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주 작은 승부역은 영동선의 한 역으로
1956년에 문을 연 경북 봉화군의 첩첩산중에 있는 간이역이다.
내가 이 역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그 작은 역에서 19년간 근무한 한 역무원이
“하늘도 세평이요. 꽃밭도 세평이나 영동의 심장이요 수송의 동맥이다.”라고
바위에 썼던 시의 유명세를 알고부터였다.
얼마나 열악했기에, 얼마나 외로웠기에, 얼마나 적막했기에
이런 시를 바위에 낙서처럼 썼을까 하는 마음에 꼭 한 번 가 보고 싶었다.
그 첩첩산중의 철로를 협곡열차가 운행하면서 관광객을 싣고 다닌다는 소식을 듣고
개인적으로 가기에는 접근성이 어려워 철도여행사에 작년에 기차여행을 신청했지만,
폭우로 일부가 훼손되어 운행할 수 없다며 여행 취소를 했었다.


올해 다시 운행한다는 소식에 다시 신청했다.
하지만 그 협곡열차는 철암역에서 분천역까지만 운행하는 열차이다.
하여 그 열차의 여행 신청을 하는 사람들은
청량리에서 ITX(중급열차) 타고 제천까지 가서
제천에서는 버스로 철암까지 가는 일정이다.
이 여행은 당일 코스이기에
나는 시간이 맞지 않아 가 볼 수 있다는 희망이 조금씩 절망에 가까워지고 있었는데
철도 여행 측에서 대전역에서 제천까지 운행하는
무궁화 열차를 연계시켜 줄 수 있다고 한다. 얼른 승낙했다.
청량리 팀이 오전 8시 35분경에 제천에 도착하는데 우리가 그 시간에 맞추려면
대전에서 6시 06분에 첫차로 출발하는 무궁화 열차를 타야 한다고…
남편과 새벽 4시에 대전역을 향해 달렸다.
오래된 작은 역의 이름은 지붕의 세모 칸 안에 쓰여있다.
그에 나는 간이역의 이름은 왜 세모 칸에 들여 썼을까 하는 의문을 여태 지니고 있다.
간이역이라 하면 낡고 허름한 모습에서 으레 퇴락하는 기운이 연상되지만
나에게는 낭만적으로 다가오는 정겨움이 먼저 달려온다.
오래된 역사(驛舍) 주변에 자라는 풀꽃들을 만나면
늘 외로운 역사를 다정하게 지켜주는 모습에 내 부러움의 대상이 되곤 하였다.
그 자잘한 꽃들은
어쩌다 스치는 기차들이 몰고 온 바람에 화들짝 몸을 비키며 길을 내준다.
기차가 지나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한 몸짓으로 먼 하늘을 바라보며 꿈을 키워가고 있다.
우리 인간의 삶은 어쩌면 모순의 고리를 이어가며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늘 더 나은 것, 좋은 것을 추구하면서도 지난 과거의 애틋함을 잊지 못한다.
간이역은 그렇게 그 자리에 존재하면서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며 우리의 추억을 꺼내어 세워주는 말 없는 그림자라고 믿고 싶다.
그렇게 첩첩산중에서 하늘 세평, 땅 세 평을 지켜온 작은 역을 만나고 싶었다.

우리는 제천에서 서울팀과 합류해 버스로 철암까지 이동했다.
달리는 버스 차창 밖으로 스치는 풍경은 조금 쓸쓸했다.
가을이라는 계절은 어쩌면 나무를 붙잡고 천천히 익어가는 계절일까?
나무의 단풍잎들이 고운 빛을 품고 야위어가고 있다.
가을은 정말 야위어가고 있었지만 땅 위에 수북이 쌓인 잎들은 제때인 듯 예쁘다.


철암역에 도착하기 전 우리는 구문소라는 명소를 만났다.


강물이 산을 뚫고 지나가며 큰 돌문을 만들고 그 아래 깊은 웅덩이가 생겨서
구문소라 한다고 한다. 물이 바위를 뚫어 구멍을 낸 것이다.
그 아래 물이 있는 소의 수심은 18m 된다고 하니 자연현상이 참으로 신비하다.
도로의 석굴은
일제강점기 시절 이곳에서 생산되는 석탄을 운반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뚫었다는데
옆의 석굴과 묘하게 대칭되는 모습이다.


