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사랑으로!!

단상(短想)

눈 내리는 날

물소리~~^ 2023. 12. 21. 13:30

 

 

▲ 어느 화가가 그린 눈 내리는 날의 그림

 

눈이 끊임없이 내린다.

새벽 6시 무렵에 창밖을 내다보니 눈이 그쳐 있었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부터라도 제설작업을 하면 출근길에 문제는 그리 크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종종거리며 아침 스케줄을 소화하다 어느 때쯤 다시 창밖을 바라보니 아니! 또 눈이 펑펑 내리고 있는 게 아닌가! 연이어 날아드는 안전안내 문자를 보며 오늘은 걸어서 출근하기로 하고 만반의 준비물을 챙겼다.

 

 

 

핸드백 대신 백팩에 소지품을 옮겼다

기모 레깅스를두터운 털장갑을

마스크목이 있는 부츠에

우산을 챙겼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집 밖으로 나오니 애꿎은 경비아저씨들만 고생하신다. 아무리 염화칼슘을 뿌려도 우리 아파트 입구 오르막에서는 차들이 계속 헛바퀴를 돌리며 서너 대가 엉켜 있다. 걷기로 작정한 것은 정말 잘했다며 눈 위를 걸었다. 의외로 몸이 가볍다. 한 건물 앞에서 젊은이들이 눈을 치우고 있다. ‘눈을 치워주어 고맙습니다.’ 하니 큰 목소리로 ‘감사합니다.’로 답한다. 도로의 차들은 완전히 거북이걸음을 하고 있다. 신호가 바뀌어도 차들이 제 때 멈추지 못하고 있다.

 

나는 한 번의 신호등을 건너 호수 산책길 옆 도로를 선택하여 걸었다. 눈을 얹은 나무들의 행렬이 정말 아름답다. 나무에 쌓인 눈들은 해 없는 날씨에도 스스로 빛을 발하며 늠름한 모습이다. 아무리 추워도 풍경을 담고 싶었다. 잠깐의 시간이었는데 폰을 만지작거리느라 장갑을 뺀 손이 시리다. 마스크를 했는데도 콧물이 나니 자꾸 훌쪅거렸다.

 

하얀 눈이 가득한 길에서 문득 눈이 녹은 한 곳을 만났다. 구멍이 있는 맨홀 뚜껑이 맨 모습을 보이고 있다. 관심을 가지고 걷노라니 몇 군데의 맨홀이 그렇게 눈을 녹이고 있는 것이다. 하수구를 따라 흐르는 물의 온기가 구멍을 타고 올라와 눈을 녹이고 있었으니 따뜻함은 차가움까지 녹일 수 있다는 이치가 아닌가. 그 밑을 흐르는 물은 결코 깨끗한 물이 아니었지만 자신이 지닌 온기로 주위의 차가운 눈을 녹이고 있었던 것이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얼굴 없는 천사들의 선한 이야기들을 많이 만난다. 그럴 때 마다 나는 무언가 모를 안도의 마음과 미안함을 함께 느꼈다. 요즈음 누구나가 다 어렵다고 말을 한다. 내 삶을 먼저 챙겨야 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기이기에 불우이웃을 돕는 손길이 줄어들었다는 소식도 들려오는 마음에 한줄기 강한 빛이 비치고 있음에 감사의 마음만을 보내고 있었다.

 

맨홀 뚜껑 밑을 흐르는 물은 결코 깨끗한 물이 아니었지만 온기가 있었기에 차가운 눈을 녹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무성한 잡목이 있어 산이 더욱 이롭듯, 우리사회를 지탱하는 것은 높은 학벌로 많은 재산을 가진 사람이 아닌 그저 평범한 이름 없는 사람들에 의해서다.

 

하염없이 내리는 눈길을 걸으며 알 수 없는 화가가 그린 눈 녹인 하수구 그림을 보고 얼굴 없는 천사의 이야기를 떠올려 보노라니 선한 마음의 소유자의 보이지 않는 힘이 나를 떠미는 느낌을 받았다. 눈길을 걷는 일이 조금도 힘들지 않은 아침이었다.  55분을 걸었다.

 

 

▲ 설경 속에 내 우산, 아니 설산도 끼어들고 싶었나 보다