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방의 작은 창을 나는 참으로 좋아한다.
주방 일 하는 중간중간
창을 통해 들어오는 풍경들을 바라보면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곤 한다.
요즈음 산에 인접한 우리 아파트 주위 가을 풍경은 가히 일품이다.
앞뒤 베란다로 왔다 갔다 하면서 풍경 놀이를 하지만
아무래도 주방에 있는 시간이 더 많으니
주방의 작은 창으로 뒷산을 바라보는 재미가 정말 좋다.
작은 창은 액자가 되어 사계절 내내 풍경화를 그려내곤 하니
이 세상 제일의 화가가 아닐까.
창은 그림을 소유하지 않았지만
자연을 끌어와 그림으로 감상하는 차경이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닫힌 듯싶은 아파트 생활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작은 창에 대한 애정은
아마도 한옥의 아름다움에서 비롯되었다는 나만의 믿음이다.
한옥 창의 우수성을 새삼 느낀 것은 안동의 병산서원에서다.
배롱나무가 한창일 때 찾아간 병산서원은
건물 전체에서 우리 한옥의 우수성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그중 백미는 입교당의 벽에 나 있는 세 개의 창문을 바라보면서였다,
옛 전통을 지닌 우리 한옥의 작은 창문을 통하여 빚어지는 배롱나무의 자태가
끊어지는가 하면 이어지면서 일체감을 빚어내고 있었다.
문틀은 액자가 되고 뒷마당의 풍경들은 스스로 화가가 되었다.
벽에 고정된 창문은 시선의 각도를 달리하면
언제든 여닫을 수 있는 문보다 더욱 자유롭고 다양한 풍경을 보여준다.
언제가 읽은 한옥의 미학에 대한 책에서 작가는
겹겹이 쌓인 구조의 방 안에서 창을 통해,
내 집의 또 다른 풍경을 바라볼 수 있다는 독특한 특성의 의미를 확장하면
"내가 나를 본다."는 뜻이 된다고 하였다.
풍경을 바라보면서도 자기애와 자아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뜻이라고 하였다.
책을 읽고 허영심에 가득한 나의 말을 들은 내 친구는
언젠가 나를 불러 내 나와 꼭 같이 가야 할 곳이 있다며 함께하자고 했다.
약속은 했지만 나의 갑작스러운 일정으로 함께 할 수 없었는데
친구는 혼자 다녀와서 찍은 사진을 나에게 메일로 보내 주었었다.
한옥에서의 창을 통한 풍경들이었다.
책으로만 만나보고 이러쿵저러쿵 하는 나에게 일침을 가한 듯싶었지만
난 친구의 예쁜 마음을 액자에 담아 두고 싶었던 기억이 스친다.
아침에 나가기 전 주방 창에 폰을 바짝 붙여 사진을 찍고 보니
정작 작은 창 모습이 보이지 않아
저녁에 집에 돌아와 찍으니 이 모습이다.
창은 말한다.
나는 나에게 보이는 그대로 그릴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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