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폭탄이라고 하였다. 우리 고장에 물난리를 낸, 큰 비가 지난 후의 폭염은 가히 살인적이다. 하지만 이 폭염을 마냥 나무라기에는 멋쩍다. 오늘의 햇살만큼은 뭐니 뭐니 해도 큰 비에 어이없게 큰 피해를 당한 집들의 물기 제거에 일등공신이지 않던가.
절정에 오른 더위를 꽃더위라 한단다. 꽃들은 강한 햇살 아래서는 유난히 고운 색을 띄어서란다. 그렇다면 나는? 나 또한 꽃이 되지 말란 법은 없지 않은가. 그 햇살에 맞서고 싶은 꽃마음일까? 일요일 오후 1시 30분, 하루 중 가장 더운 시간에 절정에 오른 더위에 맞서며 산을 오르고 싶어 밖으로 나왔다.
서너 시간 안에 엄청나게 내린 비여서 일까. 일주일이 지났지만 산길은 아직도 축축하다. 여기저기 크고 작은 산사태의 흔적에 놀라움이 크다. “자연은 자애롭지 못해 만물을 하찮게 여긴다.” 라는 장자의 말이 생각난다. 폭우도 폭염도 하찮은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현실이라면 마음으로 견디어 내는 것이 상책인지도 모른다. 맹렬한 햇살을 받으며 산을 오르는 나만의 비법이 있었으니, 이는 보이지 않는 자연의 자애로움이 또한 분명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뜨거운 햇살은 작은 땅 귀퉁이를 일궈 심어놓은 채소들을 쑥쑥 자라게 하고 있었다. 물에 씻을 때조차 찢겨 지기도 하는 연약한 잎들은 어떻게 저리도 당당할까. 그들로부터 씩씩함을 받아 산 초입에 들어서니 여름의 절정에 이른 산은 일망무제 초록이다. 오솔길에 온통 초록그늘이 내려있으니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그랬다. 나는 이 그늘을 자연의 자애로움으로 여기며 한 낮의 산을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나의 오솔길은 오롯이 한 사람만이 걸을 수 있는 좁은 길이다. 오솔길을 만들어 주며 약간 비켜 서 있는 나무들은 내 머리위서 서로 맞닿아 있다. 그렇게 서로의 몸으로 강한 햇살을 받아내는 나뭇잎들의 그림자가 가득 고인 오솔길이다. 그림자가 이루는 그늘 속으로 침잠한 산 속 오솔길이 내 발걸음을 안아주듯 당겨간다.
바람도 벗기지 못하는 옷을 뜨거운 햇살은 벗긴다고 했다. 그렇게도 따가운 햇살이건만, 어찌하여 연하디 연한 나뭇잎을 뚫지 못하고 나뭇잎으로 하여금 그림자를 내리도록 하는가. 아마도 서로간의 약속이 있었을 것이다. 햇살은 광합성의 영양분을 주는 대가로 나무로 하여금 제 빛을 받아 주기를 원하고, 나무는 나뭇잎으로 햇살을 받아내며 오솔길에 그림자 그늘을 내려주고 있는 것이다. 서로 간에 무언의 약속으로 빚어진 그늘은 그대로 경전이요 성경이다. 하여 나는 이 그늘을 보이지 않는 자연의 자애로움이라 깨달았다.
어쨌든 그들은 걷고 있는 나를 위해 그늘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래서일까. 여름 한낮의 산길이지만 무언가 모를 자유스러움과 안온함이 내 몸을 감싸고 있다. 주위의 것들이 나를 위해 무언가를 베풀고 있음을 느낄 때, 내 의식은 슬그머니 깨어나며 나를 돌아보게 한다. 느긋한 내 발걸음이 유독 오솔길과 닿아지는 느낌이니 저절로 마음이 낮아진다.
숲 그늘에서의 느린 걸음은 그동안 빨리 걷느라 지나쳤던 시간들을 만날 수 있는 생각의 시간이다.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달리다가 잠깐씩 쉬어준다고 한다. 영혼이 따라오지 못할 것을 염려해서란다. 오늘처럼 여유로운 마음으로 걸으며 인디언들의 영혼은 무엇일까를 생각할 수 있음은, 나무그늘 아래의 오솔길을 느긋하게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길섶에 무수히 자란 풀들이 제멋대로의 몸짓으로 내 발등을 스치며 아는 체 한다. 새벽에는 이슬로 맞이하지만 한 낮인 지금은 온 몸으로 나를 아는 체 한다. 그들 역시 그늘아래서의 몸짓으로 구수한 옛날이야기들을 아른아른 들려줄 것 같다.
동네어귀 시원한 느티나무 그늘아래에서의 개구쟁이들 함성이 들려오고, 정자에 앉아있는 할아버지들의 헛기침소리가 들려온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매캐한 모깃불 냄새와 함께 걸걸한 장정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그 모습을 집 마루에 걸터앉아 바라보는 한 소녀의 모습도 오버랩 된다. 나무가 있고 그늘이 있어 이루어진 풍경이다. 이런 이야기들과 소리들을 이야기로 구성하면 훨씬 더 구수한 우리들의 추억의 장소에 저장되는 한여름의 모습들 아닌가.
그늘진 곳에서의 여유로움을 그 누군들 싫어할까. 자동차들을 주차할 때에도 그늘을 찾아 나선다. 우리 동요에도 그늘의 노래가 있다. “소나무 떡갈나무 새파란 잎이 산을산을 덮었어요. 나뭇잎 그늘♬~~” 소시 적 나는 이 노래를 무척이나 즐겨 불렀다. 요즈음에도 산을 오르면 곧잘 부르곤 한다.
그뿐인가 이 그늘에 대하여 서양에서는 오페라의 아리아로 예찬하고 있다. 헨델이 작곡한 오페라『크세르세스』에 나오는 아리아 “그리운 나무 그늘이여” 이다. 우리가 라르고라 알고 있는 선율의 원전이다. 주인공 크세르세스가 플라타너스 그늘에서 쉬며 부르는 이 아리아는 "귀엽고 사랑스런 푸른 나무 그늘이 이렇게 감미로웠던 적은 없다." 라는 가사로 되어 있는데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는 나무를 칭찬하는 내용이다.
이 노래들을 흥얼거리노라면 마치 내가 산과 대화를 하는 듯싶은 느낌이 와서 정말 좋기만 하다. 동 서양을 막론하고 어느 곳에서든 각각의 이야기들로 그늘이라는 명분에서 흐트러짐 없는 모습으로 그늘이 주는 아늑함을 차곡차곡 채워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이런 시원함을 안겨주는 그늘이 있기에 나는 한낮의 열기 속에서도 산길을 걸을 수 있었다.
폭우의 어지러움을 내린 자연이지만 폭염으로 결실을 맺게 하는 것도 자연이다. 그 틈새에 만들어진 그늘을 걸을 수 있는 나 역시도 자연의 혜택을 받고 있음이다. 자연으로부터 하찮은 존재로 여김을 받고, 아니 받는다는 것은 모두 우리에 달려있다. 햇살과 나무가 어우러져 이루어 낸 그늘이 있는 산 속 여름 오솔길을 나는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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