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사무실 일이 조금 바쁘다.
정신없이 집중하다 퇴근 시간에 밖으로 나오면
절로 깊은 호흡에 머리에서 발 끝까지 상쾌함을 느낀다.
거리 풍경, 스치는 나무 모습 등을 바라보며 앞차 꽁무니를 따라 달리다
산자락을 끼고도는 우리 동네 가는 길로 들어섰다. 더 기분 좋은 길이다.
그러다 문득 감나무가 보인다. 아니 여태 왜 내가 감나무를 못 보았지?
어느 집 마당 가의 나무인데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울타리 없는 마당 가였다.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차를 멈추고 사진을 찍었다. 감은 아직도 많이 달려 있다.
이 생각 저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다.
감나무만큼 우리에게 친숙한 나무는 없을 것이다.
감꽃도, 감나무잎도, 감도
내 유년 시절의 추억들을 눈에 삼삼하게 떠오르게 하는
우리의 풍경이면서 동감할 수 있는 정서를 지닌 감나무다.
그중 우리의 정서를 가장 많이 대변하는 이야기는 까치밥이다.
나는 어릴 적에는 홍시를 주우러 감나무 밑을 서성거리기도 했지만
언제부터인가 나는 감 가지를 걸어 놓고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다.
우리 어머니는 감이 익을 무렵이면 어떻게 구했는지는 모르지만
감 가지를 꺾어 놓았다가 내가 가면 꼭 주곤 하셨다.
정년퇴직 후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남편 친구가
어느 해 그곳에 다녀오는 남편에게 감 가지를 주어 보냈다.
완전히 익지 않은 감이었다.
그 감 가지를 멋지게 액자 위에 걸어 놓고 잊은 듯 지났다.
그런데 감은 하늘을 바라보지 않고서도
시나브로 제 몸을 숙성시키며 홍시로 만들었다.
감을 보기는 좋아하면서도 잘 먹지 않는 나 대신
남편은 오가며 홍시 하나씩을 따서 먹었다.
그런데 감 가지에 달랑 하나 남은 홍시는 쭈그렁이 되어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만 같은데도 남편은 감을 따 먹지 않고 있다.
왜 안 먹느냐고 물으니 ‘까치밥’이란다.
엥??
집안에 까치가 들어올 리 만무하지만
까치밥으로 남겨 놓았다는
천연덕스러운 대답에 그만 웃음이 피식 나왔다.
까치밥!
참 정겨운 말이다.
추운 겨울을 지내야 하는 새들의 배고픔을 생각하여
말 못 하는 새들에게 건네주는 따뜻한 정은 우리의 미덕이다.
그날, 쭈그렁이 홍시를 바라보며
이제 한 해 끝자락에서 살금살금 뒤로 물러나는 남은 날 중
어느 하루가 까치 되어 저 홍시를 먹고
우리에게 기쁜 소식 남겨주고 갔으면 좋겠다고 달래 보았었다.
참으로 정겨운 우리의 고운 정서인데
이젠 자꾸 사라져 가는 그리움이 되어 버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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