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피를 출발하여 2시간 후 테르모필레에 도착했다.
그리스에는 유명한 3대 전투가 있는데
1. 마라톤 전투 (BC 490), 2. 테르모필레 전투 (BC 480), 3. 살라미스 해전(BC 480)이다
모두 기원 전의 전투라서 실전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기록된 역사는 진실만을 말해줄 뿐이니 그리스가 헤쳐 나가야 했던 위상임을 느낄 수도 있었다.
그중 기원전 480년 인류 역사상의 가장 유명한 테르모필레 전투는
‘This is Sparta!’라는 유명한 명대사를 남긴 영화 ‘300’으로 재부각 되었다.
이처럼 2,500년 전의 전투를 기억하는 이유는 단순한 전쟁사라기보다
거대한 물리적인 힘에 지략과 용기로 대처하는 정의로움을 일깨워 주기 때문일 것이다.

이 전쟁은 페르시아가 10만 대군을 앞세워 침입하니
왕 레오니다스 1세가 이끈 1,000명의 그리스 연합군이 테르모필레 계곡으로 나가 맞섰다.
테르모필레는 폭 100m의 한쪽은 산이고 한쪽은 바다인 아주 좁은 협곡이라
일기당천(一騎當千)의 요충이었다.
하지만 이 고장 출신 내통자가 페르시아 군에게 산을 넘는 샛길을 가르쳐 준다.
그리스 연합군 1.000명 중, 300명의 병력은 스파르타 정예군이었다.
레오니다스 왕은 병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300명의 스파르타군과 함께
협곡을 지키며 전원 숭고한 희생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내용이다.
이러한 연유로 이곳은 2500년 동안 사랑과 존경을 받는 전적지(戰跡地)다.
‘항복하면 살려주겠다’라는 회유에 ‘와서 가져가라(Molon Labe)’라고 답한
레오니다스 왕의 기개만큼은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념 장소는 너무 허술했다.
길가에 세워진 동상을 보기 위해 관광차들이 멈추면
우르르 관광객들이 내려와 사진만을 찍고 돌아가는 모습에 씁쓸한 마음이다.

테르모필레(Thermopylae)는 '뜨거운 물이라는 뜻이다.
유황온천이 솟아나는 지형적 특성을 이용한 것으로 실제 유황 온천이 있었다.
유황 냄새를 맡으며 우리는 잠시 계곡 입구에서 온천물에 족욕하는 체험을 했다.
텔포이에서 신전을 둘러보며 20,000보 정도 많이 걸었던 피로감이 풀리는 것 같았다.

우리 역시 동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테르모필레에서 출발했다.
다시 2시간쯤 달리는데 어느 순간 차창 밖으로 기괴한 바위들의 모습이 보인다.
아! 저곳인가 보구나! 우리의 주 목적지인 메타오라였다.
오후 6시가 넘은 시간의 햇살은 차 안에서의 사진에도 노을빛을 남겨 놓았다!!
거대한 바위 아래 옹송거려 모여있는 칼라바카 마을에서 오늘 밤을 보낸다.
내일을 기대하면서~~~

메타오라 수도원 가는 날~
복장 차림에 주의를 요한다
여자는 스커트에, 힙이 보이지 않는 차림 이어야 한단다
바지나 민소매 차림으로는 들어갈 수 없고
여자가 바지를 입었을 경우 긴 천을 힙에 두를 스카프 하나쯤 준비하라고 한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별반 제재가 없었기에 의아심을 가졌는데
이렇게 까다롭게 제한하는 이유는 마지막에 알려준다.
종교적 의미라기보다는 풍습에 따르는 것에 더 의미를 두고 싶다.
수도승들에게 예를 갖추자는 의미라고...
미리 거대한 바위 모습에 놀라고 있었으니 주의사항에 진심을 다 한 듯싶었다.

세상에서 메타오라는 매타오라밖에 없다는 말이 있단다.
메타오라는 ‘공중에 매달린’ ‘하늘 아래’라는’ 뜻인데
정말 바라보는 순간 아찔함과 동시에 아름다움을 느꼈다.
6천만 년 전에 형성된 높이 300m ~ 550m의 기암괴석은 사암 바위 기둥이라고 한다.
풍화작용이 쉬운 사암들이어서 바위에 커다란 동굴들이 많이 생겼다고 한다.
마치 신이 정성스럽게 조각해 놓은 듯싶다.
이곳 수도원은 13~14세기 경
수도사들이 오스만 제국 시대를 피해 찾아온 은둔 생활지로
기암괴석의 동굴에 수도원을 지었다고 하는데
그 당시는 24개의 수도원이 있었는데 지금은 6개의 수도원만 남았다고 한다.
각 수도원은 매일 돌아가면서 문을 열고 닫는다고 한다.
개방하는 수도원도 마감 시간이 달라 그 시간을 잘 맞추어야 관람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아침 일찍 첫 개방 시간에 맞춰 바를암 수도원을 방문했다



수도원에 도착하기 전까지 구불구불 길을 따라 보이는 풍경은
너무나 독특하고 비현실적이었다.
건축 자재들은 어떻게 옮겼는지...
자연이 안겨주는 웅장함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가장 접근이 어려운 수도원
1475년에 건축을 시작해 1477년에 완성
지형이 험하고 규모가 크며 140개의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고 한다.