▼ 구문소를 뒤돌아 가서 만난 자연현상







철암역에 도착했다
철암역은 탄광사회의 중심이었다고 한다.
태백에서 생산된 석탄이 철암역을 통해 전국으로 퍼져나갔기 때문에 역의 위상은 대단했단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그 시절 이곳에서 근무하던 역무원의 수가 400명에 달했다 하니 가히 상상을 뛰어넘는다.
서서히 스러져가던 철암역은
2013년 백두대간협곡열차의 운행과
2014년 문을 연 철암탄광역사촌과 함께 새로운 관광지로 급부상하면서 재조명되고 있는 곳이다.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박중훈과 안성기의 빗속 맨몸 격투 장면과
드라마 등이 이곳의 석탄 시설에서 촬영되었다고 가이드가 설명한다.
주변 곳곳에 설치된 탄광 시절의 아이콘이 추억을 연상케 하고
길가의 상점들도 그 시절 모습으로 영업을 하고 있었다
특히 꽈배기와 도너츠 튀김은 금방 그 자리에서 만들어주는 맛있는 먹거리로 유명하단다.
가이드는 음식을 사서 이 열차에서는 먹어도 된다며 V-train 열차를 빨리 타자고 한다.










드디어 열차를 탔다.
열차는 세월의 도마뱀처럼 지난 시절의 무거움을 자르고 새롭게 탄생한 듯
달랑 3량의 객실 칸이 있었다.
좌석 배치도 자유롭게 되어 있으니 양쪽을 바라보며 앉을 수 있었다.
짧은 열차는 아무리 산골을 달린다 해도 기상은 변함없다는 듯 정시에 출발한다.



승부역과 양원역에서 각 약 8분간을 정차한 후 분천역까지 가는데 1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기찻길 양옆으로 단풍든 나무들의 숲을 휙휙 지나치기도 하고
아마도 낙동강 줄기인 듯싶은 계곡의 맑은 물은 햇살을 제 몸으로 씻어주며 함께 달린다.
도로 위의 자동차들은 각종 규제에 어지러울 지경이지만
이 깊은 산중의 열차는 거칠 것 없이 달리고 있다.
내 마음은 기차보다 더 빨리 달리며 승부역을 향해서 달린다.












스치는 창밖의 풍경은 옛날 그대로의 모습이다.
납작 엎드린 집은 밭을 마당처럼 껴안고 있었고
그 밭에는 이직 거두지 않은 배추가 자라고 있었다.
한 시간 남짓 달리는 열차는 터널을 두세 곳을 지난 듯싶으니
이 짧은 거리의 철길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수고를 했을까? 하는 마음에
더 애틋함이 올라온다.
내 마음을 헤집고 돌아 나가는 스치는 풍경들을 제자리로 돌려주면서 분천역에 도착했다.







분천역이 위치한 분천마을은 산타마을이 되어 화려함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깊은 골, 외로움과 적막감으로 지내야 했던, 그래서 더 그리운 곳이
이제 추억을 간직하고 변화하고 있었다.
이런 정겨움을 간직한 곳이기에 찾아오는 발길이 더욱 잦아지고
그 발길에 따라오는 새로움은 변화를 가져다주고 있었다.
분천에서 우리는 버스를 타고 영주 소수서원으로 향했다.





소수서원은 개인적으로 두 번을 다녀온 곳이다.
이날 선비촌은 리모델링공사관계로 입장이 불가했다.
서원 입구의 500년 된 은행나무를 바라보고
서원을 한 바퀴 돌아보고 제천역으로 다시 출발했다.
제천역에 도착하여 역 건너 중앙시장에서 가락국수로 저녁을 해결하고
7시 13분 출발하는 대전행 열차를 탔다.

집에 도착하니 밤 11시 20분이었다.
하루동안 전라도, 충청도, 강원도, 경상도를 다녀왔다.
협곡열차를 타고 오래된 작은 역을 만날 수 있다는 특별함이
관광객들의 마음을 사로 잡은 기차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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