가자는 말이 똑같이 나왔다. 갑자기 마음이 두근대며 머언 그리움 같은 것에 바짝 긴장감이 돌며 정신이 확 밝아진다.

 

7월 중순경부터 일에 쫓기는 무력감으로 몸이 무거워짐에 곧잘 나태함에 빠지곤 했다. 냄비를 태운 일로 온 주방을 뒤집어야 했고 연이어 닥친 바쁜 업무에 정신이 없었다. 그 와중에 병원에 입원하신 형님대신에 집안 제사를 치르느라 더위와 함께 씨름하면서 땀으로 범벅되는 일상들이었다. 그런데다 어젯밤에는 올림픽 리듬체조경기를 보느라 밤 12시가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일요일인 오늘 아침 눈을 뜨니 6시 30분, 평소보다 늦은 식탁에서 무심코 ‘지금 담양 소쇄원의 배롱나무꽃이 한창 예쁠 텐데…' 하는 푸념을 했다. 남편은 오늘 일요일의 일정을 다 무시하고 다녀오자고 한다. 소쇄원의 풍경은 언제 보아도 명쾌하다. 소쇄원에서 나와 조금 떨어진 식영정을 돌아본 후, 남편은 이왕 이렇게 나왔으니 강천산에 들렸다 가자한다. 한참을 달려 강천산에 도착하여 맨발로 걸을 수 있도록 잘 조성해 놓은 길을 1시간여를 걸었다. 계곡에서 발을 씻고 나와 다시 차를 타고 돌아오면서 그렇게 우연한 길로 들어선 우리였다.

 

이정표에 적힌 지명을 찾아 달리니 어디쯤에서 부터인가 물줄기가 보인다. 섬진강 물줄기였다. 차창에서 눈을 떼지 않고 풍경을 바라보던 나는 그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아. 저기다! 저 다리가 보인다! 하니 남편은 무슨 일이냐고 한다. 아무튼 저 높은 다리 위를 건너보자 하였다. 분명 그 다리가 맞았다. 내 유년의 추억이 가득 어린 그 다리였다.

 

우리가 지나는 다리 보다 훨씬 낮은 곳에 있는 다리는 상판이 없이 다리 기둥만 서 있었다. 타원형 모습의 다리 기둥~~ 아, 내 유년의 놀이터였다. 섬진강댐 건설로 수몰되었던 다리가 가뭄으로 수량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모습을 들어 낸 것이다. 차에서 내려 한참을 바라보며 내 유년의 추억들을 건져 보았다.

 

흔히 말하는 유년의 기억이라 함은 몇 살을 기준으로 해야 함인가? 나의 경험으로 유추한다면 딱히 5살 무렵쯤부터일지 모르겠다. 언제인가 읽은 김형경의 ‘사람풍경’ 이란 책에서 작가는 말하기를 정신 분석가들이 말하길 인간정신은 생후 6살까지 95퍼센트가 형성되고 그중 다섯 살까지가 아주 중요하며 그런 의미로 볼 때 우리의 속담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라는 말이 얼마나 정확한가에 놀랍다는 말이 있었다.

 

어머님 말씀에 의하면, 내가 생후 6개월 되던 해에 섬진강변에 위치한, 지금은 섬진강 댐으로 수몰되어 버린 한 조그마한 초등학교로 교감승진 발령을 받으신 아버님을 따라 이사를 하였다고 하신다. 저 다리를 건너면 그 학교가 있었다. 그 후,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7살 봄에 그곳을 떠나 다른 근무지로 가셨으니 나는 정신 분석가들이 말하는 인간정신이 형성된다는 중요한 시기의 생후 6년 모두를 섬진강변에서 보내었다.

 

내가 살아 온 날들 중 짧은 동안의 생활이지만 난 그 어느 기억보다도 그 곳의 기억을 유난히 또렷하게 기억한다. 맑은 강물과 자운영 꽃밭, 그 붉은 꽃의 환영에 마냥 좋아 내 달리며 놀았다.

 

학교 운동장을 빙 둘러 서 있던 벚나무들의 화사함, 벚꽃이 필 무렵이면 하얗게 떨어지는 꽃잎 속에서 소꿉놀이를 하루 종일 했다. 붓처럼 말린 패랭이꽃으로 입술을 그리기도 하였다. 그런데 같이 놀았던 친구들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어렴풋한 실루엣으로 그 아이가 했던 몸동작만 스쳐 지날 뿐이다.

 

강물에서 멱을 감던 일, 코를 막고 물위에 누우면 한참을 둥둥 떠내려 갈 때의 기쁨. 그렇게 누워 있다 일어서면 머리는 올백으로 뒤로 넘어가 있었고 그 모습이 좋아 자꾸 자꾸 물속에 들어가 놀았다. 낚시하러 가시는 아버지 따라 가서는 아버지가 잡아 놓은 물고기를 모두 엎질러 버린 일, 언니와 길을 가다 옹달샘 물을 마시려고 고개를 들이 밀다가 그대로 물속에 빠졌던 일, 섬진강이 범람하면서 우리 부엌까지 물이 들어왔다 빠진 후, 아궁이에서 팔딱거리던 붕어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던 일,

 

이 모든 추억들은 지금 고스란히 내 감성으로 자리하며 나를 키워 주었기에 난 유난히 섬진강을 좋아하고 그 주위의 풍경들에 마음이 기울어진다. 하지만 그 후, 그 곳에 가는 기회는 좀처럼 찾아오지 않고 그 비슷한 풍경들에 마음을 빼앗기며 항상 추억으로만 떠 올리며 살아오고 있었다.

 

아직은 어린 나이에, 섬진강댐이 건설되면서 그 학교가 수몰된다는 소식을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야기 하는 것을 듣고 알았었다. 그 후, 성인이 되어 가끔 그곳 생각이 나면 차라리 내 유년의 고운 추억들이 그대로 예쁘게 묻혀 있어 더 좋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돌리며 살았다. 그곳에서 자란 내 감성이 지금의 내 감성의 근본이 되어주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만날 수가 있었다. 상판이 없어진 다리 위를 걸을 수 없듯, 내 다시 유년으로 돌아갈 수 없지만 그 순수했던 마음은 오늘처럼 나를 기쁘게 해 주고 있었다. 아, 참 좋은 날이었다. 앞으로 남은 날들도 그 때 그 시절의 기억으로 견디어 낼 수 있을 것이다.  (2012.08.12)

 

 

그 다리를 건너 학교에 간 다섯살 무렵의 어느 날

아버지, 어머니, 나, 그리고 남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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