1512년에 건축된 수도원으로 이곳 수도원 중 2번째로 큰 수도원이란다.
메테오라에서 가장 아름답고 아찔한 바위산에 위치하고 있다.
수도원 박물관도 있으며 저장고도 볼 수 있다.
요즈음도 도르래를 이용한 그물과 기중기를 사용하고 있다.
지금은 계단과 다리가 설치되고 도로가 닦여
차로 쉽게 방문할 수 있지만 그 당시 수도사들은 생활을 위해
밧줄과 그물, 도르래 등을 사용했다고 한다.

▼ 수도원내부



안내원이 프랑스 언어라고 알려준다.
우리 모습을 보고 언어가 다르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 같았는데
그림(사진)이라도 볼 욕심으로 그냥 구매했다.










16세기에 건축된 수도원
니콜라스는 산타클로스를 의미하며 이곳 수도원 중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다.
물건을 운반했던 도르래를 볼 수 있다.

돌아오는 길,
전망 좋은 곳에 차를 세워 준다
다 돌아볼 수 없었던 아쉬움을 달래 주는 배려~~
다소나마 아쉬움을 덜어 보았다.


도로에서 바로 올라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있으며
현재는 수녀원으로 사용하고 있다.




수도원을 뒤로한 채 아테네를 향해 고속도로를 달렸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과 우리가 하룻밤 묵었던 마을에 아련함이 스친다.
노란 로뎀나무 꽃들이 예쁘게 손 흔들며 인사한다.

우리는 오후 5시 넘어 아테네에 도착했다.
오늘 밤이 마지막 밤!!
저녁식사를 하고
마지막 밤을 즐기자는 가이드와 일행들이 합심하여 시내 어느 곳으로 갔다
그곳에서는 아트로 폴리스가 저녁 불빛으로 점점 화려해지고 있었다


그리스의 가장 대중적인 음식이란다.
양고기나 닭고기를 작은 덩어리로 만들어 꼬치에 끼워 구워 소스를 얹어 먹는다.
나는 감자튀김을 더 맛있게 먹었다.

현지 문화를 다양한 방식으로 접할 수 있는 곳은 단연 시장이다
이곳에서 잠시 받은 자유시간으로 시장의 활기를 느껴보았다.


아크로폴리스 언덕이 보이는 한 카페의 야외 광장에서
우리는 맥주와 쥬스 등을 마시며 환담을 나누었다.
아크로폴리스 주위에 조명 설치를 한 듯
어두워질수록 밝아 보이는 풍경에 의미를 되새길 수 있어서 좋았다.





이튿날 오전 10시 25분 비행기를 타기 위해 아테네 공항으로 출발

1시간 30분 후
환승지인 터키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4시간을 기다린 후, 인천행 비행기를 탑승 예정이니
우리는 이스탄불 공항 면세점을 마음껏 구경했다.
두 가지 물품도 구매했다.
이상하게 그 구역에는 쉼 의자가 아주 드물게 있었기에
어디에 앉고 싶으면 음식거리의 아무 데나 들어가서 음식을 먹으며 쉬어야 했다.
우리는 아이스크림과 튀김을 사 먹었다.


현지 시각 오후 4시 15분 인천행 비행기였는데 많이 지체되었고
캄캄한 밤하늘을 날아
11시간 후 인천에 도착했다.
#. 여행기를 제때 올리지 못하고
미루면서 이제야 끝을 맺습니다.
티스토리 활동도 제대로 안 하면서
여행기만 올리는 것이 부끄러웠지만
저 혼자만의 기록이라는 명분을 앞세웠나 봅니다.
함께해 주신 벗님들께 감사의 마음 접합니다.
'마음따라 발길따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후기 (0) | 2026.06.22 |
|---|---|
| 신화의 나라 그리스 여행(8)- 델피(델포이) (0) | 2026.06.13 |
| 신화의 나라 그리스 여행(7)- 산토리니 ④ (0) | 2026.06.04 |
| 신화의 나라 그리스 여행 (6) -산토리니 ③ (0) | 2026.06.03 |
| 신화의 나라 그리스 여행 (5)- 산토리니 ② (0) | 2026.06.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